편집국장 공인배

소리는 울림이다. 소리는 홀로 소리였던 적이 없다. 공기의 미립자와 미립자가 떨며 부딪치며 하늘과 땅 사이를 이동해 가는 것을 우리는 소리라고 한다.

출력의 크기와 장애물의 유무가 소리의 이동거리를 결정하며 텅 비어 있는 곳, 미립자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소리는 선명하게 뻗어나간다.

악기에서 나는 소리란 허공 중의 미립자와 바로 부딪치는 진동이거나, 진동이 울림통에서 확장되어 공기와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악기는 손으로 만져지지 않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을 다루는 도구다.

연주는 허공중에 소리의 진폭을 그리는 것이다. 그 소리가 공기와 텅빈 내부 사이에 가로놓인 고막에 복제되면 곧 신호로 바뀌어 사람의 정서에 닿게 된다.

연주하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공기와 교감해야 한다. 정서를 가다듬고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지 않으면 뇌리에 소리를 기록할 수 없다. 정서가 어수선하고 마음속에 이것 저것 들어차 있다면 기록된다 해도 그 정회를 다시 길어올리기 어렵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매만지고 품어 사람의 맥박에 심는 것이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끌어내고 기억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음악 말고 다른 것을 철저하게 비우는 것이다.

정신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 이루어지는 음악은 잡념을 털어낸 초탈의 여유를 안겨주며, 다른 세상을 열어 보여준다. 음악은 그렇게 해서 힘겨운 일상의 일탈을 이끌어 희망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원천이 된다.

악기를 다룬다는 것은 그래서 진동을 일으키거나 빈 공간에서 울림을 증폭시키고 있지만, 기실 음악가 자신의 몸통과 마음을 연주하는 것이다. 악기를 울리기 직전과 울리는 때 혹은 직후를 모두 포함해서 그러하다.

협연이란 그런 여러 주체들간의 통섭이다. 사이와 사이에 막힘이 없을 때 소리의 속도와 세기를 일체화 할 수 있다. 소리는 이질감 없이 섞일 때 아름답고 장중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협화음을 없앤다는 건 '나'로 우뚝 서서 '우리'의 질서를 따라가서 누구와도 일체화 되는 것이다.

음악은 이렇듯이 지극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협연의 수준이 화상학이 가르키는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일체감을 안겨줄 수만 있다면, 그 안에서 연주자들과 관객이 감동을 교류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익산문화재단에서 육성하고 있는 꿈의 오케스트라는 그런 음악의 순기능을 함의하고 있다. 1975년 베네수엘라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조직했던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가 그 기원이다. 그는 마약과 범죄에 노출된 빈민가 아이들 11명을 모아 사재를 털어 악기를 제공하고 카라카스의 허름한 창고에서 연주를 가르쳤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자신감이 제로였던 아이들을 끝내 포기하지 않게 한 배경에는 음악의 힘이 있었다. 음악에 취한 열정은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의 사이에서 공명해 서로의 내부를 울렸고, 그것은 두 주체의 방향성이었다.

모두 범죄 전력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은 협연에 필요한 규칙과 규율을 배우면서 인생을 변화시켰다. 소통할 줄 알게 되었으며, 행복해졌다. 무엇보다 꿈을 꾸게 되었다.

강한 훈련과 지도에 낙오하지 않고 따라가게 한 끈기는 서로의 장애물을 제거한 비움에서 비롯했다. 협연 준비는 상호학습과 협력을 통한 상호작용을 낳았고, 관여하는 모든 주체들의 동반 성장을 이끌었다.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가 1977년 영국 국제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것보다, 아이들이 긍정적 자존감과 공동체적 인성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한 것을 더 가치있게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소리는 홀로였던 적이 없다

지구촌이 공명하며 소외 아동·청소년들로 구성되는 오케스트라 창단 열풍을 촉발한 진원은 오케스트라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나누며 조화를 이루는 법을 체득한 아이들이다. 해냈다는 감격은 체험의 축적을 딛고 맞이하는 것이며 그 높이만큼 먼 미래비전이 약속되는 까닭이다.

지난 8일 익산시 문화재단이 육성한 꿈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바라보는 지점이다. 연주자와 그 가족들, 관객, 관계자들을 망라하여 같은 공간에서 공기와 소리를 나누며 울림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두고두고 꺼내보며 웃음지을 감동의 기록이 아닐까 한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경색된 우리 교육 현장에도 좁으나마 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초등교육 과정중에 만져볼 수 있는 악기는 극히 한정되어 있고, 중·고등 교육이 입시 위주로 흐르는 제도 아래서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엘리트 위주로 시스템화 되어 있는 음악계의 폐쇄적인 구조를 장차 꿈의 오케스트라가 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공연을 바라보는 설레임의 한 축일 것이다. '기회균등'을 절대명제로 표방하면서도, 아무에게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부조리가 꿈의 오케스트라의 울림에 해체되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을 포착한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가난한 아이들의 탈선을 예방하는 데에서 나아가 사회적 결핍을 메우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뻗아나가는 소리다. 봄은 소리와 함께 온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이나 망울을 터뜨리는 꽃, 그것을 노래하는 새처럼.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비도가 차세대 최고의 지휘자로 지목한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17세 때 역대 최연소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 된 에딕슨 루이즈가, 아브레우의 '음악을 위한 사회행동'을 전신으로 하는 엘 시스테마 출신이었다는 맥락에서 그들은 봄의 전령들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