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은 60대 엄마와 30대 두딸로 구성된 가족공동체의 마지막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고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 비극이다. 부실한 사회안전망 또는 지극히 선택적이며 행정편의주의적인 복지정책과 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잇따르는 이유다.

그런데 일각에서, 세 사람 모두 경제생활 인구에 포함되는 성인들인데 더 노력하지 않고 삶의 의무를 내팽개친 것은 무책임하며 반사회적인 행태라며 냉소와 독설을 퍼붓는 것을 보면서 망연해져서 주저앉게 된다. 

그들에게 한 호흡만 고르고 보라고 말하고 싶다. 보증금 500에 월 38만원의 월세방에 살았던 그들은 가진 전재산을 털어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그리고 "죄송하다"는 세상을 향한 짧은 사과의 말을 유서로 남겼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에 대해 책임을 다했었다. 십여년 전까지 남편과 아버지의 암투병에 동참해 사력을 다했으나 끝내 집안의 남자를 잃었고, 남은 것은 생활고에 찌든 피로감과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에서 비롯하는 열패감이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 기회를 박탈당한 와중에 큰 딸의 지병이었던 고혈압과 당뇨가 깊어져 운신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지만 생활비도 빠듯한 마당에선 병원 치료를 받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작은 딸도 얼마 전에 그나마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만화가를 꿈꾸었으나 생활고에 허덕이다 꿈을 포기해야 했고, 그런 현실적 한계가 그녀 내부에서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키웠으며, 그로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된 것이다.

세 모녀의 최근 몇달간 생활비는 엄마가 식당에서 일해 번 돈이 전부였다. 그런데 얼마전 엄마의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나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10평 남짓 되는 방의 월세는 38만원에서 50만원으로 인상됐다.

설상가상으로 극에 달한 생활고를 감당해야 했다. 그동안 집세와 공과금을 밀린적이 없었고 친인척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얘기하거나 도움을 청한 적이 없었던 자존심 강한 세 모녀였다. 거주지의 행정기관에 어떠한 지원 요청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던 그녀들에겐 현실적인 결핍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훨씬 더 무거웠다. 상실에 대해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알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다.

10년 세월을 전력투구하여 뛰었지만 끝없이 뒤쳐지고, 결국에는 뛸 힘이 다 빠진 상태를 경험하지 않고 그들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살아남은 우리들이야 말로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들이 내몰렸던 아무것도 없는 섬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 나라에서 세금조차 못내는 서민은 5백만명(33%)에 달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천달러를 넘어선 나라의 현주소다. 또 그녀들과 같은 처지인 이혼·사별 여성노동자는 106만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67.8%인 72만명은 최저 생계비도 못벌고, 그 중 21만명은 한 달에 55만원도 벌지 못한다. 통계청의 고용조사 결과다.   

이렇게 삶의 의지를 박탈당한 세 모녀의 죽음은 희망과 절망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수많은 서민들의 실제 모습이다.

더구나 이들에게 노동시장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계층 내부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유있는 사람에겐 별 것도 아닌 팔 골절이지만, 그녀들에겐 엄마의 팔 골절이 죽음을 부르는 절망의 단초가 된 까닭이다.

복지체계에서 배제된 서민들은 특정한 경우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선 스스로 조건을 맞춰야 한다. 월 수입이 현행 최저 임금 109만원 미만인 경우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 아래서는, 매월 120만원을 벌지만 50만원의 치료비가 필요한 만성질환자를 부양하는 근로자는 급여가 20만원 이상 낮은 직장에서 일하는 게 더 낮다.

온갖 복잡한 심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선택적 복지는 이렇게 노동의욕을 감소시키고, 좌절을 안겨주는 장벽이 된다. 최근 장애를 가진 아들의 치료비를 해결하지 못한 한 가장이 지속적으로 자격심사를 받았지만 보호자인 자신 때문에 번번이 탈락되자 아들에게 해택을 주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좁은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

복지혜택이 필요한 사람과 필요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현행 선택적 복지가 낳은 서민들의 자화상이다. 보편적 복지가 바탕되지 않은 선택적 복지를 복지체계라 말 할 수는 없다.

좋은 나라란 사회적 약자가 최소화된 나라다. 실패했더라도 새 출발이 가능한 나라다. 이제 축소지향의 복지정책에 제동을 걸고, 보편적 복지로 선회해야 한다. 그 재원을 부자증세를 통해 마련하는 것은 또한 우리가 미래를 가로막는 불평등의 부조리를 청산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첫 걸음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낯설다. 취임 1주년에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대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모든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방향성을 핵심에 세웠다. 재벌 규제를 바람직한 경제성장을 위한 측면으로 해석하지 않고 장애물로 보는 이런 인식은 국정지표에서 경제민주화 담론을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중소·중견기업 성장단계별 맞춤형 지원 강화'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 '최저임금 위반 벌칙 강화'같은 1년 전 취임사의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불과 1년 만에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대기업 성장주도의 경제독점 가속화로 급선회한 것이다. 

그 바람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 '하도급 불공정 특약 금지' '신고 포상금 신설' '하도급·유통·가맹 분야의 비정상적 거래관행 개선 중점 추진' '신규 순환 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같은 법안들은 미완의 상태에서 말라비틀어지게 됐다.

발디딜 틈도 없는 빈곤의 절벽에 선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알아서 개체수를 맞추라고 내 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