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대통령의 규제 혁파 의지가 사뭇 비장하다.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쓸데없는 규제를 '암 덩어리' 또는 '쳐부술 원수'로 규정하고, 겉핥기식이 아니라 확확 들어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달라고 거칠게 호소했다. 사안의 중대성과 절박한 심정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틀 뒤의 회의에서는, 미래세대에 발전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타는 애국심과 불굴의 의지를 주문했다.

기업을 호수에 있는 개구리로 비유하고 규제를 호수에 날아드는 돌로 비유하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기업을 살리는 일에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으로 나서야 한다고, 비현실적 규제의 폐해를 질타한 주무부처 업무보고가 있은지 한 달여 만이다.

지난 달 25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선 규제철폐는 지금이 적기라는 취지로 시의성을 강조하며 참모들의 분발을 촉구했었다. 못하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막는 규제의 난맥상을 어느 정도 심각하게 생각하는가를 잘 나타내주는 발언들이다. 그런 규제들을 즉각 없애지 못하는 데 따른 울분 가득한 심정이 묻어난다.

한 마디로 이 나라는 '규제'라는 암을 제거하고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다. 규제의 위험성을 화급을 다투는 상태로 거듭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이 암은 나라 경제 전반에 뿌리를 내린 말기에 이르른 모양이다.

암의 직접 피해 당사자는 대기업이다. 박대통령은 대기업의 존망이 나라 경제를 좌우하며 국민들 삶을 결정한다는 확신을 지녔다.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직간접 경제효과를 일으킬 기업 살리는 일에 왜 전격적으로 매진하지 않느냐고 관료들을 연일 질타하는 배경이다.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 모든 규제는 불필요하며 비현실적이라는 생각, 그 규제가 돌이 되어 개구리처럼 취약한 기업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은, 박 대통령의 낡은 친기업 성장우선주의 국가 경제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물론, 2008년 3분기 33.8%를 기록했던 국내 총투자율은 5년 동안 급락세를 보였고, 지난해 2분기에 25%대 밑으로 떨어진 이래 답보상태를 보이다가 다시 하락세에 접어든 게 사실이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같은 기간 국외 투자율은 6.6%에 달하는 등 급등세를 보였는데, 이는 14년 만에 보인 최고치다.

같은 기간 국내 총투자율은 무려 8% 이상 떨어졌고, 국외 투자율은 3% 이상 오른 것이다. 박대통령의 논거는 여기에 있으며, 이처럼 기업들이 국내를 피해 해외 투자를 늘린 것은 정치권이 각종 규제를 양산해 대기업을 옥죈 결과라는 재계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규제 때문에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단정은 설득력이 없다. 우선 원자재값 상승을 비롯한 생활물가 폭등, 인건비 상승 같은 시장 여건은 투자위축의 직접적인 요인이다. 또 기업의 투자 패턴 변화나 재벌의 족벌체제 지분 확보 또는 기업의 안전장치 비용으로 자본이 묶이는 등 시장 외적 요인의 작용도 크다.

또한 오락가락하는 정부정책 같은 투자환경의 불확실성은 삼성을 위시한 정부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초입에서도 각종 규제 법안들이 쏟아졌다.

당시에는 경제민주화법 제정 같은 공약 이행을 전면에 내세웠던 분위기였기에 반드시 필요한 규제들이었다. 그런데 취임 1년여 만에 규제란 도려내지 않으면 나라를 죽일 환부가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미숙아 상태에서 슬쩍 내다버린 순간부터 '투자위축은 전적으로 반(反)기업·분배우선정책의 영향때문'이라는 재벌들의 주장에 대통령이 걷잡을 수 없게 경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기업들이 한 일이란 4대강 같은 토목공사에 국고를 탕진하고, 법인세율을 낮춰 순이익을 막대하게 늘려줘도 국내에 투자하지 않고 값싼 노동력과 기회가 더 많은 해외에 투자한 것이다. 이로인해 지난 5년 동안 25조1,360억원의 자본이 대기업 내부에 사장되고, 같은 기간에 9조4,260억원이 국외로 빠져나갔다. 

국민들을 야만과 탐욕이 판치는 지옥으로 떠미는 대통령

지금 이 나라가 경기활성화를 고민한다면 소비지수를 높여야 한다. 많이 벌면 그 만큼 쓰게 되어있다. 세태가 그렇다. 90년대까지 20%였던 저축률은 지난해 말 현재 2.7%로 떨어졌고, 가계빛은 1,000조에 달한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쓰고 갚으면 된다는 식의 소비심리가 보편화된 현주소다.

소비를 활성화시키려면 최소한 실질임금을 생산성 수준에는 맞춰야 한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실질임금 증가율은 생산성보다 4.1%나 낮다. 이는 소득주도 경제정책 부재의 현주소를 방증한다. 소비가 발생시키는 일자리들이 대폭 감소한 이유다. 

이런 정량적 분석에 따른 지표보다 더 중시 되야 할 것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일 것이다. 인류의 유전자는 종족보존의 책무를 지니며, 종족의 지속가능성이 모든 가치의 정점에 있어야 한다.

경쟁 일변도와 약육강식의 시장을 제어하는 것은 그런 공공적 가치에 기반한다. 더 많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시장의 독점 구조는 최대한 해체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더 촘촘한 규제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규제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재벌들의 꼭두쇠가 된 것은 야만과 탐욕이 판치는 지옥으로 국민들을 떠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규제의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기업을 도와야 성장한다는 전근대적인 사고가 이 나라 관료들에게 재이식되고 있다. 이른바 낙수효과에 미쳐 날뛰다 나라 경제를 이 꼴로 만든 이명박 정부의 대차대조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이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격차를 좁히기 위해 정치적 명운을 걸었던 노무현은, 수도권에는 더이상 공장을 짓지 못하도록 막아주던 그린벨트를 해제해 다시 일극중심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박근혜를 지하에서 어떻게 볼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은 이제 부패한 정권에 의해 종언을 고하는구나. 칼이 등 뒤로 날아드는 반칙의 세상에서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