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치권력은 진영의 영속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공익달성에 필요한 대표성을 확립해야 하는 속성 때문에 간혹 좌표를 잃고 표류하곤 한다. 그럴 땐 체제를 유지하는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불안이 팽배해지며 거기에 편승한 집단 기회주의가 발호해 체제의 구성요소들에 훼손을 가하면서 그 시스템은 동시다발적인 오작동 상태에 빠진다.   

이는 특정 연구 결과가 아니라 이 나라 정치권력의 현주소다. 지역주의나 성장제일주의 혹은 냉전주의는 그 진영의 성향을 나타내 주는 명제들이다. 이 권력은 선거에 의해 대표성을 획득했으나, 당면한 국정원 작 '부정선거' 의혹제기와 그에 따른 대표성 논란을 불순한 의도를 지닌 반민주세력의 도전 행위로 매도하며 목하 단속중이다.

민주주의는 공정성을 담보한다. 불공정행위야 말로 민주주의의 뿌리와 줄기를 뒤흔든다. 18대 대선 결과가 부정되는 이유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독자적인 일탈로 구분하면서 정통성 시비에서 비켜서려 한다. 그러면서도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한 징벌도 일절 단행하지 않았다.

헌법을 부정하는 정권이다. 이로인해 우리는 정체불명의 국가에서 살고있다.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예측불가능성에서 비롯한 위기의식이 사회 전반을 뒤덮은 가운데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다. 국정원은 조직의 존립기반인 국가기밀을 스스로 까발리며 자해 공갈을 부렸지만 정권의 비호로 더 막강해졌다.

30년 만에 내란음모사건을 부활시키고, 정치·사회 전반에 종불몰이 바람을 일으키자 관변단체와 보수 우익들이 거리를 점령했다. 그 바람에 관변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었고, 이 나라는 삽시간에 반공이데올로기의 폭거에 사로잡힌 꼴이 되었다. 국정원의 간첩 조작사건은 그런 브레이크 없는 폭주의 결정판이다.

반칙은 명분 없는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폭력은 굴복을 강요하며 저항을 누르기 위해 갈수록 광포해지는 법이다. 이 정부는 반칙에 따른 페널티를 피하기 위해 법 집행자들에게까지 폭력을 가했다. 본때를 보여주는 폭력은 일벌백계의 효과처럼 심판들을 무력화시켰다. '폭력의 적은 법'이다. 폭력이 법을 이길때 무엇이 그 앞에 있을까.

국정원 사건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개인정보 유출 사건 수사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되어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정원과 청와대의 비협조 앞에 수사는 무위에 그칠 위기에 직면했다. 이 정권은 반칙을 정당화하기 위한 폭력을 거침없이 행사하며 공화국 내부에 부정이 깃발을 꽂은 성역을 조성한 것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권력에 기생하려는 세력들은 시국선언에 나선 모든 양심세력은 물론 사제들의 도덕성까지 짓밟고 그들 인격을 학살하는데 앞장섰다. 국정원은 자기반성이 없으며, 청와대는 폭력에 더하여 국면전환을 위한 우민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양태다. 대기업에 경도된 규제완화나 대박통일론으로 흥행을 노리며 국민들의 망각을 부추기고 있으나 부작용만 부를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규제철폐는 일자리를 실질적으로 만들어 줄 중소기업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고용없는 성장(투자)을 주도하는 대기업에 활로를 제공하는 꼴이다. 더구나 이 규제 혁파의 방향성은 민주사회의 공공성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것이어서 그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이 규제 흔들기 노름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대박통일론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뜨거운 머리를 식히지 않고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지 않은 채 일방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남쪽의 통일 제안이 북쪽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기대하겠는가. 오히려 한 치도 바뀌지 않은 이 정권의 태도는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폭력으로 자초하는 식물정부

머리 위를 지나가거나 머리 위로 떨어질 항행거리 1,400킬로미터의 노동 미사일을 연상하면서 정부를 향해 박수를 쳐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한 번 길을 잘못든 이 정권은 괴벨스의 변설에 깊이 도취되어 있는 듯하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는, 승리한 자가 정의이고 그 정의에 대한 도전은 곧 불의(不義)라는.

그 불의를 응징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는 보일 수 없는 행태들이다. 그러는 한편 깜짝 쇼로 주의를 끄는 수법들은 매번 실패하고 있다. 유신시대의 폭압정치를 계승한 인물들이 이 정권의 수뇌부를 장악한 이후 국민들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나치스정권의 선전ㆍ선동 기법을 오용하는 탓이다.

설령 그런 수법이 현실적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하더라도, 혹은 가공할만한 요소들이 내장된 충격요법을 동원하더라도 이 정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이 폭력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권의 정통성 시비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는 한 그런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단언컨데, 18대 대선의 부정 의혹을 씻어내지 않고는 이 정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 이 정권의 동력은 감추고 봉합하는 데 소진하고, 저항을 누르다가 고갈될 것이다. 더구나 진영의 이익에 남은 힘을 다 쓰고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민으로부터 온전한 권력을 위임받기 위해 폭력을 내려놓지 않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천망의 지옥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우리가 군부 독재 이후에 한사코 폭력이 서식할 공간을 제한하는 데 매달렸던 까닭이다. 특히, 이 정권의 규제완화는 시장 독점 구조를 더욱 공고히하고, 시장 폭력을 양산한다. 폭력이 질서인 시대로 우리는 빠르게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우리가 떨어질 그곳에서 정부란 무슨 소용이며 의미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