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벚꽃이 예년보다 보름 가량 빨리 꽃망울을 터뜨렸다. 때이른 기습 개화에 이웃 군산이 당황하는 기색이다. 자칫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치러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마음도 군산과 같은 처지가 아닐까. 봄을 맞이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봄이다. 탄성이 절로나지만 왠지 어색하여 쩔쩔매게 된다.

화려한 꽃은 피었으나 마음이 아직 덜 녹아 서성이는 사이에 설미친 꽃은 만개하고, 봄을 온전히 자각할 때 쯤엔 녹아 흐르는 마음의 물이 낙화를 저만치 싣고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리라. 벚꽃이 진다고 봄이 가는 것이 아니지만, 그 뒤로도 백화가 만발할테지만, 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 같은 봄의 전령들이 주는 설레임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자취를 감춘 겨울이 있던 곳으로 온다. 혹한을 견뎌내며 또 한 겹 뒤집어 썼던 딱지를 들고 돋아나는 새살이다. 우리는 내밀한 곳에서 갓 터져나오는 봄의 포자(胞子), 그 발광체에 순간 눈이 멀고 스멀거리는 머릿속을 감당키 어려운 희열을 맛보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의 영접일 때 도달하는 성취다.

사랑을 영접하는 것이란 몸과 마음을 여는 것, 아직 우리 가슴 안에 꽃이 피지 않았는데 꽃다운 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며 느낄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꽃에 눈길을 줄 여유도 갖지 못한 시간의 길목에서 익산 곳곳의 벚꽃 군락지는 한창 불타며 자욱한 백연을 피우고 있다. 심상치 않는 전조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더 두터워진 얼음장 아래 깔려있지 않던가. 서해상의 전쟁놀이로 발생한 난기류가 남쪽에서 올라온 봄 기운을 냉기류로 바꿔놓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2014년 3월을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보낸버린 까닭이다.

지난 31일 낮 12시 15분께부터 3시간여 동안 서해북방한계선 남쪽 3.6km 부근의 우리 해상에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 100여발이 떨어졌다. 우리 군이 즉각 300여발을 북방한계선 북쪽으로 응사했다.

한-미 연합상륙작전인 '쌍용작전'에 대한 북한의 도발이었다는데, 양쪽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 교전은 봄이 오는 길목을 절단내고 있다. 지난 1일 북한이 동해안에서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면서 남북관계의 경색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연초에 별안간 한반도에 불어온 낯선 훈풍을 맞이했다. 김정이 먼저 북남 관계개선을 거론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으로 화답하면서 767명의 이산가족들이 남북을 오가며 얼어붙은 땅에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한·미연합 군사훈련 기간 중에 이루어진 3년 4개월만의 해빙무드였다. 그러나 그것은 난데없이 핀 꽃이었다. 대화가 단절된 것이다. 서로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데다 불성실한 태도 탓이다. 특히 남한의 미온적인 태도가 문제였다.

북한은 당초에 적대적 군사행위 중단과 직접적인 관계개선을 전제 조건으로 내밀었는데, 남한은 실행력이 담보되는 대화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장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서신교환, 화상상봉을 실현하기 위한 대화가 좌절됐다. 북한은 고위급 접촉을 이어나가기를 원했지만, 남한이 적십자 실무접촉 정도로 대화채널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남한은 특히, 지난달에 마친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 같은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이어 21년만의 최대규모인 한·미연합 상륙훈련을 강행하면서 북한을 자극했다. 이 정부가 대화에는 미온적이면서 굳이 군사적 압박으로 오인받을 것이 뻔한 훈련을 감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구나 그 사흘 전에는, 남한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경협 확대, 교류·협력 확대 등 대북지원 3대 구상이 담긴 박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이 있었다. 적극적 입장이라면 그 실천 의지가 담긴 신호를 보내도 모자랐다. 소극적인 입장에서라도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을 차분하게 기다렸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한순간에 가지를 떠나는 낙화

그러나 미뤄도 될 공격적인 군사훈련을 강행하는 이율배반은 또 어떤 통일 전략이란 말인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인내와 파격적인 양보를 보여준 북한에게 우리 정부는 보란듯이 야멸차다. 이런 거리두기란 이용한 뒤에 버리는 권모술수 말고 달리 설명할 교범이 없다. 과열되는 국내 문제들을 어느 정도 식힌 것으로 족하다는 것인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향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모를리 없다. 북한이 먼저 보낸 신호다. 하지만 양쪽의 온도차가 너무 크다. 남북 관계개선 문제를 놓고 북한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지만, 남한은 의존적이며 수동적인 탓이다.

한·미 군사훈련이 극단적 빈곤 문제로 벼랑 끝에 선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흡수통일 의지를 품고 있다는 메세지 말고 달리 해석 될 여지는 적다. 그것은 무기 재고가 남아도는 미국이 주도한다. 다급하면 손들고 나와라는 식의 비인도적 행태 앞에 북한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핵탄두를 탑재하고 한반도 최남단까지 도달 할 수 있는 노동미사일 시험발사나 서해안 민가를 타격할 수 있는 해안포 사격훈련은 다름 아닌 '죽어도 혼자 죽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예고한다.        

박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이 액면 그대로 들리지 않는 지형이다. 은폐와 뒤치기, 조작으로 얼룩진 이 정권의 지나온 족적의 프리즘이 혼선을 더욱 부추긴다.

박 대통령이 국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해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망을 외교무대에서 만회하고자 한다면 피를 흘리지 않는 통일이야 말로 가장 효용가치가 크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북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독일 메르켈 총리의 조언을 통일의 이정표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
파주와 백령도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이 정부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