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4월은 잔인한 달, 황폐한 우리들 마음과는 무관하게 꽃은 피고 훈풍이 분다. 차라리 노골적인 철권의 동토 아래서 우리는 적어도 꿈은 꾸었었다. 한 방울 눈물같은 생명수를 흉중에 품고 지상으로 뚫고 올라가려는 새싹은 잠에서 깨어나 뒤척인다. 저 위에서 부는 훈풍은 거짓이 아닐까.

시린 땅에 뿌리를 뻗고 미풍에 서걱대는 마른 풀은 내일을 볼 수 있을까. 해빙되지 않은 땅을 정수리로 치받는 씨앗들에게 4월은 잔인하다. 봄이 왔으니 비도 오리라. 비에 젖은 훈풍이 다시 맞이할 새 날의 꿈을 일깨우리라. 라일락의 낯설고 짙은 향기에 현기증을 느끼며 추억의 욕망에 일어나는 신열을 감당해야 하는 잔인한 달 4월이다.    

특정인의 선거 사조직으로 전락한 뒤 패악질과 날조를 일삼는 국정원은 거짓말과 은폐로 하늘을 가리고, 수뇌부와 야전사령부에 정권의 집중포화를 당했던 검찰에게는 성역이 생겼다. 이 얼어붙은 땅 위에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여성 대통령을 선출해 세계 열강들조차 놀랄 성숙된 민주주의 수준을 만방에 드높였다.

박 대통령의 약속파기와 국정원 비호 그리고 대 국민 기만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독단과 전횡에서 비롯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이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이 정권은 국민을 대표하여 끊임없이 권부와 관료들에게 충성 신호를 타전하고 있다.

기밀에 살고 기밀에 죽어야 할 이 나라 국정원은 거꾸로 기밀과 비밀을 폭로하는 조직이다. 그 광포한 발아래 제1 야당이 종북세력으로 매도되고 개인들의 인권이 짓밟혀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입었지만, 이 정권은 국정원의 수장에게 일말의 책임도 묻지 않는다.

국정원의 국기문란 목적이 정권의 정통성 유지에 주효했다는 박 대통령의 심산이 장애 없이 읽힌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허물을 가려주는 국가기관의 충성에 확실하게 화답하고 있다. 충성하는 방법이 불법든 불의이든 '안으로 굽는 팔'의 정의구현에 상을 못줄 망정 벌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고압전류처럼 흐른다.

"나에게 충성하면 나는 너희를 반드시 지킨다"는 신호는 국정원 뿐만 아니라 다른 권력기관 수뇌들의 뇌리에도 각인된 지 오래다. 이 신호를 뒤집으면 "나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면 반드시 응징한다"가 된다. 이 신호가 지닌 폭력성과 이 신호를 무조건 믿게 만든 요지부동의 태도에 전율이 인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제 박근혜 정권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조폭의 충성, 그 안에 무엇이 있겠는가. 국가기관들이 그런 충성의 대열에 줄을 선다면 각 특별한 기능들은 오직 한가지 목적에 동원된다. 이렇게 조직들이 본령을 벗어나면 존재이유가 희박해지게 마련이다. 반면 특권의식은 강해지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검찰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법 집행의 저울추를 속이며 고무줄 잣대를 들고 설치면서 부끄러운줄도 모르지 않는가. 이런 조직에게 스스로 지은 죄를 성찰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가 조직들이 진영의 영역 보전을 위해 존재한다면 마땅히 용도폐기돼야 한다.

방치한다면 '권력'은 필경 '폭력'으로 바뀌어 국민들을 짓누르고 재갈을 물릴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부가 없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 세대 전 이었다. 지웠다고 믿었던 그 마음이 언제부턴가 되살아났다. 라일락이 땅 밑의 자양분으로 꽃을 피우고 땅 밑에서는 새싹이 움터 오르지만 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이런 괴리감은 우리가 믿는 길이 막힌데서 온다. 공명정대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위정자가 국민을 속이고 원칙을 무너뜨리며 혼란을 야기하면서 불안의 틈새를 역이용하는데서 비롯한다. 여기에 국가기관이 가세하고 권력 조직이 면죄부를 주기에 국민들은 믿고 의지할 곳이 없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면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대부분의 정치인들 역시 계절을 속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위나 아래나 정치하는 자들은 다 한통속인 것만 같다. 이번에 익산시장에 도전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유권자를 업신여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공정한 경쟁에 혈안이 되어있다.

이긴자가 정의인 계절

청년기에 고향을 떠나 나름 사회적 지위를 얻어 타지에서 전전했던 혹자는 거짓말을 자기 경쟁력으로 여기는 듯 하다. 특정 후보를 중상모략하고 여론을 조작하며 '불안'을 조장해 자기를 부각시키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혹자는 처음부터 완주할 의사가 없었으면서, 짐짓 지지를 호소하며 정치적 불로소득을 취하는데 여념이 없다.

6.4지방선거호에 무임승차한 그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단일화 같은 내용 없는 정치이벤트를 주도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노리는 등 '아니면 말고 식'의 술수로 일관한다. 이런 후보들 때문에 유권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혹자는 도시의 위기론을 만들어 지역 브랜드와 산업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도시가 어떻게 되든 켜켜히 쌓이는 불안을 딛고 올라가 승리의 고지에 깃발을 꽂고야 말겠다는 광기가 가득한 선거정국이다. 그래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런 행태에 섞이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혹자도 있다. 밖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내부에 들어가 알게 된 그는 상처투성이가 됐다.

비단 익산만의 풍경이 아닐 것이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탁하다. 이긴자가 정의인 이 시대에 불현듯 계절을 잊고 살고있지 않는가를 물어 보게 되는 날엔 이토록 시리고 저미는 황무지의 한 복판에 선다. 계절은 순리를 드러낸다. 변함없이 예측 가능한 것이 순리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봄이 30여년 전의 그 봄이 맞는가.

잔인한 이 달 4월은 갈등과 반목의 계절이 낳을 수 많은 괴물들을 잉태하고 있다. 크고 작은 보스들과 그 앞에 도열한 조폭들은 사익 앞에서 얼마나 잔인할 것이며 그런 충성 경쟁으로 국토는 또 얼마나 유린될 것인가. 지금 반칙의 온상인 국가 최고지도자를 통해 투영되는 살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