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4월의 제주도에는 샛노란 생명들이 생동한다. 산자락에 펼쳐진 평원의 유채꽃 물은 미풍에 배어나올 정도로 선연하다. 햇병아리들처럼 종종대는 꽃 내음과 물기운은 바람에 실려 천지를 가득 메우고 사람은 그 사이에서 그만 취해 발 걸음의 갈피를 잃어버리고 만다.

비단 이맘 때가 아니더라도 막연히 제주도를 동경하게 된 사람이라면 이생진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성우들은 물론 목소리에 자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낭송했던 그 시에서, 성산포에서는 다른 곳에 없는 푸른 해가 떠오르고, 그 해는 손을 대면 화끈 달아 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제주도의 수평선과 파도소리는 그렇게 유쾌할 수 없게 사람의 눈을 베고 귀를 찢어 놓는다. 술에 취한 바다는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으며, 떠나간 이에 대한 기억을 씻어 내어 밤으로도 지울 수 없고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가슴 속에 머물게 할 것이다.

다 아니더라도 제주도를 향해 여장을 꾸린 사람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들국화 일원이었던 최성원의 목소리이거나 또는 달콤한 성시경의 목소리로 부르는 '제주도 푸른 밤' 정도는 흐르지 않을까. 오랫동안 지친 일상의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떠나는 곳 제주도.

숨막히는 경쟁이 없고 차갑게 가로막힌 데가 없는 곳, 대신에 바다의 속삭임이 좋은 곳,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서 전원의 삶을 그리며 사소한 행복에 젖어들 수 있는 곳, 짙푸른 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몸과 마음을 별빛에 씻고 푸르게 빛나는 희망을 가득 채우는 그 곳. 

그런 치유의 섬을 상상했을 것이다. 세월호에 몸을 실은 그들도. 야트막한 돌담 너머 바다와 감귤 밭 그리고 파도소리 생생한 그곳의 풍광을 그렸을 것이다. 인생의 노정에서 아직 원시림이었던 그들의 몸과 마음이 별안간 영문도 모른 채 이름 없는 별로 행선지를 바꿀 때 까지.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을 마주하며 설레였으리라.

입시와 부모의 욕심으로 억압당한 자유가 드넓은 바다 위를 미끄러지며 찬란한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리라. 기꺼이 전부를 맡겼던 배가 먹 빛 심해로 가라앉고 바다가 생명을 압박할 때, 잠들지 않고 두 눈 부릅뜨고 희망을 잡지 않은 이 누가 있었을까. 이 세상에 좀 더 다정한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회한에 괴롭지 않은 이 누가 있었으랴.

그런 희망과 못다한 사랑을 자신의 목숨으로 지킨 이들도 있었다. 물 위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은 다른 이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끝내 차가운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스승은 제자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오빠는 동생에게 승무원은 승객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

고 남윤철 교사가 마지막 남긴 말은 "빨리 빠져나가"였다. 방에 물이 차오르자 아이들을 대피시키던 그는 학생들과 함께 구조되지 못했다. 제자들의 기억 속에 그는 아이들과 함께 노래방에 갈 정도로 친구같던 선생님이었다.

단원고 2학년 고 정차웅 군은 7년 전에 검도를 시작해 3단의 실력을 쌓았고 사범의 꿈을 키워왔던 유채 냄새 짙은 아이였다. 생일을 하루 앞 둔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건네고 더 많은 친구들을 구하려다 숨졌다.

고 최혜정 교사는 생사가 갈리는 순간에 10여명의 학생을 구출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도 나간다"고 했다. 올해 첫 교편을 잡은 새내기 교사는 자신의 첫 제자들을 그렇게 지켜냈지만 자신은 돌아오지 못했다.

고 세월호 양대홍 사무장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승객들을 구해야 한다는 결의를 아내와 나눈 마지막 통화에 남겼다. "수협 통장에 돈 있으니까 아이 등록금으로 써.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  

승무원 고 박지영은 22세 꽃다운 나이였다. 그녀는 4층에서 구명조끼를 구해 3층 학생들에게 건네며 가슴까지 물이 차올라도 마지막까지 승객을 구조했다. 누나도 빨리 나오라는 학생들의 재촉에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이 마지막이야"라고 손사래를 쳤다.

망자들의 치유 앞에 부끄러운 자화상

국가라 부르든 사회라 부르든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다한 이들은 희생자들 뿐이었다. 사선에서 인간의 천부적 의무에 본능적으로 매달린 그들은 스스로 마땅한 일을 하되 단호했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인간 존엄성과 그들의 지고지순한 뜻은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에 화인 처럼 찍혔다. 그들이 죽었으나 죽지 않은 이유다.

그대로 있어야 안전하다는 방송을 믿고 악몽에서 어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이들은 선장과 선원 15명의 활로를 열었다.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선장과 선원들은 가만히 있어준 승객들 덕에 안전한 출구를 확보한 것이 아닌가. 착한 행동은 결국 어리석었다.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악마를 세상으로 살려 보낸 꼴이 되었다.

그러나 정의는 어리석을 수 밖에 없다. 세월호에서는 선과 악이 동시에 빠져나왔지만, 남은 이들은 치유의 별이 되었다. 어둠을 밝히는 푸른 길이 되었다. 그이들은 스스로 제주도가 되었다. 더 늦기 전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부끄럽게 살지 않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것을 그이들은 말해주고 있다.

사랑과 증오의 아픔을 삼켜야 하는 지금, 그이들의 손길이 이 세상 사람들의 갈라진 가슴을 어루만진다. 생사를 가르는 시간을 허망하게 허비한 관제시스템과 초기에 배 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마지막 사투 현장을 방치한 구조시스템, 오류와 한계에 허둥대며 허언을 남발한 대통령과 관련부처들의 부실한 통제 시스템은 바로 그런 정의와 사랑을 죽였다.

공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다. 제자들보다 먼저 구조된 것이 부끄러워 자결한 사표 교감 선생님의 유서를 통해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그이들의 바다, 재난 공통체는 우리가 또다시 범할 집단망각을 항복시켜 바다에 눕게 할 파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