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노동절, 오늘 우리의 노동이 서 있는 곳은 어디쯤인가. 선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선장 조차 1년 계약직인 세월호에 수백명이 목숨을 맡겼듯이, 탐욕에 억눌린 결함투성이의 무책임호에 승선한 노동은 불안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다.

금권의 착취 아래서 오직 자기만 살아남기 위한 노동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이는 노동이 노동을 소외시키는 기제다.

IMF 금융위기의 파고를 피하려고 우리가 다급하게 승선한 배 '신자유주의호'는 노동의 본질을 왜곡하고 비인간화를 가속화시켰다. 그 출발은 감량화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상명령에 사용자는 앞으로 나서고 노동자는 뒤로 물러섰다. 노동이 불안의 구렁텅이에 들어가 돈의 안전을 담보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랜들리 마인드에 힘을 실었고, 선박사용 연한을 대폭 늘려 줄 수 있었던 근거였다. 청해진해운은 18년 된 중고 배(세월호)를 구입했다. 세월호와 같은 규모의 여객선 가격은 1천억여 원인데, 중고 배는 146억원짜리였다. 청해진해운은 선박을 개조해 선실을 50% 더 늘렸다. 사고 당시 화물도 과적했다.

이윤 극대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호는 이렇게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은 자본의 지배 아래 무기력하며, 자본에 저항하는 노동에게 설자리란 없다. 회사에서 버림받고 세상을 등지는 노동자들의 행렬은 그 도태 현상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그것을 공감하지 못하며 오직 자신의 불안한 생존에 급급한다.

파편화 된 노동들은 매순간 자기를 추스르고 불안을 줄이는데 매달리며 자족하는 자기학습에 집중한다.

노동운동이 사면초가에 떨어지게 된 배경이다. 이번 노동절에는 제대로 큰 목소리를 내겠다고 벼르던 노동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나라 분위기를 해칠 수 없어 존재를 확인하는 날에도 자기를 억눌렀다. 자본의 탐욕이 저지른 참극에 노동이 주눅드는 나침반을 잃은 항로다. 고개를 들어 북극성을 찾아야 할 때다.

노동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노동과 자본이 대립하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이 아니라 노동의 본래적 지위를 정초하지 않고는 노동이 맹골수도의 격랑에서 빠져나갈 길이란 없다.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다. 에너지원을 구하고 추출하며 흡수하는 몸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노동을 멈추지 않는다. 신경조차도 오감의 노동에 필요한 물질들의 이동 경로이며, 오감이 지향하는 살 맛의 문화 역시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인간의 행복, 혹은 목표에 도달하는 데 노동이 배제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숨을 쉬는 데  필요한 모든 노동의 현장들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운동을 위한 노동, 노동을 위한 운동은 끊임없는 순환을 낳지만 우리는 그 유기적 작용들을 눈으로 볼 수 없다. 내부는 외부의 먹이를 쟁취하는 데 필요한 동력을 생산하고 두뇌와 손발은 그 도구일 뿐이다. 먹이사슬 안에 머무는 동물, 혹은 인간은 늘 조바심친다.

내부가 생명활동의 원천이면서 눈에 띄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의 노동활동이 현실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조급증 때문이다. 노동이 그 천부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노동은 평등을 내포하고 생산과 소비의 모든 과정에서 필요하지만, 인간은 소비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 굴며 소비는 노동과 무관하다는 듯이 살아간다.

재화의 독과점과 기회의 불평등이 시장의 질서로 고착되게 해준 환경이다. 노동은 인간공동체의 생존 수단이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연대의 근원이지만, 그 노동의 가치는 비인간성에 함몰된 것이다. 소수 경제 기득권세력이 관전하는 무한경쟁의 시장은 다수의 원형경기장, 생존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장터다.

노동에 의한 사회의 선순환 구조는 노동권 보장에서만 가능한데, 노동의 고지는 불안정하며 노동자는 착취와 사수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탈환하지 못하면 노동의 기회도 갖지 못하며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는 순간 고지를 빼앗기는 백병전에 노출되어 있다. 노동자는 경제권력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와 사투를 벌이는 검투사의 운명이다.

반사회성을 개조해야 노동 신성성 회복

그러므로 노동의 본질은 투쟁이 아닐까 한다. 시민으로서의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노예근성을 버려야 하고, 과실을 평등하게 나누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억압에 저항해야 한다. 그 투지는 자기 내부에서 동력을 얻어야 한다. 이기적 자기중심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한 자기 투쟁이 먼저다. 뇌 회로에 눌러붙은 무사안일과 방관, 회피 같은 반사회성을 뜯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고통과 외로움을 물리쳐야 한다. 이런 자기와의 투쟁은 신자유주의의 도그마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원심력이다. 경제이념과 노동이념의 접점은 '인간'이라는 공통분모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인권을 지니며 중재 기구인 국가를 소유한다.

노동운동이 인권운동으로 자리매김되면 그것은 경제이념에 경도된 국가에의 사회저항을 촉발시켜 사회 변혁에 도달할 돌파구가 된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투지는 '노동이 노동자의 전유물'이라는 틀을 깨고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공감대 안에서 발현된다.  

자본과 노동은 대척점에 놓여있어서는 안된다. 자본은 결국 노동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본질은 축적이 아니라 순환이다. 더 많은 노동을 생산하고 보다 완전한 사회 공동체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이를 위해 국가의 기능을 가동해야 하는 이유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스템의 강요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세워야 한다.

6.4전국동시 지방선거는 우리들의 의지가 첫 걸음을 내딛는 계기였으면 한다. 우리가 노동을 자각하고 노동에 공감하며 안전한 노동환경에 기여하는 출발점이었으면 한다. 노동과 자본의 공생을 실현하는 정권 창출 역량을 우리가 길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