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소통신문 창간 주기는 5.18광주민주화항쟁 주기와 함께 한다. 광주 항쟁 34주기에 소통신문 창간은 5주년을 맞이한다. 닷새 뒤면 탐욕의 억압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자기 몸을 박살낸, 이 세상에선 바보일 수 밖에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 서거 5주기다.

운명 같은 세월호 참사의 무게를 짊어지고 우리가 향해 나아가던 곳을 문득 유심히 응시하게 되는 주기다. 일순 어김없이 깨어난 기억들이 소름처럼 곤두서는 내부의 팽창을 경험한다. 그러나 나는 견디고 있다. 나를 산산이 찢어버릴 압력을 누르며 그 긴장으로 나는 한 동안 질식한다.

아아 이만큼 튼튼해진 근육이다. 파열과 회복이 거듭되면서 두 배씩 복제·증강된 근육은 불쾌한 기억들을 단숨에 눌러버리는구나.

참담한 기억들보다 그것을 에워싼 단단한 근육에 질린 시야는 몹시 흐리다. 우리가 나아가던 곳이 어디였던가. 황망히 방향을 바꾸는 우리의 좌표는 무엇을 향하고 있나. 방향타는 정확한 것일까. 모순이다. 이 불안과 슬픔의 근원은 퇴화되는 기억이 아니라 자기방어의 근육이다.  

참혹한 우리들의 현장과 강렬한 기시감이 교차 할 때, 슬퍼하지 못하고 분노하지 못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과거에 바로잡지 못한 현실과 미래는 선명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감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럴 수가 있는가. 오월은 서른 한 날 내내 열매 맺지 못하고 흩어진 꽃잎들이 떠다니는 눈물 강이 되었다. 민주화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몸 바친 이들과 부실한 국가의 희생양이 된 청춘들의 꿈이 허망한 주검에 갇힌 달이다.

그러나 그 제례의 행렬에 5월의 노래는 없다. 케이비에스나 엠비씨같은 공영방송들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국가의 위신에 먹칠을 하는 세력인 양 모욕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진실을 외면한다. 무의미한 것을 각색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오보를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태도를 보인다.

거기에는 최소한의 수치심도 없다. 당자들의 슬픔과 분노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일선 기자들이 보다 못해 사죄하고 나섰지만,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정부책임과 관련한 보도 축소를 방송사 사장이나 보도국장이 주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근육이 잘 발달한 그들은 현재권력의 도구일 뿐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본성을 버린 갑 진영의 용병들일 뿐이다. 지금 그들이 그 자리를 떠난다고 을이 그 자리에 들어가서 을의 현실을 공중파로 송출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가 대통령인 이상 양대 방송사의 카메라가 현 정부의 치부를 비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실이 그걸 방증한다.

박 대통령은 최근 정부의 사정기능을 총괄하고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는 민정비서관에 우병우 검사를 내정했다. 우병우는 지난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맡았던 대검찰청 중수1과장이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면서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무차별적 피의사실 공표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다.

이 정권이 자기방어를 위해 패도적 인사를 한 예가 어디 편파수사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우병우 뿐이던가. 박정희 유신의 골격을 짰던 김기춘 비서실장을 위시한 내각의 수장들은 하나같이 도덕성 결여를 의심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사실들이 그것을 방증한다.
검사였던 정홍원 총리는 한보그룹의 서울 수서지구 개발비리 사건을 수사한 직후에 그 한보아파트 분양을 받아 시세차익을 챙겼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2001년 당시 고위층 특혜 분양 비리가 터졌던 경기 분당 파크뷰아파트를 분양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김병관 국방장관은 군 재직 시절, 군사보호구역 해제 예정지를 미리 헐값에 매입했다가 되팔아 무려 80배의 차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전 장관은 공직자로서 자기 형이 있는 회사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생존 전략은 박 대통령이 왜 그들을 선택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권력과 특권을 매개로 얽힌 세력들은 전관예우의 관행을 통해 그들의 카르텔이 얼마나 공고한가를 드러낸다. 
사법부의 요직을 거친 정홍원 총리와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퇴직후 대형 로펌에서 매달 수 천에서 1억원씩 보수를 받았다. 경제기획원 출신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재정경제부에서 1억원이 넘는 특혜를 받았다. 김병관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거친 전력을 이용해 국방부를 상대로 무기수입상의 브로커로 활동했다. 

노무현과 꽃다운 청춘들의
영정 앞에 놓을 것이 없다

그들의 속성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재하는 것이며, 이권을 공유하며 카르텔을 유지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것을 잘 알고 있거니와 그런 점에서의 충성에 기대를 걸었으리라. 다른 것들, 마땅히 충족해야 할 가치들을 애써 외면했기에, 그들을 기용하면서 홍익인간의 철학을 기대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소위 국가 최고회의의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편향성은 박 대통령의 생각과 지향점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정홍원은 "국기 경례를 거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파시스트고, 황교안은 "국가보안법은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 개정이나 폐지가 논의될 수 없는 법이다"고 말하는 냉전 독재의 망령이다.

김병관은 전역 후에 "종북세력 척결의 결사대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그 밖에 누군가는 온전하던가. 친재벌 정책을 펴겠다고 호언했던 신제윤은 금융위원장이고, 남재준은 또 어떤가. 

도대체 불균형한 사고에 무엇을 기대할까. 거기에는 소통의 의지 자체가 없다. 밀어붙이거나 회피하거나 비열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장벽이 되어 국민과 정부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극복하기 어려운 오류의 원인은 특권의식이다. 그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으며, 자신을 무결점 주체로 인식한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며, 폭력을 제압 수단으로 삼는 이유다. 여기서 무슨 윤리의식을 기대하겠는가. 진영의 이익에 기여하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는 생각, 그것으로 생존과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선택한 비인간화의 결과다.     

자기기만과 비겁으로 단련된 우리의 근육이 지금 우리의 세상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