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빨리 어른이 되어 떳떳하게 술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싶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술이 해롭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다. 시절 또한 변했다. 지천명(知天命)의 분기점을 돌면서도 담배를 피우면서 죄의식을 느껴야하는 처지다. 비흡연자를 보호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의 자유를 제도로 제한하는 탓이다.

창밖에 서 있는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어제와 같지 않다. 나무는 성장과 쇠퇴를 감내하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여기고 있다가 퍼뜩 시간의 철두철미한 걸음에 놀라는 이유다. 시간은 나무와 나를 동시에 변모시키는데다 실은 계속 움직이는 나무를 지켜본다.

오늘은 과거의 연장이지만 과거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그렇게 내일을 열고 있다. 한 권의 책이 매번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서는 것과 같이. 나는 유전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부단히 정보를 수집하고 오류를 깨달으며 오류를 수정하면서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간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소중하다. 현재는 경험이 축적된 결과이자 동시에 새로움의 시작이다. 내일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오늘 우리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다. 그렇지 않고, 오늘이 어제와 같고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을 테니까.

하지만 세월호에서 희생된 수백의 청소년들은 아직 약관(弱冠)의 나이에도 이르지 못했기에 소중한 현재를 미래의 어느 지점에 두고, 당최 죽음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냉혹한 경쟁사회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여유 조차 주지 않았다. 앞만 보고 내달리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한 번도 새롭게 손질된 적이 없는 공동체의 썩은 그물은 그들을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내지 못했다. 불귀의 객이 된 그들은 지금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까. 어른이 되면 하고 싶었던 사소한 것들이 별 것 아니라고 느끼게 될지라도, 그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당장 억압했을 열망이 그들의 시신에는 없다.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이 흘린 눈물은 이 나라 어른들의 애도를 대표할 만하다. 그러나 그 눈물은 수 백의 청소년들이 미래를 위해 담보한, 그 자유를 부둥켜 안고서 흘린 것일까. 그 대답을 듣기 전에 우선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 눈물이다. 그것이 다른 정서에서 표출된 감정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눈물에는 슬픔은 있었으나 국민적 분노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국가기관을 폐지한다는 폭탄 발언까지 하면서도 정작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또, 너무나 늦은 대국민 사과였다. 나아가 조직화된 무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구조 실패에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지만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던 이유다.

대통령의 정서는 왜 이렇게 보편적이지 못한 것일까. 그의 어린시절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는 모든 문제 앞에서 폐쇄성을 드러낸다. 일일이 논거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 취임 이후 보여준 수많은 행적이 그것을 방증한다. 모든 사건의 당사자와 국민과의 불통은 사건들을 매듭짓거나 정리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수많은 사건은 진행형이며 그래서 국민적 울분과 피로도는 어느 정권에서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말을 하더라도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하되, 그 효과만을 생각할 뿐 공감을 고려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이미지의 틀 안에 갇힌 핏기 없는 대통령의 얼굴이 투영된다. 

그의 언행이 의도되거나 조작된 것 같다는 의심이 드는 것은 그가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슬퍼하더라도 슬픈 이들과 함께 슬퍼하지 않는 다른 층위의 감정이 어필될 수 있는 곳은 자기 진영이다. 자기의 감정을 공유하는 무리들은 국민들과 각노는 대통령의 눈물에 화답한다.

‘이 미개한 국민들은 해도해도 너무한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이 다 져야 한단 말인가’. 대통령에게는 그런 말들이 더 크게 들린다. 국민을 도구이자 상품·통제 대상으로 취급해 온 국가 운영의 체질과 그 층위를 같이하는 대통령의 진영은, 저런 형편없는 국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느라 대통령이 노고가 많다는 메세지로 그를 위로한다.

성장을 멈춘 인간, 낡은 집단이 아니고선 인간다운 대접과 존중을 요구하는 국민적 규범을 이렇게 유린할 수는 없다. 그렇다. 대통령은 살아있으나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낡은 피, 박제화된 인간

낡은 기억의 잔재에 사로잡혀 과거의 패턴으로 생생한 현재를 진부한 것으로 뒤바꾸는 것이 진영의 이익이라면 그 진영은 얼마나 가겠는가. 지금 이 순간 과거와 동일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과거에 주저앉히는 관성은 과거에, 그 때의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지금은 전혀 다른 현재이고, 그때와는 다른 생각과 다른 삶의 목표와 전혀 다른 삶이 새롭게 놓여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응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더 나은 나로 변하지 않는 사람은 성장을 향해 마음을 닫아 정서의 역동성을 쇠퇴시킨다.

기실, 시간은 우리를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새롭게 반응할 계기를 주며, 늘 과거의 낡은 틀을 새롭게 깰 기회를 주지만, 우리는 그것에 둔감하다. 혹은 그것을 부정한다. 지속가능성을 상실한 정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에 실존적으로 교감하지 못한다.

감정이 기억으로 남지 못하는 이유이며, 그로인해 공동체의 의미망에서 분리된 정서는 드러누운 채 뻣뻣하게 굳어간다. 이런 상태로는 생동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열 수도 없다. 미움도 용서도 없다. 대통령에게는 지금, 그로 하여금 과거의 장막을 걷어내고 눈 앞에 있는 새로운 것들을 만지게 해 줄 가이드가 필요하다.

김기춘과 같은 낡은 피의 수혈자는 대통령을 유리온실 속의 권력자로 희화화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