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인간은 유혹에 약한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직업의식이 투철했던 사람이 확인시켜 줄 때 더 날카롭게 가시를 세운다. '국민검사' 안대희가 퇴직 후 5개월 동안 변호사 수임료로 16억원을 벌어들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들은 또다시 마음 둘 곳을 잃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위 '국가개조론'에 따른, 관피아 척결과 공직혁신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신임 국무총리 후보 안대희다. 그가 민관유착의 온상인 '전관예우' 안에서 불공정을 거래하지 않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규모의 축재를 해 온 것이다.

그는 과거 대검 중수부와 서울 중앙지검에서 입시학원 비리, 버스 비리, 설계 감리 비리 등을 파헤친 특수통 검사였다. 참여정부의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그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역대 가장 엄정한 검찰상을 세웠다.

그 서슬에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얻었고, 이회창 전 대표도 재기불능의 치명타를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 등 측근들이 구속돼 정치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런 안대희가 대법관직에서 퇴임한 후 하루 1,000만원 꼴의 변호사 수임료를 거둬들인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동안 그랬던 것과 같이 안 팎의 여러 주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번 인사를 또 밀어붙였으나 당사자의 사퇴로 좌절됐다. 대단한 국가개조다. 아니, 그런 국가개조라면 아주 충실하게 추진되어 왔다. 그것은 새 것을 허물고 낡은 것으로 대체하거나 낡은 것에 더 낡은 것을 보강하는 빅-코리아 만들기다.

사회·경제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장치 해 온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해 부의 쏠림이 극심하던 시대로 회귀하고, 그 복고의 황야에서는 정부가 방목한 잡식 공동의 발 아래 수많은 초식 집단들이 짓밟히고 있다. '낙수효과'라는 그 빈약한 경제논리 아래 정부는 아예 공룡치기로 나섰다.
무릇 덩치가 클수록 많이 집어삼키고, 쓰러질 때는 발 아래 있던 작은 목숨부치들을 무더기로 깔아 뭉게는 법이다. 느닷없이 침몰한 세월호는 그 가장 비근한 예다. 더구나 빚으로 세워지고 빚으로 유지되던 청해진 해운은, 정부가 금융자본으로 사육하는 공룡의 허약한 체질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큰 것은 갑이고 작은 것은 을이다. 현실이다. 세월호는 수백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집어삼켰지만, 진실은 은폐되고 구원파는 금융자본 거품의 정점에 있는 무법자의 도피를 돕고 있다. 어떤 불법적 거리 시위도 용납하지 않는 서슬퍼런 이 정권 아래서 구원파의 사법방해와 불법시위는 무사하다.

반세기 동안 우리가 몸바쳐 온 불평등 줄이기는 수포로 돌아간지 오래다. 지긋지긋한 갑질 시스템에 우리는 한 없이 무력하다. 일상에서 난폭운전을 하는 벤츠는 갑질의 전형이다. 그런 벤츠가 다가오면 티코는 오싹하다. 방어운전을 하지 않다가 서로 충돌하면 티코 운전자는 잘잘못을 떠나 심각해진다.

심각한 정도가 아니다. 자동차 소유 수준이 부의 표상이라고 가정한다면 티코 운전자는 파산이다. 움직이는 차끼리 부딛치면 일방에 100% 과실이 없는 게 이나라 법이다. 벤츠의 측면 부위가 부서진 정도면 티코는 박살이 나서 고치는 것보다 차리리 새차를 구입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벤츠 수리비는 1억원이고, 티코는 새차를 구입한다 해도 5백만원에 못미친다. 티코 운전자의 과실이 훨씬 적더라도 벤츠 수리비 가운데 몇 천만원을 물어줘야 한다. 실로 큰 것에는 관대하고 작은 것에는 냉혹한 구조다. 법에서 큰 쪽이 지녀야 할 책임과 작은 쪽에 대한 관용이 빠져있는 탓이다.

오직 큰 것이 중요하고, 인과와 응보만 있는 미개한 법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다. 지난 2009년 쌍용차동차 파업 이후 줄기차게 제기되어 온 문제다. 노동자와 그 가족  24명이 숨졌는데, 이 죽음의 행렬은 단지 작다는 이유로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들은 죽음에 이를 만큼 잘못을 저질렀는가. 아니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동자들끼리 스크럼을 짜고 폭주하는 공룡을 막아섰을 뿐이다. 그들에게서 온전히 희망을 빼앗은 것은 가해자 측의 자력을 고려하지 않는 법원의 판결과 실질적 형평성이 고려되지 않은 법이었다.

쌍용차 사측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수백억원에 달하는 손배소를 제기하면서, 부동산을 비롯한 통장계좌나 채권 같은 개인 명의 재산을 전부 가압류해 노동자들은 소송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에 떨어졌다. 그들이 이 부당한 세상을 등진 뒤에도 법원은 남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40여명에게 피해를 본 사측에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기업의 불법행위에 노조가 불법 파업으로 맞섰지만 법은 수억원의 인지대를 단번에 낼 수 있는 사측 편이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죽은자보다 더 불행하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성으로
부당한 현실을 정면 돌파해야

최근 KBS 기자들이 총파업을 결정하고, KBS를 청영방송으로 만든 길환영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공영방송이 무사안일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정권의 막가파식 불통과 독주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를 묻게 된다.

이번 KBS 종사원들의 행동이 전국민의 의제로 부상한 세월호 정국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에서 비롯한 질문이다. 쌍용차 때는 왜 공정보도를 문제 삼지 않았을까. 그 뿐인가.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 철도공사 같은 초대형 노사분규와 공권력 남용, 손배소 폭탄의 투하 때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냈던가.

그나마 이번 파업 결정은 MBC 사측에 손배소 당했던 MBC 파업 종사자들이 면책 선고를 받은 데 따른 용기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성 때문에 나선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KBS 종사원들은 이번 분규를 통해 그동안의 죄상에 대한 국민적 면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인 '비정상의 정상화'가 개념 부재의 여론 호도용이 아니라 진정한 국정지표가 되는데 일조해야 할 책무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