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6.4지방선거에서 새정연은 참패했다. 굳이 숫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적어도 새정연의 텃밭인 호남은 누가 보아도 돌풍이 지나간 쑥대밭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일까. 두 말 할 것도 없다. 희망을 쫓던 유권자들이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진 희망에 망연자실하며 몸서리친 결과다.

그렇다면 갑자기 종적을 감춘 희망은 무엇이었나. 답은 단순하다. 호남지역의 유권자들이 지난 1년 새 무엇에 열광했는가를 돌아보면 안다. 바로 정계에 정식으로 입문한 안철수였다. 그는 짧은 기간에 돌풍을 일으켰고, 당시 민주당은 그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열화와 같은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신당 창당을 추진하던 안철수가 뜻밖의 인물난으로 신당 창당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민주당에게는 기회였다. 안철수는 기초의원 무공천이라는 명분을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한 교집합 영역으로 삼았고 통합을 전격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은 17대 대선 때와 오버랩된다. 

각계의 평가가 어떻든 안철수는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한 몸에 받았던 기대주다. 하지만 정당주의 정치 틀 안에서 그의 한계는 뚜렷하게 드러났고, 궁여지책으로 정당 가까이만 가면 큰 상처를 입고 출혈을 감수해야만 했다.

안철수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도 17대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패했다. 현실 정치에 둔감했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미숙한 정치인이다. 그가 저저른 실수들은 스스로 새정치의 프레임에 걸린 조급증에서 비롯됐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후 정치노선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다가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것은 새 정치가 낡은 정치에 귀속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국민들의 손에 잡힐 것 같던 안철수의 정체성은 불투명해졌다. 정치적 역량도 도마에 올랐다. 패배는 자초한 결과였다. 스스로 인정 했듯이 준비가 미흡했다.

대선이 끝나고 미국으로 떠났던 그가 다시 돌아와 지난해 4.24재보선에서 노원병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그의 마음가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정치에서 쟁취한 성과를 토대로 국민들의 지지를 구체화한다는 접근법이 드러났다. 노원병에서 얻은 민심이 이 나라의 도처에서 일렁이는 자신에 대한 신망을 가늠할 지표라는 인식도 보였다.

신당 창당 작업은 거기서 시작됐다. 그러나 출범과 동시에 민주당과 통합된 새정치연합 구성원들은 물에 기름이었다. 통합은 공생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아니라 공존의 그늘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새정치연합은 급격히 도태되어갔다. 배제와 충돌을 낳은 한 지붕 두 가족의 정치적 지분다툼은 결과적으로 안철수에게 심대한 상처를 안겨줬다.

여권 심판론을 촉발시킨 세월호 정국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이래 현 정권에 대한 불신임 정서 확장 등 국민들이 만들어 준 절호의 기회를 새정치연합은 자중지란을 일으켜 놓쳐버린 것이다.    

석패한 인천, 경기, 부산의 선거결과를 감안하면, 새정치연합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경상남북도와 대구·울산·제주를 제외하고 12곳을 청색으로 칠할 수 있었다.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 박빙이나마 우세를 점하고 마지막까지 박빙의 매치를 벌이다 미세한 차이로 결정난 지역이 3곳에 이른다.  

붕당의식의 잣대로 내부의 벼랑끝 대치전선을 만들어낸 낡은 정치풍토가 초래한 결과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안철수는 통합 전 자기 진영의 손발을 묶었었다. 지방선거 무공천으로 허송세월을 하게 만들었고, '무공천'이 통합정신의 근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천'으로 선회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로인해 전략공천이 아니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지형에 떨어진 새정치계와 독점을 위한 배제의 정치에 함몰된 민주계의 진흙탕 싸움은 불가피한 구도였다. 새누리당에 전패를 안겨준 충청권의 표심은 그런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를 강하게 질타한다. 민심의 바로미터인 인천이나 경기도 같은 수도권의 전략적 요충지에서 초접전을 치르다 패배한 것은 새정치연합이 당 차원에서 다 익은 과실을 딸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못한 결과다.   

이렇게 호남권의 무소속 광풍까지 부른 근원에는 안철수 정신의 소멸이 있다. 새정치연합이 안철수의 피를 수혈해 새로워지는 대신, 안철수를 재물 삼아 당의 존속에 매달린 탓이다. 17대 대선에서 안철수는 문재인의 희생양이었고, 6.4지방선거에서 안철수는 꺼져가는 민주당을 밝힌 밀랍이었다.

안철수는 죽고 민주당은 살았지만, 무능한 정권을 심판하지 못했고 새정치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 국민들이 새정치연합을 등진 이유는 새누리당 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호남지역 36개 기초단체장 중 15개 기초단체장을 무소속에 헌납한 배경에는 새정치연합 소속만 아니면 된다는 텃밭 민심의 반란이 있다.

생존과 파멸의 갈림 길

안철수는 현실정치에 취약하다. 그래서 안철수는 온실을 맴돌았다. 안철수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안철수는 자신의 목표에 충실한 나머지 자기를 따르는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을 경시한다. 안철수에게는 조직이 없다. 그래서 타협하고 야합했다. 따라서 안철수는 민주당의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안철수 현상을 잊지 못한다. 이 땅에도 정의롭고, 공명정대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따라서 새정치연합이 안철수를 팽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 변화, 개혁 같은 국민과 새 시대의 화두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안철수는 박원순에게 자신의 야망을 양보했고, 문재인의 조직에서 패할 게 뻔한 경선에 참여해 지지세력을 결집하는데 헌신했다. 또, 6.4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과 대립하는 새로운 정당을 출범시키는 대신 빈사상태에 놓인 민주당의 피가 되었다. 그가 미완의 정치인일지라도 새정치의 지표일 수 있는 이유다.

새정치연합이 안철수를 견제해야 할 적으로 여기고, 자기진영 안에 들이는 목적을 '무장해제'와 '무력화'에 둔다면 새정치를 바라는 국민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정당의 개혁 없이는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펼 수 없다. 안철수가 새정치연합의 혁신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돌아선 국민들을 돌려세울 방도는 없다.

새정치연합이 기존 정치에 독립적일 수 밖에 없는 안철수를 주축으로 혁신을 단행하는 것에서 새정치는 시작된다. 명실공히 국민의 정당, 희망을 품은 정당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지금 처럼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안철수를 부초로 여기며 안착하지 못하도록 흔드는 것은 새정치연합이 맞이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발로 차는 짓이다. 

안철수는 현실정치에 다가섰다. '선 개혁 후 통합' 노선에서 '선 통합 후 개혁' 노선으로 옮겨탔다. 정치는 힘(권력)을 갖기 위한 행위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를 펼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 행동이다. 이제 새정치연합 차례다. 안철수를 바로세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