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6.4지방선거가 끝나고 20여일이 흘러간다. 가능하다면 재빠르게 후유증을 털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익산시장 선거 결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진 쪽을 선택한 시민보다 이긴 쪽을 선택한 시민들이 더 깊은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자기가 찍어 놓고 자기가 찍은 사람이 될 줄 몰랐다는 게 첫번째 반응이고, 이제 익산시는 어떻게 되느냐는 반문이 두번째 반응이다. 어떤 사람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투표 심리가 드러난다. 때문에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자각이 후폭풍으로 휘몰아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당선자가 폭력 전과자이고 그 동생이 조폭 두목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경악하기도 한다. 그 동생은 끔찍한 과거 전력을 차치하고라도, 최근에는 모 방송국의 피디를 직접 칼로 마구 찔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이다. 공보물에 전과기록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조차 살피지 않고 투표를 한 점을 자책하며 가슴을 치는 이도 있다.

왜 이런 가족사가 이제와서 거론되는가. 선거공보물에 당선인이 적었던 집안 내력에서 기인한다. 외조부와 부친, 자신 그리고 자식에 이르기까지 4대째 나라와 익산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집안이라며 제법 굵고 큰 활자를 빌어 자랑하면서, 자신과 형제간의 과오에 대한 반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작 당선인 자신은 소집면제를 받아 군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독립운동가인 외조부와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 그리고 장교로 임관한 아들 등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견강부회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한다. 당선인의 관점으로 가족사를 말한다면, 당선인의 당대는 조폭 형제라고 해야 적실한가.

적어도 일반의 수준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지위를 다투는 처지에서 그런 식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한데 따른 시민들의 분노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당선인은 선거 과장에서 유권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였다. 그 하나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설립한 희망제작소가 자신을 희망후보로 선정했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박원순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과 함께 명칭을 도용했다.

또 하나는 당선인이 선거 일정 중 방송 3사에서 실시한 토론회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비리 시장으로 몰아세웠는데, 거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상대 후보에게 민선 4기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과정에서 소각장을 건설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당선되서는 코오롱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을 대우로 바꿔서 소각장을 지었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누가 들어도 상대 후보가 대우로부터 뇌물을 제공받고, 시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것으로 들렸다. 그러나 상대 후보가 민선 4기 시장으로 입성할 당시에는 입찰이 진행조차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업자 결정과 관련한 어떤 행정행위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마땅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밀려드는 회한을 어찌 할 수 없다. 범죄사실이 엄중하여 도중하차 하더라도 주어진 기간동안 시장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자질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때늦은 자성에서 비롯되었다.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공약집도 내놓지 않았고 공보물에 있는 공약 몇 개가 전부인데, 이마저도 비현실적인 것들이 대중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무엇을 하기 위해서 시장이 됐는지가 불분명한 것이다. 검증 대상이 검증 받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 만큼 부적격한 경우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낙선자인 이한수 전 시장은 어떤가. 당선자의 소각장 관련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법적 책임을 자기 손으로 묻지 않겠다고 입장을 정한 것으로 들린다. 희망후보 관련 허위사실 유포가 검찰에 고발된 것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제3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선거법을 위반한 사안은 제3자도 고발할 수 있지만,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는 친고죄에 해당해 본인이 직접 고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한수는 이번 선거에서 입은 상처를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다. 그가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고 완벽주의자라는 점에 비춰보면 예사롭지 않은 포용력이다.

그랬다. 이한수는 8년 동안 감성정치를 펼쳤다. '여성친화도시 1호 익산시'나 '복지수도 익산시'는 그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청렴과 원칙이라는 지표 앞에서는 그가 지닌 특유의 감수성의 촉수가 더욱 민감해져 무결점주의를 지향했다. 이런 성격에서는 장·단이 분절되는 법이다.

장점은, 시민들을 두려워하여 매사에 조심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말했던 목민관이 지녀야 할 첫번째 덕목이다. 단점은, 비판을 싫어하고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기에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은 비판 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독선의 발로다.

이런 독야청청의 성정은 토착세력과의 극복하기 어려운 간극을 벌였다. 민선 4기 초입에서 지역 기득권 세력의 카르텔로 인식되던 지역 유지들의 모임인 '이화회'를 해산시킨 것은 그 상징적 사건이다. 불의를 배척하는 그의 정치적 신념은 8년 내내 과도한 비판을 불렀다. 진보진영에서조차 그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확산됐다.

임기 중 모든 의혹과 문제들이 검증되고 해소됐지만, 비판의 누적은 오늘날 그를 침몰시키는 무게가 되었다. 도전과 열정의 산물인 익산산업단지 조성이 '부채'라는 부정적인 텍스트에 매몰됐다. 장차 익산을 세계 식품수도로 탈바꿈시킬 국가식품클러스터 유치나, 정부 각부처 간부들이 젊은 시장 이한수의 집념에 경의를 표할 정도로 만나고 또 만나며 땀으로 일군 끝에 천문학적으로 신장시킨 국가예산 확보 규모 같은 자랑거리도 거기에 함께 묻혀버렸다.   

반칙에 눌려버린 원칙

나아가 원칙에 정치생명을 걸었던 그는 후대에 재앙을 안겨줄 환경유해산업 저지에 무모할 정도로 모든 것을 던졌다. 대법원까지 가서 환경 업체에 패소했지만, 임기내 폐석산 사설매립장을 불허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켰다. 또한, 지역 환경업체의 임의적 매립장을 불허하다가, 앙심을 품은 같은 업체 대표에 의해 재판을 받고 선거법위반 전력을 안기도 했다.

지역의 굴뚝없는 알짜 산업인 대학간 통합에 기여했지만, 시민을 동원하고 특정 금융기관을 통해서 비용을 지원한 것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그는 이 전력을 영광의 상처로 여겼다. 그는 항상 옳은 쪽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과감하게 감수했다. 국제마음수련원이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지원을 결정했으나 기독교계의 압력을 받은 시의원들에 의해 좌절 된 후 원불교와 기독교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은 그 상징적 사건이다.

이한수는 또, 사람에 대해 정성을 다하는 정치인이었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청탁에 모호한 대답으로 흐렸고, 그것을 약속으로 오인한 업자와 브로커들이 그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악평하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한수는 그렇게 평가절하됐다.

시장직을 수행하기 위한 어떤 준비도 없어 보이고, 무엇을 잘 할 것 같지 않은 당선자를 지켜보면서 인간 이한수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어진다. 이한수는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겠지만, 시민 가운데 몇몇이라도 왜곡된 그의 진면목을 바로보고 그에게 지역을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칠 희망을 안겨주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책임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