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삶의 영속은 복제와 수정을 토대로 한다. 핵분열을 통한 세포의 자기복제와 낡은 세포의 사멸은 존재의 본질이다. 죽음은 그것을 멈춘다는 것이다. 동물은 환경에 지배된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진화는 자기수정에서 비롯된다.

복제는 종을 번식하는 수단이지만, 종의 보존 방식은 다른 종과 섞여서 우성인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현상의 기본 명제는 주체들간의 통섭이다. 통섭은 자기와 타자의 합목적성을 충족시키는 수단이며, 불확실한 내일을 오늘처럼 맞이할 수 있게 하는 안전장치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려면 자기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바꿔야 한다. 최적화된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란 없다. 최적화를 추구할 뿐이며 거기에는 부단한 자기수정이 요구된다. 이렇게 사회학적 존립방식은 생물학적 존재의 방법론과 서로 다르지 않다.

사회적 동물로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옷과 자신이 좋게 보이는 옷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다. 선호한다는 것은 주관적일 때와 객관적일 때 혹은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개성이 다양성 안에서 고정적이거나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기보다 유동적이며 호환적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물론, 자기는 자기만의 뜻을 지니며,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가 좋아하는 옷만 골라서 입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를 소수적 취향의 범주 안에 고립시킨다.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특정한 틀로 제한한다면 주변과의 통섭은 불가능해진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열성인자 복제의 악순환 고리에 사로잡힌다.

불통하는 소수의 담론이 확장성을 지닐리 없고, 영속성을 지닐 수 없다. 어떤 담론이든 통섭을 거치기 전에는 미완의 형태로 존재하며 절충의 폭을 지닌다. 사회적 담론은 상호 조율을 거치지 않고 완성되지 못한다. 사회적 지표가 되지 못하는 담론은 공허할 따름이다.

통섭의 시작은 듣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사고방식이 합리적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듣지 않고 말만 한다. 이른바 사회성이 부재한 경우다. 이런 사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필경 자기정체성 장애를 발견하게 된다. 우선, 들으면 상대의 말과 자기의 생각을 분석해야 하고 거기에 반응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망가진 경우가 있다.

상대방의 말을 변별하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말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통상의 인지체계를 크게 벗어난 것일 수 밖에 없다. 다는 경우는 결핍이다. 예컨데, 노동운동가가 파업을 유일한 수단으로 삼고 요구하는 바가 관철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으면서 다른 방법론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경우다.

투쟁만을 강조하는 그 이면에는 다른 방법론들에 대한 대응수단이 없는데 따른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은 다른 방법을 모르는데다, 상대방이 제시하는 해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그런 내용을 생각이라도 하는 순간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게 될테니까.

이렇게 불통은 결핍이다. 생물학적인 결함과 사회성 결여, 혹은 무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통은 여러 사회 병리현상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다. 불통은 공통체를 파괴하며 결국은 자기를 고립시킨다. 하물며 정치인이 이런 상태라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오늘 이 나라가 처한 꼴이 단적으로 명증한다.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널려있다.

앞서 말한 담론은 어떻게 창출되는가. 주제의 논점 주변을 둘러싼 다른 주제들과의 관계, 그 관계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상위 범주의 관점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그것이 부실하면 피상적이거나 왜곡된 논의를 초래한다.

주제의 짜임을 구체화하고 싶은 구심력과 시야의 외연을 넓히지 않을 수 없는 원심력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했느냐가 창출된 담론의 지배력을 결정한다. 개별 체계의 이면을 관통하는 총체적인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주장이든 설 자리가 없다.

하물며 정치인이 이런 기본소양의 결핍을 보인다면, 우리가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그의 부적격성을 우려하는 것이 그릇된 일인가. 더구나 한 도시를 이끌 지도자로 선출된 사람이, 대통령이 자신과 같은 박 씨이고 같은 육사 출신 아버지의 자식이므로 1,100억원 정도 소요되는 시청사 신축비를 요구하겠다는데 대단히 혁신적인 생각이라고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인가.
또는 그는 선거기간에 마련된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현직 시장인 상대후보를 비리공직자로 매도해 놓고도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전임 시장이 소각장 건설사업자를 코오롱으로 결정해 놓은 걸 상대후보가 대우건설로 바꿔 발주했다고 단정했다. 방송 토론회 동영상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수 십 여일이 지난 뒤, 소각장 건설 사업자로 코오롱이 결정된 어떤 절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박과 허위사실 유포론에 부딪히자, 그는 상대 후보를 지칭해 단정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선거에 이용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소각장 업자를 바꿔치기 했다고 단정하면서 상대후보를 몰아붙이는 대목에서 A4용지를 들어 올리며 자신이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예측 불가능한 상식을 수정해야

최근에는 그가 선거기간 중에 내건 상당 수 공약들이 표심을 낚아채려는 미끼에 불과했을 뿐, 실현 가능성이나 법적 근거가 전혀 검토되지 않은 것들이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의 나홀로 공약(空約)에 시민들은 공황상태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의 사고체계는 범상치 않다. 성찰의 시스템 부재를 드러낸다. 바뀐 환경에서 자기수정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생각하는게 무리일까. 과연 앞으로 익산시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정글 속에서 무리를 이루는 종(種)에게 리더는 생존의 지표와 같다. 그의 눈짓, 손짓, 행동, 말들은 무리의 오늘과 내일을 결정한다.

항로를 찾지 못하고 항해 환경을 모르며 배에 탄 이들의 정서도 읽지 못하는 선장에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더불어 산다는 건 유기적인 연대책임을 요구하는 인과율의 숙명에 따르는 것이다. 뽑았으니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진정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 여기는 현실이다. 상식이지 않는가. 부정행위를 문제의식 없이 행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좋은 일보다 나쁜일이 주로 발생한다.

더구나 앞선 자가 자신의 부정행위를 수정하거나 주변의 나쁜 일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측가능한 상식을 늘려갈 수 없다. 그것은 담론으로 승화될 상식의 부재를 의미한다. 나아가 서로에게 해가 되는 부정행위를 꺼리지 않는 관성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을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올리기 위해 스스로 필요한 일들을 결행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