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 2일 민선 7기 박경철호가 출범했다. 11전 12기의 신화에 시민들이 거는 기대가 큰 만큼 그의 무지와 미숙에서 비롯하는 불안도 크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부터 취임 직전까지 보여준 그의 거짓말들은 실망 수준을 넘어 좌절을 안겨줬다. 나아가 승리감에 도취한 독선과 교만은 불투명한 익산시의 내일을 가리킨다.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돌출 발언과 자기를 자랑하지 못해 안달난 천둥벌거숭이 행태를 지켜보면서 익산시의 앞날이 막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첫발을 내딛는 오늘은 그 구체적인 비판을 유보하고 축복의 말을 전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한다. 그를 뽑아준 시민들의 뜻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조언에 그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우선, 박경철 시장이 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회견을 주목한다. 민선 6기의 강령이라 할 수 있는 시정원칙(시민중심, 클린행정, 실속우선주의)으로 제시된 일곱가지의 역점사업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또 천명한 바와 같이, 이해와 화합을 통해서 선거로 갈라진 민심을 모아 대통합을 이뤄내어 새로운 익산발전시대를 힘차게 열어가기를 바란다.

의구심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박 시장이 취임을 준비하는 인수위원회에 행정전문가나 그 흔한 퇴직 공무원 한 사람 초빙하지 않았는데, 익산시 공조직을 제대로 파악하는 눈이 인수위원회에 있었을까. 익산시 조직은 시민중심이 아니라 공무원 중심으로 운용되었을까. 익산시 조직은 썩을 대로 썩어 구제불능이었을까. 익산시 조직은 겉치레 전시행정으로 만연한 집단이었을까.

도대체 3대 시정원칙으로 삼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던 것일까. 인수위원회는 대학교수를이 다수를 차지했고, 시민운동가들 몇몇과 정치지망생 등으로 구성됐다. 과연 이들이 익산시의 현안 가운데 우선사업을 추출하고 불요불급한 사업이 무엇이지를 잘 가려냈을까. 또, 자치단체가 제공을 도외시 해선 안될 공익도 잘 선별했을까.

인수위원회는 결정적으로, 박 당선자가 지역 정치권과 의회를 아울러 통합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갈 방안을 제시했을까. 공직사회 안팎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가장 중요한 통합문제가 논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금 박경철 시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자들일 것이다. 무소속 시장과 기성 정당 소속 시의원들을 연결하는 가교역에 나서줄 사람, 시민들을 고통속으로 몰아넣을 행정행위에 제동을 걸어 줄 사람,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분야를 물러서지 않고 직언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

당선 이후 박경철 시장이 보여준 완고한 태도가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 완고하다는 건 얼핏 강한 신념으로 비친다. 그러나 신념은 공감을 토대로 성립한다. 특히 선출직 공직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자신만의 공식으로 답을 도출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 답이 공직사회의 이정표가 될 수 없다.

객관성이 결여된 신념은 외면당할 수 밖에 없고, 힘을 동원해 강하게 밀어붙여 관철시키려고 하면 공조직은 혼란에 빠진다. 결국 시장은 장악력을 잃고 고립될 수 밖에 없다. 그 고통을 시민들이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진정한 신념에서 위엄과 기상이 배어나오는 이유다.

사실 신념이 없으면서 그것을 가장하는 것은 좌고우면하는 것 보다 못하다. 고압적인 자세로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기상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호랑이 껍질을 뒤집어 쓴 양에 불과하다. 한나라 양웅(揚雄)의 말처럼, 풀을 보면 좋아서 뜯어먹을 것이고, 표범을 보면 부들부들 떨면서 자기 껍질이 호랑이라는 사실을 잊을 것이다.

10년 전을 회고하건데, 인간 박경철에게는 소를 삼킬 굳세 기상과 세상의 모든 바다를 날아 건너갈 마음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빈한한 세월이 그를 이렇게 비루하게 만들었는가. 내세울 것이 없어 가족을 내세우고, 허풍을 치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내용도 없이 교만해지기까지 했다.

신념을 세우고자 하면, 궁구해야 한다. 박 시장의 처지에서 가장 가까운 학습법은 귀를 열어 많이 듣는 것이다. 그 듣는 귀는 자신의 끊임없는 질문에 해답을 쫓는 태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팎에서 신망과 덕망이 두터운 이를 찾아 가까이하고, 주변에서 지탄을 받는 이들을 멀리해야 한다.

신념은 공감의 토대 위에 선다

나아가 교언영색을 가리고 고언을 배척하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닦아서 얻어지는 것이다. 부단한 성찰과 개선으로 자기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신념은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신념은 서슬 푸른 기상을 발한다. 그래서 신념은 우리 삶 중에서 가장 강한 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자신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겸손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통섭의 열쇠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물처럼 부드러우며 경화되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물은 냄새도 없고 자극적인 맛도 없지만 누구에게든지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원천이다. 누가 물같은 태도를 거부하겠는가.

박경철 시장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일부 언론이 조그만 시시비비로 자꾸 발목을 잡는데 유감이라고 했다. 발전과 화합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참고 있는데, 앞으로는 31만의 시민의 뜻으로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언론이 지적하는 것의 크고 작음은 독자가 판단하는 것이니 언급할 필요가 없겠으나 나는 박시장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동안 무엇을 참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을 필요가 없다. 굳이 시민의 뜻을 대신할 필요도 없다. 단호하게 대처하기를 바란다.

본래 언론은 살얼음판 위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치밀해지며 신중해진다. 그렇게 벼리고 또 벼리는 긴장 가운데 더 맑아지는 것이다. 언론과 권력은 그렇게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 아름답다. 언론은 거울이다. 얼마나 투명한가 불투명한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첫발을 내디딘 마당이다. 신변과 관련된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담대한 발걸음으로 익산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어찌 되었거나 27년 동안 오늘을 얻기 위해 전부를 바쳐오지 않았던가. 박 시장에게 일정한 기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 역시 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렇게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이는 설 수 없다)의 거울을 선물하며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