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여러 병법서는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용병술'로 꼽고 있다. 병사를 쓰려면 장수의 명령체계가 바로서야 한다. 필요할 때 병사들이 사지(死地)에라도 기꺼이 뛰어들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너무나 간명하다. 상주는 일과 벌주는 일을 공정하게 잘 하면 된다. 상주는 일에 인색하고 벌주는 일이 느슨하면 수동적이며 느린 군대가 되고, 상벌이 형평성을 상실하면 오합지졸이 되며, 상을 받아야 할 자가 벌을 받고 벌을 받아야 할 자가 상을 받는 일이 발생하면 군 조직이 개인의 이익에 전도되고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이렇게 조직의 기강은 수장의 용병술에 달렸다. '기강'은 필요한 만큼의 긴장을 유지시키고 그걸 바탕으로 피흘리지 않고도 승리하는 철통경계를 담보하며, 사기를 높여 백전백승하는 강병을 만들어낸다. 나라의 안위를 책임지는 군대의 요체가 그러하듯 자치단체장의 역량도 인사(人事)로 가늠된다.

그런데 신임 익산시장은 자신이 단행할 첫 번째 정기인사를 앞두고 인사와 홍보 부서장을 미리 교체하면서 이번 인사의 유일한 서기관 자리에 60년 생 사무관을 승진시켜 앉혔다. 익산시 조직내에는 57년 생 안팎의 사무관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대부분 능력과 덕을 겸비해 하위직 공무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왔으며, 매 인사 때마다 승진 물망에 올랐었다.

하지만 신임 시장은 3년 뒤면 정년 퇴직하는 그들을 모두 배제하고 앞으로 6년이나 남은 인물을 승진시킨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이른바 발탁인사다. 나아가 공직사회에서 예측하는 일반적인 인사권자의 재량권 범위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파격인사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뭘까. 더구나 정기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서기관 인사를 굳이 앞당겨 단행한 이유는 뭘까.

승진한 C 서기관은 전임 시장 체제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던 인물이었으니, 인사라인에서 추천했을리 만무하다는 게 익산시 공직사회의 중론이다. 또 신임 시장은 과거 시민운동가로서 공무원들과 간헐적인 마찰을 빚어왔을 지언정 익산시와 협력하여 무슨 일을 해본 적이 없어 공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박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단적으로, 어떤 사무관이 서기관 직무를 잘 수행할 지를 가려낼만한 기준을 갖기 위해 사무관들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무원들에 대한 정보부재 상태에서 파격적인 발탁 인사를 정기인사에 앞서 급행으로 단행한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동안 여타의 행정기관에서 발생한 인사비리를 보면, 현실적으로 영 가망이 없거나 승진 대열에서 크게 뒤처진 공무원들이 연루되었을 때 뇌물 수수 금액이 컸다. 이른바 인사 약체들이 배팅을 크게 했다는 뜻이다. 익산시 공직사회 내부의 동요가 가라앉기는 커녕 갈수록 커지는 것은 C 서기관이 그런 케이스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비롯한다.   

신임 시장의 첫번째 중요 인사가, 승진대상 공무원들로 하여금 준비해야 할 돈이 얼마여야 하는지 혹은 수납 창구는 어디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 것이다. 이런 조직 분위기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신임시장이 제아무리 결제를 꼼꼼히 살피고,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그 목표를 향에 가라고 명령한들 누가 제대로 움직이겠는가.

잘못된 인사의 가장 큰 폐해는 공무원들 줄세우기다. 실제로, 실세 국장이나 신임시장의 측근들에게 줄을 대는 현상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익산시 공직사회 내부에서 팽배하다. 최근 '예스맨'과 '신념파' 공무원 해프닝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 줄서기의 불안에서 야기된 촌극이기 때문이다.

기실, A국장과 B국장 사이에선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은 '충돌'이랄 만한 일이 발생한 적이 없다. 그런데 마치 공직사회가 분열되는 단초로 존재하지도 않는 충돌 사건이 와전되어 입길에 오른 것은 예의 그 줄서기에 대한 알러지 반응에서 비롯한다. 또는, 줄서기로 보이는 일련의 행태에 대한 경보음이다.

민선 5기에는 3,300억원이던 부채를 민선 6기에는 7,800억원(관련사업의 운영비와 완납 시점까지 발생할 이자를 포함)으로 부풀려 발표한 것이나, 전임 시장 체제에서 의회의 승인을 받아 기 추진되고 있는 사업들의 예산 집행을 중단시킨 것, 목적사업이 완결되지 않은 웅포관광지 제3지구의 해당 부지에 탈법과 특혜시비를 무릅쓰고 난데없는 워터파크 건설을 강행하는 것, 부채 비상체제에 돌입했다면서 멀쩡한 정수장을 공원으로 만들고 비싼 수돗물을 공급하는 대가로 백억대의 비용을 발생시키면서 시민들에게는 몇 곱절 더 비싼 물값을 부담지우는 것 같은 비정상들이 초래한 위기의식이다.

익산시 여러부서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실현시킬 방법이 없는지를 검토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신임 시장의 지시에서 비롯했다. 그것이 공익에 불부합하고, 큰 손실을 초래하며, 혹은 제도적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공무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련부서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당장 해서는 안 될 일에 매진하는 것은 거기에 신임 시장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선 6기 초입에서 단행된 무원칙한 서기관 승진 인사는 이렇게 공조직의 태도를 변모시켰다. 눈에 띄고자 한다면, 하라는 것을 잘 처리해서 유능한 공무원으로 인정 받고 승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절호의 기회인가. 민간 업자와 신임 시장의 결탁 개연성이나 민간업자에게 특혜 퍼주기, 시민들에게 요금폭탄 물리기가 무슨 대수겠는가. 자기만 잘 될 수 있다면 시민들이 허우적이는 늪에 물이라도 못 붓겠는가.

차라리 '미숙' 탓으로 돌려 사과하고 새출발 해야

그러나 이런 조직의 공무원들은 정상적인 소임을 해태하고, 무소신과 무책임, 북지부동의 복무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줄에서 밀려난 공무원들은 어차피 눈에 띄지 않으니 기회도 없다. 포기하고 살아도 시간은 흐르고 정년을 마친 뒤 연금을 받으며 여생을 즐기면 그만이다.

이런 조직에는 상벌의 잣대도 모호하기 마련이다. 나쁜 짓을 골라서 한 공무원들이 무사할 뿐 아니라 오히려 승승장구한 배경을 보면, 그들이 시장의 뜻을 충실히 실현하느라 불가피하게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나쁜 짓이었기 때문이다. 웅포관광지 제3지구 골프장 비리는 조한용 시장과 채규정 시장 시절에 대부분 이루어졌는데, 그 원흉 격인 공무원이 현재 담당부서의 계장으로서 또다시 신임 시장의 뜻을 쫓아 익산시를 위험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민선 6기다. 대통합을 말하는 무소속 시장이 '이한수 사람', '박경철 사람'으로 공무원들을 두 패로 갈라놓고 있는 꼴이다. 신임 시장의 맹성이 촉구된다. 8월 정기인사가 임박했다. 사무관 이하에 국한되지만 공무원들을 이한수도 박경철도 아닌 '익산시장의 사람'들로 복원하는 방향에서 단행해 주기를 바란다.

또, 불과 보름 동안 저지른 감당못할 과오들에 대하여, 차라리 "미숙했다" "잘 몰라서 그랬다"고 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새출발 하는 것이 앞으로의 발걸음을 그나마 가볍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