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프란치스코 교황은 100시간 동안 이 땅을 밟으며 모든 층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성찰'을 화두로 남겼다. 그 요체는 '인간 존엄에 대한 각성'과 '공동체에 부여된 책임 이행'을 통해 암울한 질곡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교황은 청와대에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라"고 주문했고,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 "잠들어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했다.

깨어나서,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고 비인간적 경제모델을 거부하라고 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화려한 수식을 내려놓고 낮은 곳, 그 세상밖으로 내려와 다른 이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교황의 행동은 종교 지도자의 권위에 찬 독백이 아닌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보여주는 만질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성덕의 아름다움과 복음의 기쁨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유혹, 그러한 유혹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이며,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그런 공감 때문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병리와 그에 따른 허다한 분석과 대안들이 널려있는데도 교황의 말씀 울림은 교착상태에 놓여있는 진영의 중심을 관통했을 것이다. 그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 사회 절대다수가 정면으로 마주한 결핍이 어떤 괴물에 의한 것인지, 어떻게 그 괴물을 퇴치할 수 있을지를 가장 낮은 시선으로 통찰했다.

교황의 이런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그의 삶의 이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경험으로 체득한 현실적 해법을 준용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을 경우 더 가진 쪽과 더 힘 있는 쪽의 양보 없이는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실천의 눈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말과 행동은 기득권층을 향하고 있다. 소외된 이들의 공공선에 대한 투신은 막대한 희생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기득권층이 탐욕을 조금만 줄이면 구조적인 변화도 주도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힘을 가진 현 정부도 독점과 배제시스템을 공고화하는 규제완화와 투자활성화 정책을 국가차원의 재분배를 위한 소득 주도 성장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방향성이다. 이는 노자(老子)가 설파한 지족(知足)이, 중용의 관점에서 기득권층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노자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묻는다. "명예와 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가까운가. 몸과 재물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얻음과 잃음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

명예가 이루어지면 몸은 표적이 되니 반드시 감추어야 한다. 재산이 많으면 몸을 함부로 탕진하여 결국 해치게 된다. 이익을 좋아하면 행동에 무리가 따라 원성을 사고 재앙을 만나게 마련이다. 노자는 그래서 지나치게 좋아하면 얻는 것보다 망가지는 것이 훨씬 더 많으므로 크게 소모한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너무 집착하면 반드시 크게 대가를 치르고,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많이 잃게 된다.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등락에 더 민감하고,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시장 변화에 따른 손익 폭이 클 수밖에 없다. 재물을 집안에 감추었다가 도둑을 당해도 많이 쌓아둔 쪽이 많이 잃는 것은 상식이다.

노자의 지족은 이렇게, 폭락장세를 근심하고 큰 덩치의 회사 규모에 맞는 수익을 걱정하며 늘 도둑맞을까 노심초사하는 것과 같은 삶이란 본래적 상궤에서 벗어난다는 설파다. '부족함이 또한 족한 것'이라는 점을 알면 더 이상 구하지 않으니, 더 이상 구하지 않는데 어찌 욕됨이 있겠는가. 아직은 그치지 않을 즈음에 미리 그칠 만함을 알면 싸움이 없게 될 것이니, 싸움이 없는데 어찌 위태로움이 있겠는가.

재물을 필요한 만큼만 갖는 자세로 자기를 다스리면 몸과 마음이 수고롭지 않으니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국가를 다스리면 백성이 동요하지 않으므로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가 세상의 와류 지점에서 발견한 문제의 근원은, 우리 자신을 앗아가고 잠식하여 결국에는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는 물질에 대한 과욕이다. 노자의 지표는 식상할 정도로 낡고 흔해 보인다. 그러나 2천년 뒤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제의식과 해법에 이토록 일치하는 것에서, '과욕'이 장구한 세월동안 인류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해 온 강력한 위험요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가진자가 내려와 위험에서 자기를 지켜야

많은 소유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착각은 시공간을 막론하고 인간이 벗어나기 어려운 오류다. 그런 가치의 전도는 과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는 기제였다. 까마득하게 높아 너절한 약자들의 일상이 보이지 않는 곳, 같은 지점에 있는 몇몇과 교류하되 불신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곳을 우리는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집착하고 얽매이면 고립된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대다수는 그런 공동체와의 분리를 마땅히 추구할 가치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은 자를 섬기라"라는 주문에 화답하기 위해서는 계층구조를 해체하고 가진자들만의 규칙을 폐기처분하는 일이 선결돼야 할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모두 갖고, 패자의 진영은 착취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족(知足)에 안주하며 저항을 포기한 약자들이 깨어 일어나야 한다. 자기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은 가진 자 쪽에 있거나 가난한 자 쪽에 있거나 똑같이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약자에 지족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일신되어야 한다. 지금 이 땅에서 지족은 약자가 정신적인 성취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을망정, 약자가 스스로 노예임을 수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부조리한 물질만능의 사회 아래서는 지족은 오직 가진 자의 것이다.
가진 자가 아래로 내려와야 이 사회의 갈등이 치유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