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허위는 허위를 낳는다. 허위를 조작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허위를 수용하는 사람이 그 허위를 진실이라고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위란 태생적으로 허점을 가릴 수 없다. 게다가 시간에 취약하다. 사람들이 의심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전파 과정에서 치밀하게 장치된 허위도 태양 아래 녹는 눈처럼 이내 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더 강도 높은 허위가 가공되어 효력이 다한 허위를 덮는 악순환은 그래서 언제나 위험천만한 줄타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이런 거짓의 악순환과 그 폐단을 유년기에 체득한다. 진실을 가장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소모할 뿐이며,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고립되고 만다는 것을.

그러나 오히려 허위를 비장의 무기로 삼고 진격하는 사람들의 심리 저변에는 무엇이 있는가. 경쟁과 질서 또는 관계를 교란하고 왜곡하여 얻어내는 과실이 정정당당하게 거둔 것에 비해 터무니없게 크다는 점에 미혹된 경우일 것이다. 쓴 독은 피하기 쉽지만 달콤한 독은 피하기 어렵다는 옛말이 빛나는 이유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성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난 허위는 잘 제거되지 않는다. 허위의 과실을 함께 노리는 자들의 동조와 허위에 눈먼 자들의 방관이 그 강고한 방호막이다. 특히, 허위를 날조한 자가 사회적인 힘을 가졌을 경우에 그는 허위의 과실을 어떻게든 얻어내서 허위를 진실의 지위에 앉히려고 한다.

이것이 허위가 신뢰를 구축하는 가치 전도의 시발점이다. 우리가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허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게 된 원인이다.

박경철 시장은 그런 혼탁한 세상을 다면적으로 비추는 만화경이다. 그는 지난 6.4지방선거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불가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공약을 이행했다면 허위가 진실의 지위를 차지하고 시민들의 신뢰를 얻었겠지만 실패했다.

공약의 주요 골자가 진정성을 지니고 있으니 허위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심사숙고 없이 유권자를 현혹하는 프레임은 허위다. 별도의 논거가 필요 없다.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심산은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설사 그 공약들이 신념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이 전제되고 시민들을 어리석게 간주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더구나 선거 과정에서 박경철 후보는 날조한 허위사실을 공표하여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허위가 허위를 낳는다는 것은 '허위가 조작한 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익산시 부채위기 조장도 선거에서 득을 본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그는 취임 이래 부채위기를 줄기차게 밀어붙여 '신뢰 얻기'를 시도하고 있다.

민선 5기에서는 감당할 수준이었던 부채가 갑자기 시민들의 고통분담 없이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로 과장됐다. 이런 허위를 진실로 바꾸려는 시도는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을 중단시키고 상당한 분야의 사업비 집행을 중지시키는 행위로 이어졌다. 부채 비상체제를 시민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놓는 대책이라는 게 속빈 강정이거나 이미 민선 5기에서 수립되었던 것이 대종을 이뤘다.

그런가 하면, 추경에 선심성 예산을 증액 편성하고 신규 사업비들을 반영해 스스로 표방하는 기조마저 정면으로 위배했다. 일관성이 없고 불신 투성이 민선 6기의 현주소다. 그런데 박 시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모현우남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긴급대피명령 발동이라는 초유의 허위 폭탄을 터뜨렸다.

소외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이용 말아야

붕괴 우려를 안고 10년 세월을 불안에 떨어 온 주민들에게 내려진 처방이고 건국이래 최초라는 점에서 전국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조치였다. 잘 됐으면 자신이 저지른 크고 작은 방화의 불길을 단숨에 잡을 수 있는 대형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극약처방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실현 불가능한 행정행위를 밀어붙인 것이 곧장 들통났고, 불신과 소요라는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뿌린 허위를 일 거에 덮고 경색된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허위의 방책은 오히려 그를 쓰러뜨리는 독이 된 것이다. 긴급대피명령을 내리면서 익산시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들은 어느 한 가지도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없다.

익산시는 주민들을 장차 닥칠지도 모를 재난에서 구하겠다면서 대피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과태료를 물려야 하는 진퇴양난에 떨어졌다. 이런 허위의 정치 쇼를 만류한 공무원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되지도 않고 부작용만 속출할 일을 하라는 대로 하는 공무원이 어디있겠는가.

정치권과도 선을 긋고 이미 자질 논란에 휩싸인 박 시장의 조급성이 직간하는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옳은 말하는 공무원은 이반된 민심을 일 거에 돌이키겠다는 그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걸림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철식 정치에는 변증법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 삭막한 길을 따라가 도달한 우려다. 흔들림 없이 '정'을 세우고, 거리낌 없이 '반'을 받아안으며, 마침내 합을 만들어 내는 일련의 과정이 그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왜곡된 자기애가 끊임없이 자기만의 '정'을 세우면서 '반'을 배척하고 '합'을 위한 담론의 장을 폐쇄하고 있다.

정치인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계획과 주장은 허위의 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주목을 끌어야 한다는 강박이 그 시작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허위가 집착을 속성으로 지니는 이유다. 가식을 벗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겠는가. 소외된 사람들 또는 시민들을 위한다는 정책이 아무런 실익을 주지 못한 채, 소외된 사람들과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난다면 그것을 누가 지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