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 사회 안에는 오직 조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명령의 내용이 법과 사회 상규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일사불란하게 수행하는 조직은 강하다. 거기에는 조직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행동규범인 '묻지마' 정신이 있다. 그것은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광기의 근원이다. 그들 구성원은 매순간 러시안룰렛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도박이 그들의 일상이다. 법은 그들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도덕과 상식은 그들이 폭력성을 과시하기 위해 뛰어넘는 바리케이트일 뿐이다. 그 잔혹성은 조직과 조직이 충돌할 때도 우열을 가리는 척도다. 물어뜯고 찢기되 믿을 것은 오로지 조직 뿐인 그들의 정의는 약육강식이다.

조폭인생도 따지고 보면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이다. 현재를 확인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미래가 없는 족속들이다. 그런데 요즘 익산시 공무원들 일부가 이런 하류인생을 흉내내고 있다. 상식을 뛰어넘고 법을 초월하면서 일사불란하게 명령에 따르고 있다. 그 광기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 생사를 건 게임에 임할 용기나 있을까. 어설픈 조폭놀이가 아닐 수 없다. 자리보전과 승진에 혈안이 되어 본분을 망각하고, 익산시를 박경철의 사조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대의기관의 업무를 방해하는 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그들이 모르고 있을리도 만무하다.

차제에, 귀찮게하고 고압적으로 군림하는 의회의 버릇을 고쳐놓자는 공무원들의 셈법이 우격다짐으로 의회를 찍어 누르려 하는 박경철의 의도와 부합된 것일까. 그렇다면 착각이다. 의회는 견제와 감시기능을 수행하는 대의기관이다. 만약, 집행부가 하자는 대로 거수기 역할을 하는 지방의회가 있다면 해산돼야 할 옥상옥이다.

의회가 본분을 지킬 때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집행부는 무슨 일을 하든 의회에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의회를 설득하지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물 샐 틈 없는 사전 검증과 당위를 세우는 일만이 집행부가 의회의 예봉을 피해 나갈 유일한 길이다. 의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에 받는 질책은 자기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집행부가 정당하고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의회를 기피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의회와 집행부는 서로 같은 목적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만, 의원의 월권과 무례는 별도의 토론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 모든 절차의 근간이 결국 토론 아닌가.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계층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것은 바로 토론을 도구로 사용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이미 알고있어야 옳다.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대 의회 업무를 유기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무엇보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공무원이다. 주민의 세금으로 삶을 영위하는 지방공무원들이다. 대의기관의 공식일정에 불참하는 일탈이 왜 심각한가는 공무원 자신의 뼈에 새겨진 지표를 보면 알 수 있다.

굳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관계 공무원은 지방의회나 그 위원회가 요구하면 출석·답변하여야 한다"는 지방자치법 제42조를 들먹일 필요가 없는 이유다.

공무원은 죽어도 공무원이다. '부당한 지시에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공무원 행동강령은, 공무가 특정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일반을 위해서 수행돼야 한다는 총칙에 따른 것이다. 다산 선생은 목민심서 봉공편에서 공직자가 법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를 설파하고 있다. 상명하복은 공직자가 지켜야 할 대원칙이지만, 이를 무조건 지키다 보면 지키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경우가 발생한다는 데서 출발한 지침이다. 

'상사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히 자신을 지키도록 하라'는 것이다. 또, '비록 상사가 독촉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산 선생은 252년 전 봉건제국인 조선시대를 살았던 분이다. 공직자가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체제 아래 사는 오늘 다산 선생의 거울에 비친 익산시 공무원들의 자화상은 어떤가.

어설프게 조폭 흉내 내지 말고
멸사봉공하는 공무원이 되어라

조폭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닌, 혹은 이승도 아닌 저승도 아닌 중간계의 존재들이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대책없는 모현우남아파트 긴급대피명령 지시를 거부하다 징계 당하고 전보된 공무원들이 마지막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조직이 신분상승을 놓고 경쟁하는 집단이라 하지만, 아무려니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다 불이익을 받는 것을 계속 지켜만 보겠는가.

아니할 말로, 바른 길을 가는 공무원을 시장이 어떻게 하겠는가. 고작 전보시키는 것이 유일한 조치다. 이렇게 수상한 시절에는 불길을 피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오히려 득이 아닐까. 공무원은 과잉금지의 원칙, 형평의 원칙, 공평의 원칙이라는 3대 필터를 지표로 지닌다. 누구의 명령이든지 이 필터를 통과하지 않으면 버려져야 할 찌꺼기에 불과하다.

과잉과 치우침, 쏠림 같은 사회불안의 원인들을 걸러내지 못한다면, 공무원은 기능을 잃고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해만 끼치는 공무원이 세금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익산시 공무원들이 다산 선생의 수법(守法)에 따라 자기를 지켜야 할 때다. 조폭으로 오해받을 행동을 하지 말고, 한사코 자신이 공무원의 직분을 다하고 있는지 살피고 살펴야 할 때다.

박경철에게서 비롯하는 감정의 과잉, 미숙의 과잉, 공상의 과잉, 자의식의 과잉 속에서 도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영락없이 분별 모르는 어린아이 아닌가. 무분별한 지시에 영혼없이 끌려다니며 시민들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오늘의 공무원들을 어떤 부류라고 차마 규정하지는 못하겠다.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관성을 하루 아침에 깨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지금이라도 제자리로 돌아갈 희망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