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극단으로 치닫던 익산시 집행부와 의회의 충돌이 최근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지난 9일 박경철 시장과 조규대 의장이 만난 이후 급물살을 탄 화해 무드다. 손은 조 의장이 먼저 내밀었다. 대승적 견지에서다. 두 번을 찾아갔다. 하지만 집무실에 찾아갔을 때는 자리에 없었고, 저녁에 집으로 찾아갔을 때는 문전박대 당했다.

양 기관장들이 휴무일인 한글날 시장 집무실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박 시장의 뜻에 의한 것이고, 이는 얼핏 보면, 조 의장이 자세를 낮추자 박 시장이 여기에 화답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기실, 박 시장을 움직인 것은 직권남용에 대한 처벌론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의회는 지난 7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제179회 정례회 본회의장에 불참하도록 공무원들에게 지시하고 자신도 불참한 박 시장을 엄단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13일과 14일 임시회를 열어 공무원의 의회 출석·답변 의무가 규정된 지방자치법 제42조를 위반한 박 시장과 공무원들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요청한다는 안건을 의결하고, 지난 1일 무산된 시정질문을 재개하기로 했다.

또, 양일간에 걸친 임시회에 또다시 불참할 경우 박 시장을 직권남용으로, 부당한 지시에 불참해 대의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공무원들을 직무유기로 형사고발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이런 강경 기류가 박 시장 본인에게는 당장 발등의 불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우리 형법은 직권을 남용한 공무원을 엄중 처벌하고 있다.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양형으로 정하고 있다. 직무를 유기한 공무원의 죄 또한 가볍지 않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범죄가 일말이라도 공익에 기여했다는 명분 조차 없는 상태에서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초유의 사태로, 익산지역 한 정치인의 저급한 수준과 그를 뽑아준 시민들의 검증부재를 방증했다. 정치적 부담의 압력 게이지가 급상승하는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더구나 의회의 출석 요구를 거부한 사유가 시장과 의장의 갈등이었다.    

박 시장이 돌연 민간단체의 행사 식순에서 자신을 제외한 정치인들의 축사를 빼도록 지시했고, 이런 부당한 처사를 참지 못한 조 의장이 거칠게 항변한 것이 빌미가 됐다. 박 시장은 조 의장의 행태를 폭거로 규정하고 공개 사과하지 않으면 의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31만 익산시민 대표의 명예훼손을 운위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지만, 기실 그 과오는 박 시장이 먼저 범했다.

주최측으로부터 축사를 요청받고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이나 익산시의회 의장이나 직무성격이 다를지언정 박 시장과 전혀 다르지 않은 대표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그들의 축사를 가로막고 연단을 치워버리도록 지시해 익산시민들의 대표를 모욕한 것이다. 그것이 특정 정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했다는 표증이 상황이 전개되던 현장에서 나타났다.

단적으로, 공분을 산 이 모든 사태는 박 시장의 치기어린 사적 감정에서 촉발됐다. 이에 대한 조 의장의 저항은 자기방어적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원인을 제공한 박 시장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조 의장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심지어 공개사과와 의장직 사퇴까지 요구하는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공인 또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도덕성의 심각한 결여가 노출됐다.

부도덕과 무절제한 충동이 섞이면 폭력을 낳는 법이다. 그 밑바닥에 자기성찰 부재가 깔려있으면 범죄를 낳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 남을 속이거나 짓밟고 가로채고 빼앗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얼마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가. 그런데 익산시의회 일각은 시장으로서 부적격한 박경철 혹은 함량미달의 박경철을 논죄하지 않고 오직 진영논리를 앞세우며 화해와 협력을 주창했다.

이것은 양비론으로 무장했다. 집행부의 수장인 박경철과 의회의 수장인 조규대가 서로 감정적으로 충돌하며 양 기관의 대의(大義)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일부 익산시의회 의원들은 두 사람의 충돌 원인이나 둘 사이에서 벌어진 사실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두 사람 모두 익산시를 전국적으로 망신시킨 장본인들이라고 몰아붙이며 싸잡아 비판했다.

이런 압력은 조 의장을 움직이게 했다. 그가 박 시장과 달리 성찰하는 정치인인 탓이었다. 버티던 박 시장이 못이기는 척 조 의장이 내민 손을 잡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이 지방자치 사상 초유의 사태 원인이 된 점과 집단적 위법을 지휘한 과오에 대해 사과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시정질문에 불참한데 대해 깊은 유감과 집행부의 수장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두루뭉술하게 사과하고 넘어갔다.

양비론을 엄폐수단으로 삼은 행태다. 의회와 지역사회 일각에서 일었던 양비론이 누구의 과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리기 어렵게 한 것이다. 박 시장이 치기어린 감정으로 익산시민들의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기관의 업무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데 대한 토론을 양비론이 차단한 결과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일부 익산시 의원들

그 영향은 박 시장의 전횡에 대한 감사원 감사 요청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4일 익산시의회의 찬반 투표결과는 14대 11로 나왔다. 물론 14가 찬성이었지만, 반대 11은 사태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 기관간 평화유지라는 지엽말단에 치우친, 혹은 사태를 촉발한 두 당사자의 문제일 뿐이라는 판단의 오류가 낳았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쪽에서는, 사태를 촉발한 두 사람이 합의했으면 그만이지 다시 경색국면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에 함몰되어 있었던 데 따른 분석이다. 이것은 찬반 대립구조 자체를 부정하는 장애로 작용했다. 의회 일각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 박 시장의 과오에 책임을 묻지 말자고 한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무용한 존재라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고, 자신들을 뽑아준 시민들에 대한 배신 행위다. 집행부를 견제할 공무를 부당하게 방해받고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대응으로 시민들에게 피해를 안기는 선례를 남겨 집행부가 반복적으로 부당행위를 자행할 여지를 준 것이다.

이런 행태에서는 자신의 근본인 시민들을 희생양 삼아 양쪽으로 자기보신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잘 드러난다. 양비론은 의회와 집행부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나아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똑같은 것들'이라는 비판 뒤에 숨어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사태를 호도한 양비론은 시민들에게 박경철 시장과 조규대 의장은 물론 익산시 집행부와 의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줘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크다. 한 발 더 나아가 정당한 비판마저도 진영 간 흑백논리로 몰아세워 사회적 견제장치를 와해시키는 기제가 되었다.                

도대체 시의원이 자기 직무를 방해받고 자기존재를 부정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