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주 소통신문의 만인보에 언급된, 이황과 기고봉의 성리학 논쟁을 놓고 여러 말들이 있었다. 그 견해들 가운데 공감하지 못하는 쪽이 나를 불러 세웠다. 조선 500년사에 얼룩진 사색당쟁의 화근이었고, 한갓 시대적 관념론에 불과한 주장을 오늘에 끌어들이는 것은, 달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달을 정복한 이에게 달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는 말에 나는 한동안 서성거려야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성리학은 개화된 세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개한 상상력의 소산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리학이 과학에 기반을 뒀다는 것을 간과한 인식이다. 고대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자연현상을 관찰해 왔고, 거기에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변화시키는 절대적인 힘을 발견했다.

또한, 변하는 것들의 양태와 질서를 파악하고, 이를 음양(陰陽) 오행(五行)으로 환치시켰다. 이는 철학을 낳았고 종교가 되었다. 음양오행을 주재하는 근원적 바탕을 사람의 본성으로 보고 현상을 일으키는 음양을 마음으로 보았으며 현상의 원소인 오행을 감정으로 보았다. 이곳이 성리학의 발원지다.

나아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는 성리학이 체제의 본류였던 까닭에 관점에 따라 왕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옹호하거나 귀족정치를 정당화하는 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체제의 다툼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보혁 갈등의 기제이기도 했다.   

인간을 사단(四端) 중심으로 보는 주리론자(主理論者, 이理는 기氣의 활동의 근본이 되고 기氣를 주재하고 통제하는 실재라고 주장)들은 왕정체제 아래서 보수적이며 여당 성향이 강하고, 인간을 칠정(七情)중심으로 보는 주기론자(主氣論者, 우주의 근원적 존재를 물질적인 기氣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들은 개혁적이며 야당 성향이 강했으니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대승이라는 신진 사대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주리론이 조선의 정통학맥을 이루었으며, 사회체제의 중핵을 이루는 이념이었다. 주리론을 표상하는 사단은 단순하다. 사단(四端)은 맹자가 설파한 것으로, 불순한 것이 섞이지 않은 본성의 네가지 단서들을 말한다. 그 단서는 물위에 드러난 빙산과 같은 것으로 물속의 거대한 본성을 표징 하는 것이다.

본성은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잘못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등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네가지 마음을 이(理)라고 한다.

굳이 넷으로 나누어 본성의 단서를 정의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지극한 선(善)이며 사단(四端)은 그것이 나타난 마음으로, 하나일 수도 몇 개일 수도 있는 불변하는 그 무엇이다. 이(理)는 우주의 과학적 윤리적 원리를 말하며,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다. 

칠정(七情)은 예기에 나오는 사람이 갖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한다. 기쁨(희, 喜), 노여움(노, 怒), 슬픔(애, 哀), 두려움(구, 懼), 사랑(애, 愛), 싫어함(오, 惡), 바람(욕, 欲)의 일곱으로 묶어 나타내었다. 사람의 감정은 더 세분화 할 수 있고, 중용에서 구분한 인간의 대표적 감정인 기쁨(희, 喜), 노여움(노, 怒), 슬픔(애, 哀), 즐거움(락, 樂)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이 일곱가지 감정은 기(氣)에서 발현하므로 선악(善惡)이 있다. 기는 그 현상인 물질과 에너지를 뜻하며, 형이하학적인 개념이다.

이렇게 "사단은 이(理)가 드러난 것이요, 칠정은 기(氣)가 드러난 것이다"며 이와 기를 둘로 분리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 주리론자들이 계승한 성리학의 기본 원리다. 이황은 그 정통사상을 지키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앞에 "사단은 칠정에 속하는 일종의 선한 감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주기론자 기대승이 나타났다.

사단이나 칠정은 모두 본성에서 발현된 마음이고, 칠정이나 사단이나 외계의 현상에 동하기는 마찬가지이며, 맹자 원전에도 사단이 칠정 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사단을 칠정에서 분리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칠정 이외에 또 달리 사단이라는 정(情)이 있을 수 없다는 기대승의 논리정연한 반박은 이황을 고뇌의 바다에 빠뜨렸다.

58세의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이황과 갓 과거에 급제한 32세 기고봉의 8년에 걸친 필담 논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황의 방패는 결국 기대승의 창을 견디지 못했다. 이황은 논변 과정에서 세차례나 자기의 학설을 수정하는 학자적 포용력을 보여주면서, 기대승과 자신의 주장을 절충하기에 이른다.

"사단은 이가 발현되고, 기가 거기에 따라가고, 칠정은 기가 발현되고, 이가 그것을 탄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 그것이 그것이다. '이도 동하고 기도 동한다'는 이 수정된 학설은 당시 조선 성리학의 본령인 주자학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주자에 따르면, 이(理)는 작위가 없고 무위이므로 동하면 안된다.

이황은 기대승의 논리를 깨지 못했다. 그래서 정통사상의 이단이 되었다. 이(理)는 소극적인 도덕성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적극적인 도덕의 주체이며, 그것이 발현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理)가 발현된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황은 그러면서도 사단이 칠정에 속한다는 주장만은 수용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래도 불변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지극한 선(善)인 사단의 지위를 박탈할 수 없었다. 선악이 공존하는 칠정 속에 사단이 섞이면, 절대적인 도덕 원리가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분출하는 칠정에 의해 사단이 오염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이 분별을 모르고 아무것에나 동하여 과도하게 쏠리는 것은 악의 근원이다.

주리론자인 이황은 주체없이 아무것에나 다 동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동하는 것을 주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인간의 도덕적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주기론자들이 사회질서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맞게 제대로 동하면, 그것이 바로 도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황은 상황에 맞게 제대로 동했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변조되는 도덕은 불안하다고 보았다. 마음대로 해석이 되는 도덕이므로, 그런 말초적인 도덕을 이理라고 부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황은 사단과 칠정이 모두 동하는 것인데, 사단이 도덕적으로 동하는 것이고, 칠정이 감정적으로 동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동하게 하는 근원인 어떠한 마음의 원천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순수하게 선한 사단과는 달리, 칠정은 잡스러워서 때론 도덕적으로 동할 수 있지만, 잘못 동할 위험성이 많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칠정에 의해 자우되지 않는 사단의 순수한 뿌리가 있어야, 비로소 인간은 도덕적인 주체가 된다고 보았다.

결국 이기론은 본성과 마음, 감정에 관한 고찰이다. 거기에서 추출되는 잠언은, 본성에 대한 자존감의 정도가 인간과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들이 사는 모습은 주기론자들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들은 감정이 제대로만 돌아가면 만사가 다 잘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황은 기대승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주류에서 잡류로 전락했다. 그런 자기 혁신과 용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 앞 길을 비추는 빛이 되고 있다. 그가 수 백년 뒤 도덕이 무너진 오늘을 예견하고 우려한 것을 차치하고라도 사단 칠정 논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고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