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박경철 시장이 야기하는 세가지 불안이 있다. 그 하나는 본청 요직에 있던 공무원들을 솎아내는 것이다. 전방위에서 전임 이한수 시장의 사람들에 대한 숙청 작업으로 읽힌다. 공조직 내부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 턱이 없는데, 상당수 공무원들이 느닷없이 특정 패거리로 낙인찍힌 채 변방으로 쫓겨났다.

공무원들은 명예를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신분상승은 자신이 열심히 공무를 잘 수행한다는 걸 입증하는 수단이고, 조직 내부에서 쌓은 덕의 결정이다. 직무상 선의의 경쟁은 전문성과 업무처리능력을 향상시키고, 자신의 성장에 장애를 없애기 위해 주변에 기울이는 노력은 친화력을 높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무원의 품격이 높아지고 지도력이 쌓이게 되는 이유다. 그런 역량은 말할 것도 없이 고스란히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잘 된 공무원들의 중심에는 융화가 기본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화합과 합리적인 태도로 부하직원들을 이끌고, 가급적 상사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업무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최고 인사권자인 시장을 향한 충성도 이런 태도에서 기인한다. 누가 시장이 되든지 달라질 수 없는 입장이다.

공무원은 이렇게 태생적으로 인사권자의 눈에 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시장을 향해 일제히 해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어느 시장이든지 공무원들 중 누구누구가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착각이다. 공무원은 공익을 추구하는 일의 과실을 먹고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익산시 조직을 사적인 집합군으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더구나 사적인 시각에 기반을 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의 인사는 폭압이다. 특히, 그런 비정상적인 시야에 전임시장 패로 포착됐어야 마땅한데도 요직에 살아남은 몇몇 공무원들의 공포감은 실로 클 것이다.

"박 시장은 자신의 생각과 배치되는 의견은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는 익산시 공직사회 일각의 좌절감에서, 사실 박 시장의 불통보다 감히 진언하지 못하는 공무원들의 실태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박 시장이 조직을 장악하려는 의지가 엿보였지만 일탈적 인사의 결과는 불신과 패배의식만 낳았고, 명예를 좇던 공무원들의 일부는 비굴해진 것이다.

또 하나의 불안은 박경철 시장이 기성 정치를 배제하는 것이다. 무소속이기 때문에 다른 노선을 배제했을 때 그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방자치 아래서 정치적 이념은 오히려 장애의 기제로 작용하는 때가 많다. 지방 정치인들이 지향해야 할 바가 도시기반을 확충하고 복지를 증대하는 등의 생활정치인 탓이다.

정치적 방향성이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자기와 다른 것을 배제할 경우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게 지방자치의 생리다. 지역정치란 결국 다른 것들끼리 공존하는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다. 또한 같은 종보다는 다른 종들이 결합해야 우성을 낳는 법이다. 무소속 시장이라면 더 큰 시너지 효과가 시민들에게 미치도록 분골쇄신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박 시장은 민간단체들로부터 축사를 요청받고 행사장에 참석한 정치인들의 축사를 식순에서 빼도록 지시하는 직권남용을 자행했다. 또, 공무원들에게 의회 본회의장에 출석하지 말도록 지시하는 직권남용을 자행했다. 직권남용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공무원이 직무를 핑계로 자기 권한 밖의 행위를 함부로 하여 공무의 공정을 잃은 것이다.

형법의 같은 죄목에 대한 법리를 풀어 보면, 직권남용이란 자기의 직권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이며, 의무없는 일을 행하게 하는 경우 등이다. 그 죄목과 구성요건의 행간을 살펴보면 일탈과 침해가 주된 행위이며, 그것은 폭력성에서 기인한다. 폭력으로 대통합을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사법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구렁텅이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불안은 박 시장이 드러내는 교만이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은 옳기 때문에 그 실행이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독선의 표출로 읽힌다. 박 시장은 여러 부적절한 일들을 강행하면서 과격하게 다른 의견과 진언들을 묵살하거나 배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도 상대 다수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일, 실현 가능성이 극미한 일, 위법 부당한 일, 혼란만 자초하는 일, 파격적인 일 등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공조직의 퇴화 그리고 고립

박 시장의 교만은 뒤집어보면 익산시 최고 책임자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양태다. '하라면 무조건 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적은 상당부분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민선 6기 초입에 일던 마찰음이 점차 줄고 공무원들의 박 시장에 대한 복종 분위기가 꽤 높아졌다.

박 시장으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위험성을 알고 있을까. 공무원들의 문제에 대한 자각증상이 둔감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극중심의 제왕적인 체제 아래 공무원들이 한 줄로 복종하는 것은 생태의 교란을 유발한다. 우선은 법과 제도를 행동강령으로 삼아야 할 공무원들이 명령 지상주의에 길들여져 수동화된다.

또, 창의성이나 생산성이 퇴화되고, 책임성이 희박해지며, 역동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공무원의 길을 가기보다는 시장이 가리키는 길을 갈 때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무개념 공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황폐한 환경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부정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억압에 저항하고 부조리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행동하는데 제약을 받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 그들은 조직 내부의 감시자가 된다. 압력을 수용하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솟구쳐 오를 용수철이 된다.

이 같은 세가지 불안은 서로 엮여있다. 보복 혹은 한풀이, 패거리 정치, 독재는 비정한 그물이다. 짧은 시간 안에 스스로 그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