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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공인배 명령하는 자가 있고 그걸 수행하는 자가 있는 조직은 늘 갈등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명령하는 자가 오직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직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환경 탓이다. 특히 공조직에는 두 개의 치명적인 오염 요소가 있는데, 탈법과 편법 또는 궤변을 축재(蓄財) 수단으로 삼는 조직 안팎의 부정한 무리들이 그 한 축이다. 또 다른 한 축은 선출직 공직자의 정치적 목적과, 신분상승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무리들의 야합이다. 전자의 경우는 조밀한 사회적 감시망에 에워싸여 있는데다 상시적이고 적극적인 타파 대상이어서, 상사의 부담감이 무겁고 부하 역시 그 커넥션에서 비롯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다. 후자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위험하고 쉽게 근절되지 않으며, 정당성의 외피를 입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기도 어렵다. 최근 익산시에서 일어난 여러 사례들이 그걸 웅변한다. 법률에 저촉되고 복무요강에 위반되며 사회통념상 부당한 명령을 그대로 따른 이면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지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독선이 폭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독단과 전횡의 서슬에 질겁하여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공포 분위기란 예측 불가능한 공격과 그 공격의 단호함이나 잔혹성에서 기인한다. 주체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 도처에 깔려있던 위험이 엄습할 것이 예상된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민선 6기에는 초입에서부터 그런 공포 분위기가 조장됐다. 성공적이었다. 익산시는 부당한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복종하는 공조직이 되었다. 박경철 시장은 불과 3개월여 만에 그런 전무후무한 조직을 만들었다. 공포 분위기 위에는 무엇이 덮여있는가. 무기력이다. 그 저변에는 저항을 감행할 경우 반드시 치르게 될 대가를 굳이 사서 감수하지 않겠다는 회피의식이 짙게 깔려있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죄로 터무니없는 중징계를 당한 경우라도 그 처분의 불법성, 위법성, 편법성을 다투는 길은 험난하다는 것을 주변에서 익히 목도해 왔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잃어버린 권익과 명예를 회복했다 하더라도, 장기간의 공백으로 인한 조직원들과의 간극을 좁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쟁은 냉엄한데, 조직원들에게는 줄어들었다 싶었던 경쟁상대가 다시 나타난 꼴일 테니 한 살이 되려면 견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또한 최고 인사권자로부터 배척되었던 마당에 추구하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할 기회는 멀어지고 명예를 지킬 기회도 박탈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공무원들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맹종 심리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자초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에서 비롯한다. 더구나 무조건 충성을 강요하는 완력 앞에서 굳이 역린을 자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쯤에서 도마뱀의 속성을 지닌 권력 앞에 정면으로 마주서야 한다.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개인정보 유출사건에 대한 법원의 최근 판결이 우리에게 그런 자각을 환기시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7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로 지목된 채 모 군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초구청 국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국정원 직원 송 모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같은 혐의로 기소된 조오영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시 내용을 보면, 조 전 국장은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자로서 채 군의 가족관계등록부 관련 정보를 누출해 죄책이 무겁고, 그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송 씨는 국정원에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했다. 그러나 조 전 국장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것으로 조사돼 함께 기소됐던 조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검찰의 혐의 증명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문제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정권의 눈엣가시인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검찰을 흔들었다는 세간의 의혹을 일소한 셈이다.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자녀 의혹 보도를 하기 직전까지 검찰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지휘한 혐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국정원법 위반 및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었다. 나아가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공소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불법행위 사실들을 더 공개해 청와대가 곤경에 처해있던 시점이었다. 그런 예민한 시기에 조선일보가 국정원이 제공한 정보를 받아 의혹을 제기했다는 게 사건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배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의심받던 청와대가 조 전 행정관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에 의해 완전히 사정권을 벗어난 것이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더구나 조 전 국장은 검찰수사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조 전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를 받고 정보를 유출했다고 범행을 자백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자백을 믿을 수 없다고 판시를 했다. "조 전 행정관의 혐의에 부합하는 증거로 조 전 국장의 진술이 있지만 다른 증거들과 모순되고 진술 경위가 부자연스러우며 내용도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조 전 국장이 왜 허위진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 전 행정관도 자신이 조 전 국장에게 채동욱의 개인정보를 요청했다고 인정했는데도, 법원은 그것도 믿기 어렵다며 조 전 행정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들만의 전문적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짜 맞춘듯한 판결은 재판부가 권력의 꼬리자르기에 협력한 것 아니냐는 새로운 의심을 샀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재판부가 조 전 국장을 법정구속 시키면서 "죄책이 무거운데도 다른 사람(조 전행정관)을 관여자로 내세우거나 음모론을 내세우며 수사에 혼란을 줬다"고 되레 몰아붙였다는 점이다. 특히, 조 전 행정관이 수사과정에서 범행을 시인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돌연 무죄를 주장하며 진술을 번복한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과정에서는 청와대 감찰과정이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토대로 허위진술을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군색하게 두둔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조 전 행정관은 허위진술을 해야 할 하등의 심리적 강박상태에 놓여있지 않았었다. 단적으로 자백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었다. 그런데 왜 재판부가 믿을 수 없는 자백을 했다는 말인가. 직권남용 혐의 어떻게 피해 갈까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된 뒤 꼬리가 되어 잘려나간 조 전 국장의 처지는 익산시 공무원들의 입장에선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조 전 국장은 그저 해바라기였을 뿐이었다. 정권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이기에 자신의 위법행위는 보호받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길잡이를 희생양으로 삼는 입장에서는 길잡이에게 죄를 더 뒤집어씌우고 범행의 주체성을 더 강조하여 길잡이의 주장에서 신빙성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길잡이를 악질로 매도해 길을 따라오던 시선들을 길잡이에게 붙들어매는 것도 항용되는 수단이다. 사냥에 이용된 개는 흔적없이 사라지는 숙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법 제42조를 위반하면서 의회의 시정질문을 방해한 박경철 시장의 직권남용은 감사원 감사뿐만 아니라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그는 또 자신의 사적인 법률행위를 공무원에게 하게 한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됐다.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박경철은 선거법위반 사건을 심리하는 첫번째 공판에서 '희망후보 사칭' 혐의를 부인했다. 선거 사무원의 짓일 뿐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또 '소각장 사업자 교체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놓고는 범행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경철은 두 건의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꼬리자르기를 시도할 것인가. 공무원들은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것인가. 참으로 궁금하다. 어쨌거나 오늘의 익산시 공무원들 입장이 딱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애당초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법언(法諺)에 '권리 위에 잠든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상대가 골리앗일지라도 세상에는 옳고 바름을 존중하는 수많은 다윗이 있기에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