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교수들이 선정한 2014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이는 진시황의 환관이었던 조고가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어린 황제 호해를 허수아비로 만드는데 사용한 방법이다.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를 보면, 조고는 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 입니다"라고 하자 황제 호해는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때의 조고는, 진시황이 사망하면서 왕위를 물려준 맏아들 부소 등 왕자들를 죽이고 승상 이사 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은 뒤 주색잡기를 삶을 목적으로 삼은 호해를 2대 황제로 옹립하여 집중된 권력을 손에 쥔 지위였다.

어리둥절한 호해 앞에서 군신들은 겁을 집어먹고 대부분 "말입니다"며 조고에 동조했으나,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들은 모조리 조고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또 호해는 이날을 계기로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고 정사에서 물러나기에 이르렀고 훗날 결국 조고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통일제국 진나라의 국세는 불과 15년만에 급격히 기울었고, 조고가 자신이 임명한 3대 황제 자영의 계략에 빠져 죽은 뒤 전국에서 일어난 반란의 불길 속에 멸망한다.

조고는 부적격한 권력자였으며, 그로 인해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은 허무하게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설문에 응답한 교수들 가운데 27.8%가 선택한 지록위마에는, '올해 우리사회를 뒤덮은 '진실을 가장한 거짓' 혹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만, 그 고사성어의 주인공이자 광풍의 역사를 이끈 조고에게 더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조고의 행적을 살펴 보면 공교롭게도, 교수들이 차순으로 선정한 '합리성을 무시하고 억지로 적용한다',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은 없다', '지극한 아픔에 마음이 있다'등과도 일맥상통하는 점들을 발견한다.

조고는 관노(官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거세를 하고 궁으로 들어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게 된 것이 숙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천한 신분을 뛰어넘기 위해 학문을 갈고 닦았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궁중예법을 몸소 익혔고, 법률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그는 진시황의 눈에 들어 높은 관직에 오르고, 나중에는 구중궁궐에 몸을 감춘 진시황과 승상 이사 사이에서 전횡할 수 있는 입지를 차지하기까지 온갖 치욕을 견뎌내는 강인한 인내력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의 그림자 같은 걸음걸이와 황제의 비위를 맞추며 머리를 조아리는 태도는 오직 황제를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얻기에 충분할 만큼 지극히 노예적이었다.

하지만 조고가 가는 복수의 칼날은 갈수록 예리해졌다. 그 칼은 자신을 천대했던 귀족문벌들을 향했다. 황제가 병사하자 권력을 움켜쥔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맏아들 부소와 명장 몽염을 자결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호해를 황제 자리에 앉혀놓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던 그는 호해에게 참소하여 2인자인 승상 이사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앉아 진나라의 모든 권력을 완전히 거머쥐었다.

승상 조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정사에서 손을 떼고 쾌락만을 좇고자 하는 호해를 불안에 떨게 한 것이다. 호해의 형제들과 선왕이 발탁한 대신 또는 명장들이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잠정적 적이라고 참언한 것이다. 호해는 결국 조고의 간계에 빠져 법률을 더욱 엄하게 바꾸고 형벌을 가혹하게 다스리며 죄인에게 연좌제를 실시하여 화근을 뿌리째 뽑도록 하는 등 조고의 손에 광란의 칼을 쥐어 주고 자신은 오로지 즐거움만 추구했다.

조고는 즉시 왕자들과 대신들의 비위사실을 고발한 백성에게 상금을 준다는 방을 내걸었고, 얼마가지 않아 죄상을 고발하러 내궁부로 몰려든 백성들이 연일 장사진을 치게 되었다. 조고는 피고발자를 곧바로 체포해 하옥시키고 가혹하게 고문을 가해 없는 죄상도 스스로 불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조고가 두려워 하던 몽염장군의 동생 몽의장군을 비롯해 수십명에 달하는 선황제의 대신들과 호해의 12형제들이 피살됐고, 여기에 연루되어 함께 피살된 사람들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조고는 처형 방법으로도 잔혹성을 드러냈다. 10명의 공주들이 죄명도 모른 채 거열형에 처해져 동시에 사지가 찢겨 죽은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조고는 고귀한 공주들의 몸통이 네 쪽으로 갈라져 하늘에 선홍색의 피를 뿌리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생리적인 결함과 오랜 억압으로 조성된 야수보다 더한 잔인성과 동물적 포악성이 한데 어우러져 그의 가슴에 극도의 만족감과 쾌락을 안겨주었다.

법령은 날이 갈수록 가혹해져 갔고, 형벌은 더욱 끔직해졌다. 여러 대신들은 점점 위기의 벼랑에 몰려 전전긍긍 하였고, 백성들의 시신은 산처럼 쌓여갔다.

희대의 살인광 환관 조고가 더 크게 보이는 이유

조고가 정적을 제거하는 이런 와중에 호해는 토목공사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는 진시황이 조성하려다 미완으로 남겨둔 아방궁(阿房宮)의 공사를 넓고 화려하게 다시 수축하기 시작하였고, 노역으로 수만 명의 백성을 징발하였다.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가래나 삽을 어깨에 메고 산으로 도망가 좀도적이 되었다. 진승과 오광이라는 사람은 대택향에서 대나무창을 높이 들고 봉기를 하였고, 뒤이어 옛 6국의 귀족후예들도 여기저기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반란의 봉화는 벌판을 태우는 불처럼 사방에서 일어나 진나라의 운명을 풍전등화로 만들었다. 

천하의 군웅이 쳐들어와 진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게 되자, 조고는 호해마저 모살(謀殺)하고 자신이 옹립한 부소의 아들 자영에게 죽임을 당한다. 자영은 재위 46일 만에 유방에게 항복했고 뒤이어 쳐들어온 항우에게 잡혀 죽었다.

이렇게 그릇이 작은 권력자는 항시 두려움에 눌려서 큰일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한 개인적인 한과 야욕이 강한 사람은 인내와 관용이 부족하여 천하의 대세를 엉망으로 만든다.

도량이 부족한 조고는 최고의 권력자가 되자 강대한 통일왕조를 뿌리째 흔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고, 타인의 약점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기지를 올바른 방향에 사용하였다면 현명한 재상이 되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그가 정치권력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 한 일이라고는 사람을 죽인 일 뿐이었다. 오로지 비천한 신분의 굴욕과 열등감을 복수하기 위하여 그는 희대의 살인광으로 역사에 등재되는 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