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박경철 시장이 항소심 재판부에서도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범죄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원심과 항소심은 모두 검찰이 기소한 혐의 가운데, 당선될 목적의 허위사실 공표 일부와 상대방을 낙선시킬 목적의 허위사실 공표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사실심리는 이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제 박 시장의 생사여탈은 대법원의 법률심리로 넘겨졌다. 법률의 취지와 적용 범위를 살피고, 피고인의 행위가 처벌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원심과 항소심 판단에 법리상 오류가 없었는지를 검토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관련 법령상 90일이 기한이다.

박 시장에게는 짧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일 수 있다. 박 시장은 대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무죄로 추정을 받는데도, 박 시장의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특히, 공직사회 내부는 결사항전의 전야처럼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결기로 팽창할 대로 팽창한 난기류를 형성한다.

어떤 주체든지 지금 법원에 박 시장의 직무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신청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당장은, 형이 확정되지 않은 마당에 그의 직무 정지가 불가피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다거나 타당한 근거가 제시되기 어렵다.

설령, 그 불가피성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결과 법원의 가처분 결정 사이에서 기간의 실익이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처분 결정보다 대법원 판결이 먼저 날 가능성도 높다. 원론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법원이 굳이 대법원 판결 전에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소를 제기할 움직임은 물밑에서 결연하다. 도대체 왜 그러한가. 누구보다 박 시장이 이 지점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선 당선된 이후 두 차례 단행한 인사를 스스로 재평가해 보라는 거다. 인사 불만을 불러일으킨 3무(무원칙, 무리, 무모)의 부박할 꼴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정면으로 마주해 보라.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이나 그 뒤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입은 상처가 보일 것이다. 상처 부위는 자존심이다. 명예와 공신력을 좌표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골목대장식 인사에 직격당한 상처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박 시장은 시민운동 시절에 '참담'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곤 했는데, 그 공무원들이야 말로 참담한 심경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박 시장은 불과 8개월만에 익산시 조직을 몹시 슬프고 괴롭고 끔찍하고 절망적인 구성원들의 집단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런 인사 전횡을 휘두르면서 박 시장 스스로 공무원에게 내뱉은 말을 재생해 보라. 한 축의 공무원들을 전임 시장파들로 매도하고,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공무원을 '나와 일하기 싫은'사람으로 낙인 찍은 기억을 되살려 보라.

공무원을 공공사회의 심부름꾼이 아닌 시장의 사병쯤으로 아는 박 시장 앞에 서서 망연자실하던 공무원들이 보일 것이다. 그런 패악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던진 공무원도 선연하게 떠올라야 맞다. 공무원들이 "저 사람이 과연 시장직이 무엇인지나 알까"를 염려했을 법한 순간들을 상기해보라.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묵살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사를 붙여 징계하고, 좌천시키고, 끝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우남아파트 긴급대피명령을 보라. 10개 월 여 동안 거주민들이나 퇴거한 주민들의 불만은 켜켜이 쌓이고 원성은 저주에 가까워졌다. 사후 대책이 없는 경솔한 조치에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주민들의 표정을 보라.

공무원들은 이런 진퇴양난을 뚜렷하게 예견했었다. 법과 사회상궤, 경험칙에 비추어 행정력의 한계가 명료하게 보인다는 공무원들의 의견은 지금 백일하에 확인되고 있다. 전문적이며 정당한 의견을 냈다가 임의적이고 부당한 권력에 린치를 당한 공무원들의 비애를 보라.

어느날 갑자기 무식한 천둥벌거숭이의 부하가 된 비루한 처지를 독주 삼키듯 하여 구멍이 숭숭 뚫려 쓰라린 그 속을 들여다 보라. 그들이 흘린 눈물의 강 심연을 들여다 보라. 저 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망나니처럼 멋대로 날뛰어 봐라. 결국에는 산산히 조각낼 지뢰를 밟고 말리라"

백번이고 나올만한 노래다. 공무원들이 그렇게 철권에 얻어맞은 뒤로 박 시장이 하라는대로 무조건 하는 행태가 그걸 방증한다. 공고에 의해 정상적으로 발주되어 18%의 공정률에 이른 198억 규모의 하수슬러지처리장 공사를 중단시킨 것은 그 결정판이다. 찍어누르는 것에 굴복한 공무원들의 얼굴을 보라. 영혼없는 눈빛을 보라.

공사 중단 사유에 합리성이 결여돼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공산이 높은데도, 딴전 피우듯이 일을 저지르고 먼산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태도를 보라. "우리는 하라는 대로 했으니 책임은 당신이 지면 돼"라는 속엣말이 나한테만 들리는 것인가. 시민들의 혈세를 허드렛물 쯤으로 다루는 이들이 지향하는 것이란 개인의 영달일 뿐이다.

박 시장의 인사 전횡은 그런 공무원들의 방향타가 되었다.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책임질 필요도 없으며, 승진이 보장 된다는 신호가 두 차례 단행된 인사를 거치면서 공직사회의 지침이 된 것이다. 이 쯤에서 박 시장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공무원들을 자신만을 위한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시장이 되었는가.

비루한 자화상을 돌아본다면, 한시라도 더 버틸 수 있겠나

시민이란 박 시장을 위한 독무대를 제공하는 노비들쯤으로 생각하는가.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지지해 준 시민들의 눈빛을 들여다보라. 하다못해 동정표를 던져 기회를 준 시민들이 지녔던 일말의 희망을 보라. "그래도 조금은 더 낳겠지"했던, 막연하나마 깜냥을 믿었던 시민들의 마음을 보라.

정치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사람들과 좌충우돌하며 불협화음으로 허송한 11개월이다. 상생은 커녕 공멸을 부르는 세월이었다. 새빨간 거짓말들로 재판을 받으며 바닥을 치는 도덕성을 드러낸 세월이었다. 걸핏하면 문제를 지적한 기자를 형사고소하는 등 민주의식에서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한 세월이었다.

공무원들은 짧은 기간에 총체적으로 드러난 그런 살풍경에 몸부림친다. 박 시장이 감행하려는 세 번째 인사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결의와 행동은 거기에서 비롯한다. 더구나 절차상 비리 혐의로 두 번째 인사 내용이 수사 대상이 된 가운데, 상반기 근평으로 하반기 인사를 단행하겠다는 박 시장의 뜻이 알려지면서 공무원들은 임계점에 이르렀다.

게다가 박 시장은 자신이 서명한 하반기 정기인사를 8월 중 실시한다는 2015년도 인사운용기본계획을 스스로 부정하고 7월 인사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이는 실적·성과주의를 폐기처분하고 조직경쟁력을 약화시키며 인사동요와 조직불안정을 야기하는 행태다.

그걸 잘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박 시장은 그 자화상을 보라. 어찌 고개를 들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겠는가. 시민들의 혈세로 급여를 주는 법무팀장을 채용해서 공격적인 형사고소를 일삼게 하고, 역시 혈세를 급여로 지급받는 비서로부터 화장실 수발을 받고, 지역경제를 살리자며 익산시 공무원들의 택시타기운동을 벌이면서 정작 자신은 자가용을 타고다닌 민낯을 되돌아 보라.

기막히고 황당한 시민들의 표정을 보라. 그것이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목소리의 진원이다. 어찌, 한시라도 더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 익산시정을 맡긴들 이보다 더 못할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