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시장이 멋대로 서기관 공로연수기간을 줄였다 늘렸다 하면서 공직사회에 갖가지 부정적인 기류를 야기하고 있다. 예정보다 6개월 앞당겨 자리를 비우게 된 두명의 서기관들이 마지막으로 열정을 불태울 시간을 빼앗겼고, 각 직급의 공무원 100여명이 갑자기 승진경쟁에 뛰어들면서 탄식과 파열음으로 어수선하다.

무엇보다 대다수 익산시 공무원들의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두 차례에 걸친 박경철식 인사스타일에 기겁한 후유증이 그 진원이다. 승진인사를 두 번 단행했는데 예측된 경우의 수들을 깡그리 배제하는 '발탁'의 기치를 드날렸고, 전보인사에서 학살이라 할 만한 '추방'을 자행했다.

'발탁'이란, 쓸만한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면면을 잘 아는 인사권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조직이란 선·후배의 위계가 뚜렷하며, 상경하애의 문화를 차별성으로 지니기 때문에 '발탁'은 어떤 경우에도 조심스럽다.

조직관리를 오래 해 본 인사권자일수록 최소한을 발탁하되 대다수의 공감을 얻는 경우에 한하는 이유다. '발탁'이 조직의 질서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공무원들은 피라미드 인사 구조 아래서 끊임없이 평가받고 매 시즌 그 점수에 따른 결실을 따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발탁'을 인정하기 어렵다.

특히, 행정기관은 백화점식 직무를 모아놓은 곳이고, 궁극적으로는 '복지'라는 비효율적인 과실을 안정적으로 분배하는 곳이다. 조직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명분하에 별도의 성과를 평가할 만한 분야가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발탁없는 인사가 가장 잘한 인사'라는 명제가 공직사회의 정설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자칫 '발탁'을 잘못하면 그들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탈락자들이 반발하고, 그들에게서 충성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리더가 믿는, '발탁' 된 그들은 또 패거리의 선봉에 선다. 신분상승이라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무원들이, 자존심 혹은 사리사욕 같은 다양한 이유로 보다 쉬운 길을 기웃거리는 탓이다.

'발탁'의 폐해가 깊어지면 결국 공무원을 시민에 대한 봉사자가 아닌, 사욕을 좇는 경쟁자로 전락시킨다. 나아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며 책임없고 소신없는 공무원들을 양산한다. 인사는 시정운영의 시작이자 끝이다. 조직을 결집시키고 역량을 극대화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시민들을 위해 신명나게 일하기는 커녕 신분상승 문제에 골몰하며 전정긍긍하는 축, 혹은 눈 밖에서 적당주의로 세월이나 축내는 공무원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사'가 리더의 역량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바로미터인 이유다.

어떤 조직이든 총아들이 있다. 조직전반의 인사나 돈을 운용하는 스텝 혹은 관리부서의 요직에 포진되어 있다. 특히, 공조직의 총아들은 중층의 관리자들로부터 중책을 맡을 만한 업무능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질에서 촉망받는 존재다. 시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정신 같은 공복으로서의 신념이라든지 충성심, 성실성, 책임감, 친화력, 지도력 전반에서 기대를 모으는 사람들이다.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은 누적되는 평가에 흠결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이른바 승진예정자들이다. 그것은 대다수가 인정한다. 총아들의 입지가 어느날 갑자기 확보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보기이며 조직의 초석이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또는 전임시장의 사람이라는 어불성설의 낙인을 찍어 일거에 좌천시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는가. 위계가 무너지고 혼란이 온다. 행정기관이 오직 이전투구의 복마전으로 전락한다. 최근 익산시의 한 환경직 사무관이 서기관 승진을 위해 분·뇨를 분별하지 못하고 날뛰는 것은 그 방증이다.

일인 독재와 무원칙한 충성 과열은 조폭집단을 방불케하며, 그런 불안정한 행정기관은 리더의 어떤 불순한 명령도 걸러내지 못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추락한다. 민선 6기 익산시가 그 전형이다. 그러나 만사를 찍어누르기로 일관하는 박경철 시장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어떤 현상이든 변증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조직은 낯선 사고체계 안에서 크고 작은 정반합의 변화를 겪게 된다. 모순을 수정하려는 자기부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리더의 전횡에 정면으로 맞서는 레지스탕스들, 즉 익산시공무원노동조합이 그 반증이다. 그들이 왜 공조직의 전면에 등장했는가. 박경철 시장이 직간접적인 모든 방법으로 자신이 '점령군'의 수장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공조직은 '점령'을 거부한다. 공조직의 구성원들은 시민들을 주인으로 섬기며,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인식체계에 호환되지 않는 유전자를 계승한다. 따라서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는 있으나 점령할 수는 없다. 만약 점령을 강행한다면 '마비'를 초래할 뿐이다.

장차 그렇게 될 것이다. 흔들렸던 공조직은 곧 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벌써 익산시의 레지스탕스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정규군 자격을 획득하고 8할에 가까운 정규군을 확보하지 않았던가.

공직사회는 인사 폭거를 더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아

'발탁'이나 '좌천'인사의 제한성을 놓고 볼 때, 박경철 시장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행정기관에 들어간 사람이 뭘 안다고 발탁하고 좌천시키느냐는 말이다. 더구나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자의 승진과 전보인사는 공직사회를 공황상태에 떨어뜨렸다. 인사행정의 절차상 하자 문제까지 겹쳐 승진인사와 관련한 뒷거래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6개월로 줄였던 공로연수 기간을 다시 1년으로 연장해, 다가오는 하반기 인사의 서기관 인사 요인을 두 자리 더 늘렸다. 마지막으로 한탕 해먹겠다는 수작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낼 합리적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박경철 시장이 허위사실공표죄로 원심과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았고, 오는 7월 말께에서 9월 사이의 상고심 판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마당이기에, 인사요인 늘리기는 곧 매관매직의 사전 포석이라는 추측들을 무성케 한다. 게다가 박경철 시장은 8월 정기인사를 무리하게 7월달로 앞당겨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지 않은가.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하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공로연수는 없어져야 할 제도다. 당초 퇴직후 사회에 원활하게 적응하라는 취지로 마련된 이 제도는 본래 취지에조차 부응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앙부처의 공로연수제도가 거의 사라지고, 행정공무원보다 정년이 2년에서 5년 정도 더 긴 교육 공무원들은 공로연수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퇴직을 앞 둔 행정공무원들이 자신은 늙어서 그만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한창 경륜을 펼쳐야 할 시기에 급여를 지급하면서 무위도식을 시키는 것은 혈세낭비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공로연수에 들어가봐야 마땅히 할 일도 없고 공무원 신분이어서 이중취업도 할 수 없다.

정년퇴직까지 명예롭게 근무시키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하지만 폐기처분되어야 할 공로연수제도를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우려한다는 원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공로연수제도는 없애는 게 맞다. 그것은 어렵지도 않다. 시장이 거기에 서명만 하면 그만이다.

공로연수를 없애면 이번 하반기의 서기관 인사요인도 없다. 모든면에서 평안해진다. 굳이 불필요한 의심을 살 필요가 없다. 그런 경건한 환경과 태도로 운명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모든 면에서 합당하지 않겠는가. 박 시장이 한 번이라도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기치에 부응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