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미륵사터와 왕궁리유적이 충남 일원의 백제문화유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500년 전, 연접한 고대 왕국들과 상호 교류하면서 특출한 건축기술과 예술미의 발전을 구가하고, 불교를 확산시킨 증거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4일 최종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백제의 유적들은 천년을 뛰어넘는 과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또는 우리의 기억은 까마득하게 유구한 역사를 거슬러 일그러짐이 없을까. 그동안 발굴된 백제 유물들의 다양성과 규모에서 다른 지역의 고대유적지를 압도하는 익산이지만, 미륵사지 석탑 복원에 매달린지 15년 동안 복원방향 조차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 질문들이다.

복원의 담론 자체가 본질에서 벗어났다. "6층 부분복원이냐" "9층 전체복원이냐"를 묻는 순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복원의 개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역설이 원형의 가치와 현상의 가치 사이에서 복제의 왜곡을 낳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복원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타임머신으로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석재와 석공들을 현재로 옮겨 복원한다 해도 이질감은 극복할 수 없다. 천년세월의 풍화를 겪고 돌에 겹겹이 쌓인 시간의 얼룩테를 복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붕괴된 미륵사 석탑 돌조각들을 각각 사라진 때로 타임워프해 찾아다가 다시 맞춘다 해도 이질감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무너진 부분을 새로운 석재로 복원할 경우 역사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맞지만, 그 주장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다. 단지, 그런 주장 때문에 이미 파손된 유물은 복원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문화재청이나 마한백제문화유적복원 추진단이나 전문가들이 석탑 복원을 운위하는 것은 허위다.

그러므로 '복원'은 '복제'로 지위를 낮춰야 한다. 복제일 수 밖에 없다. 석질이 다르고 돌을 다룬 도구도 다르며 돌을 다듬는 방식도 다르다. 채석하고 자르고 다듬어 축조하는 원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수 방법에 의해서 끊임없는 복제가 이루어졌고, 그 기능은 용이성과 효율성 면에서 발전을 거듭해 왔을 뿐이다.

천년 전에서 갑자기 현재로 타임리프하지 않는 한 어떻게 원형을 복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한계를 직시하지 못한 어리석음은 15년 세월을 허송한 기제였다. 또한 부분복원이나 전체복원이라는 소모적이고도 불필요한 논란을 낳았고, 이는 애석하게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국제 기념물 유적협의회)로 하여금 6층 부분 복원안을 세계문화유산 등재조건으로 수용케 했다.

대한민국 문화재청이나 이코모스나 복원이 가능하다고 착각한 것이며, 이도 저도 아닌 상태의 탑으로 15년 들인 공력을 수포로 돌리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엄밀히 삐뚤어진 비대칭형 6층 부분복제로 패망한 백제를 상기시키면서, 패배의식을 천년만년 재생산하는 상징물을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6층 부분 복원안을 전제로 미륵사지 석탑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결정한 이상, 전체 복원 주장은 일대 혼란을 야기하고 등재 결정의 번복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복제하는 것이라면 전체를 복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에서 물러설 생각은 없다.

천년 세월 이전의 유물 '복원'이라는 불가사의의 굴레를 벗고 '복제는 왜 하는가'라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복원은 추정의 틀로 이룰 수 없는 반면, 복제는 추정으로 실현하는 것을 허용한다. 천년세월 복제를 거듭해 온 기술을 기록에 의한 추정으로 보완해 원형에 가까운 복제를 해낼 수 있다.

복제는 모든 것의 완전한 상태를 재현하는 것이다. 명맥을 이어 온 기술, 정신, 문화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천년 전의 기억과 천년 전의 문화적 산물을 오늘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은 면면이 이어져 온 기억이자, 그 기억에 의한 관점의 산물이기에 우리는 천년을 오늘의 눈으로 이질감 없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복제된 석탑을 통해 되새김하는 기억이 천년의 기억을 거슬러 오르는 데 훨씬 더 용이하다. 만약, 부분이든 전체든 본래의 석탑과 풍화 현상을 겪지 않은 부재들이 혼재하는 상태로 복원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복제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우리를 단숨에 천년 전으로 인도할 '고색창연'은 훼손된 상태일 것이므로.

그것을 복원이라 말할 수 없다. 기억의 파괴, 혹은 정체성의 부정이라 해야 옳다. 미륵사 석탑이 우리를 천년 전으로 순간 이동시키는, 무의식의 충격과 비논리적인 비약의 경계에 놓여있길 바란다면 '현상 복원'이 옳다. 우리가 쳔년의 여행자를 만나고자 한다면 그 모습 그대로여야만 한다.

하지만 풍화현상을 겪지 않은 천년 전의 미륵사 석탑을 복제하는 것은 과거와의 만남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천년 여행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륵사지에는 '현상 보존'된 석탑과 '복제'된 석탑이 공존해야 한다. 천년의 기억을 간직한 석탑과 천년 전의 기억을 되살린 석탑은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가 될 것이다.

증거는 '현상 보존' 실체는 '복제'가 맞다

이것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한 방향성이다. 어차피 미륵사지 전체를 재건해야 한다. 그 역시 복제 수준을 넘을 수 없다.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의 미(美)는 그 복제의 지표가 될 것이다. 미륵사 석탑의 현상 보존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크고 건립연대가 가장 앞선 것이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미륵사와 석탑 재건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것이다. 무왕의 불굴의 의지가 담겨있는 한국 최대의 절터와 동양 최대의 석탑을 비롯한 3탑 3금당이 배치된 국내 유일의 대가람을 되살려 내는 것이다. 목탑의 축조방식을 그대로 따라 건립한 독보적인 석탑 축조 기술과 백제인들만의 미적 감각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특출한 고대 가람의 실체와 우리나라 불교건축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현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그것을 세계유산적 가치로 인정했다. 미륵사지와 석탑은 미륵신앙을 기초한 불교미술의 메카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일본의 문화적 원조이자 동아시아에 폭넓게 영향을 끼친 저력을 우리는 오늘 되찾으려는 것이다.

안으로는 자긍심을 일깨우고 밖으로는 종교예술의 성지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나아가 찬란했던 백제문화부흥을 꿈꾸었던 무왕의 뜻, 다름 아닌 침체된 지역경제를 환하게 비추는 후광으로써의 문화자원을 재건하는 것이다.

부분 또는 전체 복원이라는 무의미한 논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유네스코가 채택한 증거의 원형을 굳이 변형시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조속한 시일내에 석탑을 비롯한 미륵사지 복제를 완성하는 것 만이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