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는 시시각각 분화되는 사회를 산다. 다원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나기 어려우니 뜻밖의 음해를 당할 가능성이 적지않다. 법을 악용하며 법 질서를 교란하는 세력을 포착하고 발본색원 하기 위해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진화를 거듭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근래의 익산을 관할하는 경찰이나 검찰은 피고소인에게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사실관계를 추궁하면서도, 고소인에게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컨데, 박경철 시장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인들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하면서 허위의 사실로 모함했지만 검·경은 그를 무고죄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

이는 박 시장이 지역 언론인들을 상대로 70여건에 달하는 고소·고발을 하도록 부추긴 꼴이 되었다. 박 시장은 언론인들이 기사나 칼럼에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수 건씩 명시적으로 고소·고발을 자행했다. 언론인들은 보도 내용들이 여러 경로와 방법들에 의해 확인된 진실한 사실이라는 점을 소명했다.

검찰이 혐의없음 처분을 한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무고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리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 박 시장이, 보도 내용이 허위사실이고 그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사법당국에 고소했는데, 보도 내용에 허위사실이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면, 이는 형법 제 156조 무고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고소 사건에 대해 검사가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경우 고소인의 무고혐의 여부를 함께 판단하도록 한 검찰사건사무규칙 제70조는 법의 오용에 따른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나아가 공권력을 악용해 사적인 이익을 노리는 불순한 의도를 차단하라는 지상명령이다.

특히, 박 시장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행태에는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그런데도 검찰은 고소장이 접수되는 족족 피고소인을 족치면서 고소인의 불순한 의도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검찰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언론을 질식시키는데 앞장선 꼴이다.

물론, 고소내용이 객관적으로 허위라는 사실만으로 무고죄를 물을 수는 없다. 고소인이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고소한 경우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 판례도 있다. 그러나 박 시장의 무고죄를 검토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박 시장의 지시를 받아 고발장 접수를 전담하고 거의 모든 건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아 온 익산시 법무팀장이 변호사라는 점이다.

익산시 법무팀장이 박 시장의 개인적인 법률행위를 전담했다는 사실은 피고소·고발인들에 의해 확인됐고, 법무팀을 관장하는 부서장이 지난 달 10일 기획행정위원회의 행정사무감사장에 나와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논외의 문제지만, 박 시장이 사적인 법률행위에 공무원을 동원한 것이 사실이라면 직권남용이 명백하다는 지역 법조계의 평가가 뒤따르기도 한다.

아무튼, 변호사는 보통의 상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변호사가 특정 보도 사실들이 허위사실이라고 확신했다면, 적어도 증거능력이 있는 자료를 확보하거나 사실관계 확인을 거친 뒤여야 한다. 보통의 국민들이 변호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법무팀장이 박 시장의 말을 검증하지 않는 채 그대로 고소·고발장에 옮겼다면 박 시장이 무고죄로 처벌받아야 하고,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전제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고발을 일삼았다면 법무팀장의 위법 책임도 가볍지 않다. 그런데 고소·고발된 보도 내용 가운데 허위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판명됐다.

그렇다면 보도 내용 가운데 조목조목 특정 부분들을 적출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처벌해 달라고 사법당국에 요구한 법무팀장과 박경철 시장은 무고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들은 법률에 무지한 보통의 국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에 군산검찰청의 한 검사로부터 "무고죄 판단은 고소인의 신분이나 학식, 지적 수준 등을 고려한다"고 들은 바 있다.

그에 미루어 생각컨데, 변호사는 보통 사람보다 무고죄 성립 조건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며, 보통 사람보다 고소·고발에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책임을 진다. 법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말 뿐이거나 정황을 미루어 사실을 확신하는 정도로 고소·고발에 이르렀다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지역 검찰은 무고죄 여부를 엄정하게 판단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 결과로 아니면 말고식 고소·고발이 봇물을 이룰 것이며 심각한 동력(공권력) 낭비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그로인해 정작 고유한 기능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법대란에 빠질 공산이 높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이런 부적절한 일련의 메커니즘은 종국에 법 또는 집행자를 흉기로 삼아 필요한 것을 획득하는 간악한 자들을 양산하는 기제다. 검찰은 사법당국의 표상이기에 그러한 그릇된 행태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실로 크다. 그 폐해는 단적으로 일선 경찰이 보여준다. 고소·고발은 커녕 "그랬다 카더라"는 첩보만으로도 멀쩡한 시민을 불러 다그치고 윽박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피해사실이 없어 피의사실도 특정될 수 없는 첩보사건으로 경찰에 불려가 다짜고자 피의자 심문을 당한 A씨 케이스는 경찰력 남용을 총체적으로 나타내준다. 익산경찰은 사실을 부인하고 돌아간 A씨를 며칠 뒤에 전화로 재소환했고, A씨가 "피해사실이 없는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관의 공무는 정당하지 않다"며 피해사실이 뭔지 설명해 달라고 하자 경찰관은 "소환에 불응하면 영장 청구해서 강제집행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 경찰관은 실제로 수일 뒤 A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A씨가 구속될 리 만무하고, 기소될 리도 만무했다. 경찰이 내용도 없는 사건으로 공권력을 남용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실은 검찰도 잘 알고 있으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모함을 당한 시민은 죄인 취급을 당하는데, 모함한 자들은 왜 희희낙낙 거리를 활보하는가. 검찰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런 부조리한 토대 위에 있는가.

박경철 등의 불순한 목적에 이용당하는 공권력 되지 말아야

물론 A씨 사건은 모함한 자들이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 "나는 이사람에게 들었어요". "나는 저사람에게 그렇게 들었어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첩보사건 조사는 신중해야 한다. 나불거리는 자의 진의를 파악하고, 한 시민을 처벌받게 하려는 그의 말이 범죄를 입증할 근거에 입각하고 있는지를 촘촘하게 살펴야 한다. 지상명령이다.

이런 꼴을 보라. A씨를 모함한 자들을 조종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A씨를 손봐주고자 했다면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 있겠는가. 경찰이 그의 흉기가 되어준 것이다. 경찰이고 검찰이고 스스로 생각키에도 한심한 꼴이 아닌가. 이런 경우의 경찰이라면 범죄집단보다 더 위험하다. 범죄자들은 잡아서 처벌이라도 할 수 있지만, 경찰은 허가 된 고유한 직무를 수행했다 할 것이 아닌가.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검·경의 행태는 익산시 감사실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감사실은 익산시 계약직 공무원 K씨에 대한 중징계를 의뢰했고 결국 파면처분을 받았는데, K씨가 이권에 개입했다는 그 사유는 신빙성 없는 몇 사람의 말에 의존한 결과이고, 결정적으로 K씨는 해당 업자와 일면식도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 최근 검찰에 의해 밝혀졌다.

더구나 K씨 사건을 조사한 익산시 감사실은, K씨가 진실확인을 위해 요구한 사항들을 전부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도 소청심사위원회가 검찰의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K씨의 중징계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이 경우도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카더라'에 경도된 결과여서 무고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하지만 K씨의 인생 한 부분은 거의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불명예도 문제지만, 직장을 잃었고 믿어야 할 대상을 믿지 못하는 의심증과 우울증을 얻었다. 불안한 세상을 만드는 게 경찰과 검찰의 소명은 아닐 것이다. 무고죄를 가차없이 처벌하는 것만이 법 집행기관을 악용하는 자들을 근절할 유일한 방법이다.

익산을 관할하는 경찰과 검찰이 고소인의 불순한 목적을 가려내는 데 안일한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무용론은 물론이고 척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