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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공인배
13년 전, 미국 뉴아메리카재단 연구원 더글러스 맥그레이가 외교잡지 '포린 폴리시'에 문화적 파워를 개념화한 국민총매력(GNC)이란 지표를 발표했다. 문화라는 무형의 가치를 종합해 한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매력을 정량적으로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몇 가지 지표를 통해 국가가 발산하는 매력 혹은 '소프트 파워'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공명을 일으켰다. 맥그레이는 문화강국으로 거듭난 일본을 석명하는 도구로 이 지표를 제시했는데, 이는 상품과 서비스 생산을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GNP) 못지 않게, 한 나라의 국민이 향유하는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미의식, 철학, 이미지 등 무형의 문화적 가치(GNC)가 타인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맥그레이에 따르면, 일본은 더 이상 제조업만의 경제가 아니라 무형의 국가매력과 문화적 가치로 돈을 버는 경제로 전환한지 오래라는 것이다. 일본은 하다못해 '청결한 사회' '친절한 국민성'도 매력으로 판다. 또 그런 매력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전국가적인 공을 들인다. 그런 노력 덕택인지, 영국 BBC 방송이 34개 나라의 국민들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떤 나라가 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묻는 이미지 조사 실시 결과 일본이 56% 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매력은 문화의 힘을 뜻한다. 한 나라의 매력 지수는 영향력과 파워를 결정한다. 그것은 다른 나라를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 보더라도,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 2009년 기준 3천억달러인데 비해 '한류'가 중심축인 문화산업은 그 다섯 배에 달하는 1억5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래성장동력은 최첨단 산업보다 문화산업이라는 방증이다. 일본의 매력을 활용한 국부 창출 전략은 문화와 경제 사이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포착한데서 비롯됐다. 부가가치의 평가 기준이 '가격에서 질로의 시대'를 거쳐 '질에서 품격으로의 시대'로 이행하는 문화적 패러다임에 부응해야 한다는 자각의 소산이었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 등 후발주자들에게 추월을 허용하면서 기술력의 한계에 봉착한 일본이 발견한 활로였다. 일본은 기존의 자국 제품에 일본만의 매력을 얹혀 가치를 높이는 신일본양식 확립에 전격적으로 매달렸다. 일본 내 주요 기업들과 단체, 문화예술 관련 전문가들이 결집해 일본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켜 세계에 발신하는 데에 매달렸다. 일본은 성공을 확신했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그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은 당시 문호를 개방한 일본의 회화, 도자기, 차, 정원 등에 홀딱 빠졌다. 특히 풍속화 우키요에는 1800년대 후반 인상파를 필두로 한 유럽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세계인들의 인식 저변에 깔린 고품격 일본문화가 국격을 비약적으로 신장시키는 초석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패션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게임, 음식, 관광 등 문화산업, 자동차나 전자제품 같은 일본 제품, 요리와 무술 같은 전통문화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이른바 '쿨 재팬' 전략은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으며, 일본의 부활에 크게 기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과 ‘망가’로 불리는 만화, 닌텐도와 소니의 게임기는 세계 정상을 차지하며 각국에 충성스런 마니아들을 구축했다. 또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안다 다다오의 건축, 다카다 겐조의 패션 등에 세계는 열광했다. 일본의 '스시'는 세계 각국에서 고급 음식으로 통하고 선(禪) 철학을 바탕으로 미니멀리즘을 가미한 '젠 스타일' 역시 구미 상류층 사이에 매력적인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 사무라이와 게이샤가 할리우드에서 영화 소재로 활용되는 등 일본 문화는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것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에 힘입은 일본은 아예 이 국가 프로젝트 산업의 수출 규모를 2020년까지 지금의 2~3배에 이르는 11조원으로 늘리겠다며 쿨재팬 프로젝트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나 K-pop을 앞세운 한류가 기세를 떨치는 와중에,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몇 년 전부터는 '쿨 재팬' 전략을 선택이 아닌 절체절명의 사명으로 삼는 모양새다. 일본이 선도해 왔듯이, 문화콘텐츠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분야다. 우리는 그 컬쳐비즈 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 포켓몬이나 헬로키티 같은 여러 캐릭터들이 열어 젖힌 시대다. 익산의 고유한 매력 발산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문화 상품은 특정한 동기나 목적에 의해 생산된다. 예술, 과학 등 모든 개념이 통합된 비지니스 모델이 그 성공의 핵심이다. 그 기획을 전담할 기구가 필요하다. 똑같은 전자제품도 애플이 만들면 전세계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문화상품이 된다. 소비자들은 기술과 기능보다 문화와 스타일을 사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부를 가졌지만 피카소를 가지지 못한 뉴욕은 전략적으로, 추상표현주의를 주도했고 '드리핑(붓을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캔버스에 떨어뜨리거나 뿌리는 기법)'이라는 극단적인 기법을 개발한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 인물 '잭슨 플록'을 선택했고, 잭슨 플록은 뉴욕을 예술에 눈뜨게 했으며, 예술은 뉴욕을 전세계인의 도시로 만들었다. 맨해튼 인구의 2.7배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집 근처 공원은 안가도 센트럴파크를 찾는 이유는 미니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캐리와 빅이 사랑을 나눈 곳, 영화 속 해리와 샐리가 만난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는 공원도 공공재가 아닌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지닌다. 익산은 최근 미륵사지와 왕궁리 등 천년 유적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기념비적 경사를 맞이했다. 하늘이 준 기회다. 그러나 익산은 미래를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지역문화와 경제의 상호작용을 매개할 전문기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익산시는 6년 전에 문화재단을 설립했지만,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대분분의 역량을 국가공모사업이나 행정이 이양한 사업 이행으로 소진하고 있다. '쿨 익산' 혹은 특화 콘텐츠 개발을 주도할 엄두 조차 내지 못한다. 익산시는 문화재단 설립당시 창조적 기능을 부여하고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매년 일정액을 출연해 5년 뒤에는 완전히 민영화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예산의 칼을 쥔 사람들이 계속 그 의지를 꺾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왜 경제가 아닌 문화가 미래냐고, 왜 문화가 내 삶을 좌우하느냐고 반문한다. 도시브랜드가 지역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컬쳐비즈 시대, 문화가 밥먹여주는 시대에 18세기의 질문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색은 익산시가 도시의 대표브랜드인 서동축제 예산을 아예 세우지 않는 촌극까지 낳았다. 시민들이 축제를 주도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자 추경에 쥐꼬리 만큼 예산을 세우고 국화축제와 병행한다면서 서동축제의 본질을 뒤흔들고 있다. 세계적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고, 한국적인 것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라는 시대적 명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주소다. 문화산업은 미래를 여는 에너지 창조의 유전과 같다. 익산시는 지역별 문화역량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를 콘텐츠로 키워가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도입해 부여나 공주와의 경쟁에 대비해야 하는 숙명이다. 그러나 익산이라는 도시 브랜드 가치가 익산시가 지닌 문화적 매력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간과하는 마당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매력을 발산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살고 싶고 관광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익산의 문화 그것은 현재는 물론 세세연년의 밥이다.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