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 10일 익산시 주택과 직원들이 두 개의 사업장을 잇따라 덮쳤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공무원 나리들께서는 건축물 대장을 펼쳐들었다. 대장에 없는 건물 주위를 거들먹거들먹 돌고, 본체에서 달아낸 건물을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우르르우르르 먼지를 일으켰다.

공권력에 급습당한 업주들은 자욱한 긴장감을 들이마시고 망연자실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술한 임시 건물인데다 10년에서 15년이 지난 무허가 건물에 갑자기 관심을 갖고, 득달같이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지엄한 국법의 집행자들이었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낯선 풍경이었다.

이후 금마 주민들로 구성된 서동축제 제전위원회는 새된 낙망으로 가득했다. 무허가 건물 단속에 적발된 업주들은 공교롭게도 제전위 공동위원장들이었다. 김완수 위원장은 왕궁에서 농기계 제조회사를, 김구 위원장은 금마에서 식당을 각각 운영한다.

김구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하면서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뜻을 천명했고, 제전위를 탈퇴하는 회원이 나왔으며, 제전위를 해체하고 익산시에 협조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여기에 강력한 대응 주장이 충돌하면서 제전위는 하루 종일 어수선했다.

익산시는 민원에 따른 현장 방문이었다고 한다. 적발된 불법 건축물에 대해서는 원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서동축제 제전위는 납득하지 못한다. 시기적으로나 사정으로 볼 때 제전위를 흔들어 와해시키려는 저의가 명백하다고 판단한다.

익산시는 올해 본예산에 서동축제 예산을 한 푼도 세우지 않았다.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위한 잠정 보류가 그 이유였다. 지난해 반쪽짜리 예산으로 축제를 치렀던 금마 주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싹텄다. 3년 전부터 예산이 점증적으로 줄었고 급기야 아예 열리지 않는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서동축제와 병행해 왔던 무왕제례의 명맥이 끊기는 것은 막아야 했다. 만약 익산에서 주춤하는 사이 부여나 공주에서 무왕제례를 집전하기라도 하면, 46년 전부터 민간 차원에서 공을 들여 온 익산 고대문화의 핵심 콘텐츠를 도둑맞는 꼴이 된다는 위기의식이 주민들을 결속케 한 동력이었다.

서동축제 제전위원회는 소규모 나마 서동축제의 내용을 담고, 46년 전에 민간에서 발족된 마한민속제전위원회를 전승한다는 방향성을 탑재했다. 주민들이 비용을 모으고 한 마음으로 축제를 준비해서 천년고도의 얼을 기리는 장을 서동공원에 마련하기로 했다.

매년 서동축제장에 방문해 무왕제례에 참석하고 기탁금을 전달해 온 백제의 마지막 왕자 임성태자의 45대 후손 오오우치 기미오 씨 부부를 맞이하고, 제례음식은 물론 익산에서 백제 부흥을 모색하던 무왕의 뜻을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나누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길 대동 한마당 준비에 주민들은 한껏 부풀었다.

그런데 익산시가 지난 6월말 추경예산안에 서동축제 비용을 편성했고 이는 의회를 통과했다. 올해 본예산에서 서동축제 예산이 빠지자 반발 여론이 빗발쳤지만,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익산시의 태도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느닷없는 예산수립이었다.

민간의 축제 준비가 한창 물 오른 마당에, 사전 협의도 없고 대책도 없는 행위였다. 예산액도 1억5천만원에 불과했다. 당초 5억원 규모였고 지난해 최대한 조촐하게 형식만 갖추는데 2억 4,500만원이 들어간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서동축제와 관련해서 익산시는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이 없으니, 6개월 동안 익산시가 축제의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했을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기왕에 세운 예산을 민간에 이전해서 축제의 내용을 더 충실하게 채우도록 하는게 순리였다.

하지만 익산시는 역행하는 태도를 취했다. 서동축제를 관 주도로 추진할 테니, 민간에서는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주민들로서는 청천벽력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제전위를 꾸리고 기금을 마련하면서 걸어 온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보람 있었고, 어느 때보다 자긍심이 충만했던 시간들이었다.

축제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제전위에 박수를 보내며 모처럼 향토의식을 자각할 것이라는 기대에 찼었다.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고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자신들이 초석이 된다는 자부심이 앞만 보고 뛰게 하는 힘이었다.

제전위는 박경철 시장에게 민간차원에만 맡기기 어렵다면 공동으로 축제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익산시는 일고의 틈도 없이 거절했다. 제전위는 포기하지 않고 익산시와의 협의를 시도했으나, 익산시는 강경일변도였다. 벼랑 끝으로 몰린 제전위는 최후의 수단으로 익산시의 독단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 지를 객관적인 방식으로 도출하기 위해 여론조사 기관에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극명했다. 익산시와 서동축제제전위가 공동으로 축제를 개최해야 한다는 대답이 66.4%에 달했다. 제전위는 박경철 시장에게 이같은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익산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흡혈을 위해 존재하며 그 정당성을 날조하는 집단

제전위가 단독으로 축제를 개최할 경우 무슨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인지, 공동개최는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지, 왜 익산시가 단독으로 개최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석명은 없었다. 그 이유라는 것이 별도로 있을 턱이 없고, 오히려 공동 개최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따로 논리를 세울 필요가 없이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 준다.

따라서 익산시의 행태는 감정적인 충돌과 반사작용 이상으로 이해받기 어렵다. 때문에 여론조사 직후에 서동축제 제전위 공동위원장들의 생업 현장에 들이닥친 공무원들의 불법건축물 단속은 강한 의구심을 부르는 오비이락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익산시가 적발했다는 불법 건축물의 양태는 또 한번 실소를 부른다. 식당 건물의 경우, 비바람이 비껴불 때 들이치는 비를 막기 위해 처마 끝에 설치한 유리창 가림막인데 이는 시골의 한옥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중적인 방편이다. 농기계 공장의 경우 역시 사업장 입구에 설치한 비가림 시설이다.

철저한 불법 건축물 단속은 창찬받아야 마땅한 공무행위다. 하지만 집단민원을 와해시킬 목적의 먼지털기라면 부당하다. 더구나 서동축제의 추진 주체 논란은 익산시가 자초한 것이다. 질식한 서동축제에 숨을 불어넣은 주민들이다. 힘겹지만 희망찬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익산시가 오기 부리듯 주민들을 막아섰고, 말을 듣지 않자 제전위의 뒤통수를 쳤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논리로 정정당당하게 맞서질 못하고, 겁박하는 수단을 거리낌없이 동원하는 것은 조폭이나 하는 짓이라는 비판이 강도 높게 제기된다. 시기적으로 딱 오해를 살 만한 불법 건축물 단속이 부른 부작용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감정적인 대응은 갈등과 반목을 부를 뿐이다. 익산시는 새삼 그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익산시가 제전위와 함께 공동으로 서동축제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시민들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또, 시민 대다수가 그것을 원한다. 박경철 시장이 내세운 슬로건 '시민이 시장이다'와도 부합된다. 시민들의 중론을 묵살할 경우 오해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시민들의 뜻에 반하는 행정기관은 그야말로 흡혈을 위해 존재하며 주어진 권한으로 그 정당성을 날조하는 흡혈집단이다. 그 피해자는 곧 시민이다. 어떤 시민이 그렇게 위험한 집단을 알고서 내버려 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