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시하수슬러지처리시설 공사를 강제 중단시킨 책임 소재 논란이 촉발됐다. 정부합동감사단이 익산시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익산시는 하수슬러지처리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환경부 등에 사업계획서를 승인받고 그에 따른 국비를 지원받았는데, 익산시가 임의로 중단하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그 요지다.

승인받은 국비사업을 중단하고 변경하고자 하면 정부 주무부처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제멋대로 했다는 것이다. 타당성을 인정받아야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국비사업을 사업계획서대로 완료해야 하는 이유다. 사업이 국가정책과 부합하며 효율성을 담보해야만 복잡하고 긴 심사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

국비사업의 변경 사유를 국가정책의 변화 등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하는 배경이다.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박경철 시장은 시민들의 민원제기를 근거로 익산시하수슬러지처리시설 공사를 중단시키라고 지시했고, 공무원들은 '불가'를 관철시키는 대신 복종을 택했다. 상명하복 조직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정부합동감사단은 지난 3월 감사를 통해 공사를 중단시킨 담당을 비롯한 계장, 과장, 국장, 부시장 등 지휘라인의 다섯명을 훈계처분했다. 공사중단 결정은 박경철 시장이 했으나, 정무직인 시장은 징계 대상이 되지 않아 부시장까지만 처분을 받았다.

통상 정부합동감사단의 신분상 조치는 실·국장선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부시장까지 처분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인데, 이는 정무직의 전횡을 막지 못한 일반직 공무원들 일단의 연대책임이 엄중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읽힌다. 상명하복 조직은 종종 '복종'을 '면책' 수단으로 맹신하는 경우를 보여주는데, 이번 사례는 그 전형적인 예다.

더구나 지난 1년 동안 익산시 공무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복종 러시'는, 책임회피에 더하여 승진 도박 성격도 짙어 위험성이 더 높다. 위법이거나 편법이거나 '시장이 시키면 하는 사람'이라는 면죄부는 신분상승과도 직결되었으니, 눈이 뒤집힌 복종 경쟁은 여러 곳에서 나날이 치열했다. 그 사례는 나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행정벌은 규정을 위반한 공무원들에게 호의적이다. 정부합동감사단이 하수슬러지시설 공사를 중단시킨 공무원들에게 가장 가벼운 신분상 조치(훈계)에 그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국민(업체)에게 수십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국가 정책 추진에 차질을 야기한 책임이 옐로카드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보스의 명령지상주의는 조폭들의 질서다. 보스의 명령이 법이나 관습이나 규칙 보다 위에 있다면 그 조직은 폭력집단이 틀림없다. 달리 말하면, 익산 시민들이 혈세를 걷어 조폭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꼴이다. 관련 공무원들은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계장이 되고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어 거들먹거린다. 자신들도 각기 다른 규모의 행동대를 이끌게 되었으므로. 익산시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시민들이 함량 미달의 시장을 뽑았기 때문이다. 불복하는 자, 혹은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자 앞에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는 시장이 그 중심에 있다.

충성스러운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면 위엄과 신용을 세웠어야 하지만, 통솔의 수단을 오직 공포감 조성으로 삼았다. 다산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마음에 치우침이 없고 막힌 것이 없을 때 위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신용은 신뢰다. 목민관은 대중에게서 신용을 얻되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공포는 긴장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에 이완을 적대시하고 두려워한다. 폭력의 양태가 갈수록 괴팍하고 고집스러워지며 흉험해지는 이유다. 공포 효과는 부조리하고 몰상식하며 예측 불가능할 때 더 배가된다. 교활하며 괴이한 횡포가 기승을 부리면서 '불복하면 다친다 알아서 기어라'는 단순한 시그널을 반복적으로 생성한다.

그 단순한 세뇌는, 위엄으로 기강을 바로세우고 신용으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정치의 기본 원리를 비웃으며 효과를 거양한다. 박경철 시장이 그것을 보여줬다. '인간적 크기를 위엄이라고 한다면 인간적 깊이는 신용이라고 말 할 수 있다'는 명제는 그와 전혀 무관해 보인다.

익산시 공무원들은, 민관 행사장에서 박경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있는데, 그것은 결국 익산시 발전을 저해하는 마이너스 정치라는 지적이 팽배한데도 1년 여 동안 개선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또, 박경철의 익산시의회 의장에 대한 사적 감정은 익산시가 집단으로 의회의 시정질문을 보이콧하는 위법행위로 이어졌는데, 박경철은 공무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의원들을 자극해 놓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의회가 요구하는 모든 자료는 자신을 거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덕분에 의원들은 늦게 제출되는 자료 때문에 의정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는데, 이 유치찬란한 만기친람은 지금도 여전하다.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동반자적 교섭이 전무한 배경이다. 각자 갈 길이 뚜렷한 평행선 위에서 익산시장은 개인 박경철이 되어 '의회의 집행부 발목잡기'를 운위하며 또 흥분해서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꼴들을 보여왔다.

비현실적이며 감당할 수 없는 일들도 서슴없이 자행됐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모현우남아파트 긴급대피명령이나, 하수슬러지처리시설 공사 중단은 그 대표적인 예다. 긴급대피명령은 사후 대안도 없고, 대피를 거부하며 붕괴우려가 있는 아파트에서 버티는 주민들을 설득할 명분이 처음부터 없었다.

공포 통치 시그널은 '복종' 세뇌에 성공할 수 있지만

결국 재앙을 부른다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포퓰리즘적인 대피명령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멀쩡한 건물은, 여론수렴과 대안마련의 시간이 충분한데도 신중론을 편 공무원들을 훈계하고 전보조치 하면서까지 대피명령을 강행한 박경철의 강퍅하고 모자람을 증언하고 있다.

이제 모현우남아파트 주민들은 익산시가 부산을 떠는 바람에 땅에 떨어진 부동산 가격을 보전해 달라고 익산시에 요구하는 수순 앞에 서 있다. 하수슬러지처리시설 공사를 중단시킨 행정행위는 계약위반을 범했다. 공모를 통해 낙찰받아 공사를 진행하던 업체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익산시의 계약해지 일방 통보에 즉각 반발하며, 법원에 그 무효 청구 소송을 냈다.

시공상 하자가 없었고, 정부합동조사단이 규정위반으로 판단한 것 등을 감안하면 익산시가 패소하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 재판의 다음 수순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업체가 산출한 손해액은 약 70억원에 달한다. 익산시가 이를 배상하고 지휘라인 5명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경우 개인당 10억씩을 물린다 해도 20억이 모자란다.

이 20억은 박경철에게 반드시 물려야 한다. 그는 공사 중단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그래서 책임이 가장 무겁다. 하지만 배임의 책임은 동등하게 물어야 한다. 돌연변이 시장의 활개는 그 서식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를 뽑은 시민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그의 골목대장 놀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공무원들에게 이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위법을 지휘한 책임은 형사적으로 지우면 된다. 익산시는 관련자들에 대한 정부합동조사단의 신분상 조치에 불복하며 재심의 요청을 했고, 정부합동조사단은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익산시 관련자들을 보조금 관리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예단컨데, 박경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익산시는 민원 때문에 공사를 중단시켰다는 자기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민원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그러나 법과 계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법과 계약을 어긴 것이 민원 때문이라는 말이 과연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공포 통치는 단기적으로 유용한 듯 보이나, 방파제와 같은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것과 같아서 장기적으로는 재앙을 부른다. 박경철은 물론 그의 복수열전과 시정을 껌 씹듯 했던 농단에 가담한 모든 공무원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지난 1년 동안 참담하게 망가진 익산시 조직 재건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