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박경철 시장이 오산면에 있는 기존 가옥을 리모델링 하면서 그 옆에 새집을 짓고 있다. 요즘 익산지역의 아줌마들 사이에선 마무리에 한창인 박 시장의 신축 가옥이 화제다. 단독 주택 치고는 익산에서 보기 드문 저택 수준의 건물이 일약 '볼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아줌마들의 현장 답사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자치단체장의 집이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니, 백제 고도 익산은 확실히 이색적인 풍속을 지녔다. 청빈을 생명으로 여겼던 조선시대 관료의 눈에는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 몰래 처마를 몇 치 달아낸 아들이 벼슬살이 하는 아버지의 불호령에 당장 처마를 잘라내야 했던 관료사회는 익산에선 박제된 풍속일 뿐이다. 백성의 생업을 뺏을까봐 부업을 갖지도 않았고, 고향에 있는 아내가 채소밭 한 뙈기를 사도 사표를 쓰고 고향으로 달려가 땅을 물렸던 청렴은 케케묵은 관료의 덕목일 뿐이다.

누구보다 박경철은 그런 낡은 습속을 비웃고 있다. 그는 최근 성당면에 소재한 땅도 샀다. 그가 서있는 지형은 관료가 분수 이상으로 재산을 증식해도 된다는 듯이. 더구나 그의 소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재산 증식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행태다.

이 나라 관료사회는 건국이래 부패공화국의 꼬리표를 오랫 동안 달고 있었다. 행정기관의 민원처리 기간이 급행료 여부에 좌우되고, 행정기관이 인가권이나 허가권을 행사할 때마다 뇌물이 관행적으로 공여됐었다. 그로인해 부패지수가 높은 대한민국은 국제적인 수모를 겪어왔다.

청렴을 국가존립의 기본 덕목으로 삼게 된 이유다. 촘촘한 제도적 그물로 온갖 부정을 걸러내고, 공조직 안에 뿌리내린 비리를 근절하는 혁명의 세월이 숨가빴던 배경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1급수라고 자평했던 공직사회에서는 여전히 뇌물수수 행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국민들은 비리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뇌물을 공여하는 쪽이 자기를 중심으로 선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한 결코 비리가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라는 한계를 깨닫곤 한다. 공직사회가 자정의 노력과 물리적인 비리 척결을 요구받는 이유다.

이는, 국민이 공무원을 끝없이 의심하고, 공무원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구조적인 병폐다. 청렴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한계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박경철 익산시장 후보가 이한수 전 익산시장을 비리시장으로 매도할 때 시민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한 원인이다.

박경철은 선거기간 중에 이한수 전 시장을 의심하는 언론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공표했고, 텔레비전의 공개토론에서는 증거가 있다며 비리 사실을 단정하고 이한수를 비리시장으로 낙인찍었다. 박경철의 불순한 프로파간다는 이한수 시장을 파멸시켰고, 원심과 항소심 법원은 박경철의 사법적 책임이 엄중하다는 것을 확인한 마당이다.

뒤집어 보면, 박경철은 선거기간 내내 자신이 기성 정치인과 다른 점으로 '청렴'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 자신의 청렴성을 드높이기 위해 전 익산시장이 부패 공직자라는 허위사실을 날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공직사회를 기본적으로 의심하는 시민들의 고정관념은 박경철의 흑색선전을 쉽게 믿는 기제였다.

부패한 조직을 그대로 놔두면 결국 전체가 썩고 만다. 영어 단어의 부패(corruption)도 '공동(cor)'과 '파멸하다(rupt)'의 합성어다. 박경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어야 맞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 기간 중에 시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부패'라는 것을 확신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였고, 수장의 부패와 공조직 전체의 부패를 동일시하는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익산시민들은 그래서 박경철은 다른 것은 몰라도 청렴 정신 하나는 확실하게 공직사회에 심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시장으로서 청렴을 의심받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하지 않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시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1년 동안 9,100여만원의 급여를 수령하는 그가 의식주를 다 포기해도 할 수 없는, 집을 짓고 땅을 사는데 수 억원을 쓴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익산시장으로 당선되기 직전까지 빚이 곱사등이었다. 집 짓고 땅을 산 돈의 출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익산시 공무원노조가 혀를 내두를 만큼 인사를 제멋대로 한 배경에 의혹이 제기되고, 업무추진비 용처가 의심받는 이유다. 특히 업무추진비 사용은 액수의 규모부터 상식의 뺨을 친다. 박경철 시장은 지난 1년 동안 2억4,60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썼는데, 이는 전라북도 도지사가 같은 기간에 쓴 9,000만원보다 1억5,600만원이 더 많은 액수다.

또한 재정비상체제를 선언한 시장으로서, 전임시장이 임기 말 반년 동안 썼던 업무추진비보다 임기 초 반년 동안 7,000여만원이 더 많은 1억7,000여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비대하고 험상궂은 상식은 어느 별의 것일까. 익산시가 정보를 공개한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보면, 밥먹고 술먹고 선물을 구입한 것이 대종을 이루고 있으니, 내일 죽어도 오늘 진탕 먹고 놀아보자는 '니나노 별'의 상식이랄 수밖에.

이 전대 미문의 낭비벽 앞에서는, 만류하는 시의회와 지역언론이 오히려 몰상식한 집단으로 간주됐다. 그는 그의 말마따나 사사건건 발목잡는 의회와 언론을 적으로 간주하고 가용한 수단을 전부 동원해 먹고 있는 밥을 빼앗거나, 일을 못하게 방해하거나 무뢰배식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그 서슬에 의회는 다른 건 몰라도 시장의 고유경비를 더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요구 앞에서 결국 버티지 못했다. 기초가 부실한 사람이 권력의 맛을 보면 제어하지 못하는 법이다. 사례를 들 필요조차 없다. 가까이에서 박경철 시장이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만의 차별화 전략, 쏠리면 무슨 짓이든 하는

무섭고 추잡한 정치

업무추진비를 단 하루 만에 3,700만원을 쓰는가 하면, 비서실에 차와 음료를 매월 113만원어치씩 구입했다. 설령 3,700만원어치 선물을 살 일이 있었더라도 긴축재정을 지표로 삼는 입장과 업무추진비 총액을 고려할 경우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액수다.

그런데 이 밖에도 3,850만원, 2,920만원, 1,100만원 등 매번 구입한 선물 구입액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해 보이는 가운데, 1년 동안 선물 구입비로 무려 9,000만원이 쓰여졌다. 선물을 누구한테 주었느냐는 각론을 떠나서 선물은 기본적으로 선심성을 함의한다. 행정기관의 선물이 '기념적'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선물을 받은 사람들의 수와 선물을 구입한 비용을 대비해 추산해 보면 선물값이 과도하게 비싸다. 행정기관이 특별히 환심을 사야 할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의심받는 대목이다. 형식적으로는 선물 구입비로 집행됐으나, 실제로는 상당부분이 착복되었거나 횡령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부르는 것이다.

게다가, 선물을 구입한 영수증은 있지만, 단체 이름으로 뭉뚱그린 채 누구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다. 물어봐도 밝히지 않고, 기록과 다른 사실에 대해서는 아귀가 맞지 않은 변명으로 일관한다. 의혹에 무게가 더 실리는 이유다.

비서실에서 구입했다는 차와 음료 값의 규모를 현실로 끌어내기 위해 스틱당 200원씩 하는 커피믹스를 매월 113만원어치 살 경우를 산출해 보니, 무려 5,650개나 된다. 한 달 동안 시장실을 방문한 사람들이 5,650명이라는 얘기다. 주말과 휴일도 없이 30일을 다 합산한 결과다.

매일 188명이 시장실을 방문했다니, 문턱이 철판이라도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시장은 연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법정 근무시간을 대비해 보니 박 시장은 2.55분당 1명 꼴로 쉬지 않고 방문객을 만난 셈이다. 밥도 안먹고 화장실도 가지 않아야 하고, 집무실 밖에서는 아무일도 하지 못했어야 맞다.

이 밖에도 미심쩍은 업무추진비 용처들은 많다. 박 시장은 지난해 10월 초, 주요현안사업 간담회 등의 명목으로 1인당 6,000원 하는 백반집에서 245인분에 해당하는 밥값을 썼는데, 시장이 시민들에게 업무추진비로 밥을 사야할 일이 거의 없는 것을 감안하면 예외적인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 현금으로 지급된 격려금이 3,550만원에 달하는 점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박경철은 20년 동안 부패를 지탄해 온 장본인이다. 그 차별화 전략에 힘입어 익산시장이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낯가죽이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르기로 독보적인 이미지를 시민들의 뇌리에 각인했다. 마치 들키지만 않으면 되니 마음껏 해먹으라고 웅변 하듯이.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하며 달랑 있던 밑천을 드러낸 것인지, 20년 간 위선을 떨며 시민들을 속여 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1년이 지났는데도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의 행태는 시민들의 바람을 깡그리 저버린다. 오해받을 짓을 왜 노골적으로 사서 하느냐는 지적을, 사적인 일에 관심이 지나친 발로로 치부하고 묵살해 온 태도가 그것을 가르킨다.

그가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쏠리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사실이다. 이 보다 더 더럽고 무서운 정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등쌀에 실족해 중상을 입은 사람은 그래서 더 억울하고 원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