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박경철 시장은 지난 5일 익산시민들이 먹던 대아수계 물을 끊고 용담댐 물로 교체하는 익산시상수도체계전환 절차 이행과 읍면동 청사유지 보수를 위한 비용을 의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먼저 집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결처분은 '비상조치'라는 표제 옆에 붙어 발동되었다.

박 시장은 '긴급명령'이나 '비상조치' 같은 초법적 강제력 발동에 도착증적 증세를 보인다. 취임 직후에 모현우남아파트 주민들에게 긴급대피명령을 발동하더니, 그로부터 13개월 만에 먹는물 교체와 관련한 비상조치를 발동했다. '긴급조치'나 '비상계엄'같은 독재의 망령이 그에게 빙의되지 않고는 이토록 반민주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사유재산권 행사를 제한하고 대의민주제를 교란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호들갑이며 궤변에 불과하다. 그는 우선 상황의 위급성을 들고 있으나, 긴급대피명령에 불응하고 있는 모현우남아파트의 입주민들과 상수도체계 전환을 검토해 온 익산시 의원들은 거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초법적 강제력 발동에 도착적 증세 보여

모현우남아파트 주민들이 재난안전등급상 붕괴우려가 있는 건물의 상태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20여년 가깝게 집단행동과 소송을 통해 시공사의 부실 공사를 문제삼아 왔고, 이 과정에서 건물 보수보강이 이루어졌으며, 시공사로부터 손해배상액을 받아내기도 했다.

다만, 오랜 송사로 아파트 거주민들은 피폐해졌고, 그것은 거주민들이 '건물 보강을 통한 갈등 종식론'과 '손해배상액을 더 받아내기 위한 소송 연장론'으로 양립하는 동인이 되었다. 한 번 분열된 주민들은 대표자격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등 극단으로 치달았고, 별안간 협상 주체가 모호해지자 시공사는 뒤로 물러서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게 수 년을 지나면서 양쪽은 상호불신으로 찌들었다. 소송 연장파는 건물 보강파 쪽이 시공사로부터 뒷돈을 받고 조종을 당하는 것이라고 의심했으며, 건물 보강파들은 소송 연장파의 대표 등이 손해배상액을 유용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의심 할 만한 근거들은 없었다.

하지만 양측의 고소고발이 난무했고, 그런 가운데 모두가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한번도 동지가 아니었던 양 서로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교착상태에서 소송 연장파는 일대 국면전환을 꿈꿨다. 익산시장에 당선된 박경철은 그들의 출구가 되었다.

긴급대피명령은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지형으로 이동시켰다. 그들은 갑자기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할 난민이 되어 이주비를 요구했고 재산권 보호를 요구했다. 일부는 이주했고, 일부는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소송을 주도해왔던 소송 연장파들은 모든 책임을 벗어버린 양상이다.

박 시장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훌륭한 시장을 표방했다.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행위는 부당했다. 우선은 공무원들이 반대했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그로 인해 행정기관이 사유재산 피해를 보전해야 하는 부적절한 상황이 극명하게 예견됐기 때문이었다.

공무원들은 익산시의 지방자치 역사상 전례가 없고, 장차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게 될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을 진언했다. 더구나 사인간의 법정 다툼으로 얼룩지고, 단일 대표가 없는 거주민들을 상대하기란 지난하다는 점,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긴급대피명령의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을 역설했다.

익산시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시공사로 하여금 보다 안전한 보수보강을 하도록 중재하는 것 뿐이라는 대안도 제기됐다. 그것이야말로 법 테두리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며, 행정기관으로서 불신 받는 상황을 피하면서 제2 제3의 모현우남아파트 민원을 야기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조언도 뒤따랐다.

이는 절반의 거주민들의 뜻에 부합하는 해법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은 그동안 모현우남아파트에 살면서 건물이 붕괴 될 것이라고 걱정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단적으로, 긴급대피명령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박 시장에게 그런 말을 하는 공무원들은 걸림돌일 뿐이었다. 그는 담당 공무원들의 직무를 박탈하고, 긴급대피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런데 익산시가 긴급대피명령을 발동한지 1년 1개월이 지난 오늘, 절반의 거주민들은 멀쩡한 모현우남파트에서 생활하면서 박 시장의 권한남용을 웅변하고 있다.

의회는 건물 구조안전진단과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한 뒤에 긴급대피명령을 발동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위급'한 당위를 내세워 밀어붙였고, 모현우남아파트 건물과 거주민들은 당시에도 '위급'하지 않았으며 오늘도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며 박 시장의 결의에 찬 결단을 비웃고 있다.

합리적인 대안, 축적된 경험에 따른 예측, 정상적인 절차와 검토 주장, 다수의 의견 등을 통째로 묵살한 결과는 혼란만 야기했을 뿐이다. 긴급대피명령은 애당초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만 명징되고 있다. 그의 '위급론'은 형식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논증을 이용하고 있지만, 결국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거짓을 참인 양 꾸민 것에 불과한 것이다.

모현우남아파트 거주민들은 박 시장의 권한남용을 웅변해

박 시장이 이번에 발동한 비상조치(선결처분)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선 상수도체계전환의 경우 익산시의회가 세 차례나 부결한 사안이다. 먹는 물을 바꿀 경우 물값이 인상되는데 그에 따른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고, 수 십년 동안 먹어 온 물이 안전하다고 강조해 왔던 익산시가 갑자기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하지만 익산시는 먹는 물 교체와 관련한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갖지 않았다. 거버넌스도 전문성도 전무한 익산시의 상수도 행정이다. 익산시민들은 그저 말로 안전하다고 하면 믿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불신해야 한다는 게 익산시의 태도다. 아니, 박경철의 태도다.

박 시장은 나아가 익산시민들이 먹어 온 물이 개방형 농업용수로를 통해 공급되기 때문에 식수로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자연정화가 이루어지는 개방형 수로의 장점 같은 것은 뺀 채 지극히 위험한 '부적합'이라는 말을 기자회견문에 담았다. 그렇다면 지금 익산시민들이 먹고 있는 물이 어째서 부적합한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익산시 공무원들이 수 십년 동안 시민들에게 '부적합'한 물을 공급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전부 사법처리되어야 마땅하다.

박 시장은 왜 이런 궤변 속에서 허우적이는가. 비상조치(선결처분) 발동을 하기 위해서다. 지방자치법 109조(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결처분)의 요건을 맞추기 위한 논리의 전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09조는 '주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하여 긴급하게 필요한 사항'을 그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익산시민들은 누구도 생명과 재산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상조치 발동으로 보호해야 할 생명과 재산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최근 긴 가뭄으로 인한 물부족 현상과 그에 따른 절수운동에 동참해달라는 익산시의 홍보유인물을 한 장 받아보았을 뿐이다.

설령, 가뭄의 장기화로 대아수계 물 공급이 단계적으로 줄어들더라도 공업용수를 금강에서 끌어쓰면 먹는 물에는 지장을 받지 않는다. 특히, 들녘은 가을걷이가 한창이어서 농업용수는 더이상 필요가 없다. 대아수계의 물이 더이상 농업용수로 빠져나가지 않는 시기인 것이다. 이것은 매년 반복되는 갈수기의 현상이다.

물을 공급하는 농어촌공사가 물부족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저수율이 줄어들지만 물 수요도 급감하는 시기다. 단적으로, 우려는 할 수 있지만 비상사태로 규정지을 정도의 위기상황이 아니라 '대안이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장문의 기자회견문에 시민들이 불안에 떨어야 할 만한 말들만 끌어다 담아 '비상조치'를 합리화 했다. 저수율 감소에 따른 공급량 제한을 예단하고, 그것을 전제로 오염된 금강물을 먹는 물로 쓰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견강부회하고, 정수장 주변에 있는 화학공장들이 일으킬 만약의 재난사고를 갖다 붙였다.

정말 만에 하나 화학공장에서 재난사고가 난다고 한들 신흥정수장 물이 지하수도 아닌데 어떤 영향을 받는다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사실은 옳지 않은데 그럴듯한 말로 시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공론화를 통한 타당성 확보와 상수도체계를 전환할 경우 시민피해 최소화를 주문하며 안건을 부결시켰던 시의회가 시민들이 안전한 물을 먹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양 매도한다.

시청사 보수보강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익산시는 지난 수 년 동안 청사를 보수보강해 왔고, 건물구조안전진단 결과 안전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박 시장은 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물론 내방하는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예산을 승인해주지 않는 의회를 비난했다.

의회는 박 시장이 취임 초에 재정위기를 선언하고 지금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청사 보수보강 예산은 불요불급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박 시장의 선결처분은 법적인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일 열린 188회 임시회가 그 선결처분 승인요구를 부결한 것은 지극히 마땅하다.

'불안'이라는 대명사가 된 박경철은 익산시를 고립시켜

박 시장은 위 사안마다 속이려는 의지를 가지고 논리적 비약을 일삼을 뿐 아니라 잘못된 논리 전개를 고의로 이용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또한 사사건건 여론을 무시하여 저항력을 키우고, 같은 목적을 가진 집단과 기관에 다짜고짜 압력을 가해 반발력을 키웠다.

1년 3개월 동안 박경철은 '불안'이라는 대명사가 된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그의 입으로 '안전'을 외친다는 것이다. 공조직은 그의 온갖 전횡에 짓눌렸고, 시민들은 그가 조장하는 불안 속에서 신경쇠약에 걸릴 판이다. 시계 제로의 고립, 그것이 익산시의 모습이다.

박경철이 조장한 것이다. 일단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떼를 쓰는 정신연령 미상의 시장을 익산시민들의 손으로 뽑은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여주는 그의 돌출행동은 익산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의 싹을 꺾고 또 꺾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