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부끄러운 줄 모르고 겁도 없이 날뛰는 자를 일컬어 우리는 '후안무치한 자'라고 한다.

흔히 하는 말이고 듣는 말이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다.

부끄러움은 사람이 타고난 성품의 네 가지 벼리 중에 하나라는 전제 아래, 우리들 미풍양속의 윤리 규범은 '부끄러운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고 했으니, 후안무치란 사람 가죽을 쓴 금수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후안무치한 짓을 하더라도 그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다.

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나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언행을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후안무치하다'는 규정은 까다로운 평가를 거쳐 내려야 옳다.

'후안무치'는 퇴마사의 주문처럼 인간공동체에 섞여서는 안 될 인면수심의 야수를 향한 추방령인 것이다.

야수란, 물어뜯고 할퀴는 생존방식을 따르며, 그 우두머리의 군림은 "까라면 까"와 "아니꼬우면 힘을 갖든가"에 기반한다. 무릇, 종속 관계만 있고 횡적 상대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지배 방식의 전부다.

독단으로 이끌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제거하고, 누구든지 저항하거나 비판하면 적으로 간주하며 살상의 표적으로 삼는다.

그것은 한사코, 무리를 보호하고 먹여살리기 위한 '통제'라는 미명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야수의 세계에서 실패나 실수에 대한 성찰이 있을 수 없다. 그럴 기회가 없다.

밀리거나 꺾이면 그 순간 끝이다. 단적으로 야수의 세계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언제든지 누구하고든지 서로 물고 뜯으며 진구렁을 구르며 배를 드러내면서도 오직 힘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일 따름이다.

누군가를 후안무치한 자라고 일컬을 때의 소이연들이다.

반인륜적이고 해악적이면서도 사람에게 필요한 성찰이 없기에,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살상에 필요한 근육을 기르는 시행착오는 겪을지라도 그 내부에서 인간다움은 발아조차 하지 않으며, 그래서 부끄러움 자체를 모르는 자에게만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후안무치하다"고 규정할 수 있을 정도의 후안무치는 그것을 자각할 수 없는 야수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후안무치에 대한 자의식을 가진 인간들이 야수와 상면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한다.

생존의 기술로 후안무치를 체화한 야수에게서 인간은 상처를 입으며 동시에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안무치를 체화한 야수에게서 상처를 입으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감당해야 하는 인간

박경철 시장은 익산의 지방자치 역사상 초유의 비상조치(선결처분)를 발동하는 자리에서, "특정 언론 몇 곳이 지난 1년 동안 쉬지 않고 나를 공격하고 비난해 왔다"며 언론의 비판을 공격이라고 규정했는데, 이 호전적인 말은 비판하는 언론이 익산시장인 자신에게 '적'일 뿐이라는 언론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1년 동안 쉬지 않고 비정상적인 언행과 충돌 일변도의 행보를 거듭하며, 유례없는 독단적 시정운영과 공조직 내부에서의 전횡으로 이른바 '기삿거리'를 차고 넘치게 생산해 낸 자신에 대한 성찰은 거기에서 싹 빠져있다.

지난 1년 동안 어떤 언론도 공연히 딴지를 건 바 없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조작한 바 없으며, 일부러 비난거리를 찾아서 까발린 바도 없다.

박 시장은 마땅히 지적 받아야 할 사실을 다룬 언론들의 보도기사와 논평문들을 닥치는 대로 "허위사실이다" "명예훼손이며 모욕이다"며 형사고소를 일삼았으나 누구도 처벌받은 바 없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명증한다.

따라서 일년 동안 쉬지 않고 비판받을 문제들을 야기하고, 시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것이 사람의 도리인 것을, 되레 언론이 자신을 비판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정도로 후안무치한 것이다.

박 시장은 또 같은 자리에서 "특히 법원의 선고일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악의적 보도를 일삼아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보도들이, 선거공보물에서 견강부회로 유권자들을 기망하고 선거방송토론회에서 상대 후보를 비리시장으로 낙인찍는 발언으로 유권자들로 하여금 선택의 오류를 범하게 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은 싹 뺐다.

또한, 박경철 피고는 재판과정에서도 허위주장을 서슴지 않고, 선거과정에서와는 달리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그 결과가 불행하게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언론의 관측은 못 본 체 한다.

무엇이 악의적인 보도란 말인가.

그가 말한 '악의적 보도'의 반대편에는 '선의적 보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진실을 좇는 언론의 생리상 성립될 수 없다.

언론이 거짓 보도를 하는 것이 선의적 보도라면 누가 그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가 '악의적 보도'라는 말을 준비하는 동안이나 하는 순간에 언론을 향해 내리고 싶었던 명령은 '침묵'일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을 속여서 익산시장 자리를 약취한 것을 '위대한 권모술수의 승리'라고 언론이 찬양할 수 없다.

법정에서 검찰의 오류를 정면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강변으로 일관하는 것을, '법 마저 비웃는 위대한 돈키호테'라고 언론이 미화할 수도 없다.

증거를 대지 못하고 강변으로 일관하는 일련의 재판과정을 두고 무죄판결을 받을 공산이 높다고 언론이 왜곡할 수도 없다.

박 시장 자신도 최소한 언론의 그런 본령을 일탈한 보도가 '선의적 보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 뜻은 "짜져있지 않고 나대는 불온한 것들"로 훅 덮쳐드는 것이다.

언론이 분석한 바와 같이 박 시장은 허위사실 공표죄로 원심과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은 지금 대법원에 계류중이지만, 익산시민들은 재선거를 치를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혐의를 요약하면, 그가 존재하지 않는 전임시장의 소각장 비리를 주장하면서 증거가 있다고 시민들을 속여 당선됐다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 선고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박 시장은 재판과정에서 시민을 속이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함으로써, 시민을 속여서 당선됐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가 법정에서 사실은 인정하되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처벌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 점이 그것을 명징한다.

이에 대해 언론이 대시민 사과를 요구한 것은 적실했다.

그러나 그는 원심판결 뒤에도 항소심 결과가 나온 뒤에도 지금까지도 혐의에 대해 대시민 사과는 커녕 공식적인 해명을 일절 한 바가 없다.

기만과 허위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유린하고 , 권력의 정통성을 의심받으면서도, 부당행위 시비로 시민들에게 혼란과 불안을 안겨줬으면서도, 직접적인 책임은 물론 물의를 일으킨 도의적인 책임의식조차 없는 태도로 일관해 온 것이다.

언론의 침묵과 굴종이 박경철의 망발에 힘을 실어주고

그것은 인간세의 야수화가 가능하다는 환상에 빠지는 저변

그런 그의 입으로 언론의 정당한 활동을 "악의적이다"고 매도하는 것을 '후안무치' 말고 달리 규정할 길이 없다.

박 시장은 같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동안 보도된 100여건의 기사 제목을 제시했는데, 그의 말마따나 이러한 사례는 아마 대한민국을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도 없을 것이다.

한 정치인이 몇 개의 언론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삿거리를 생산해서 공급한 사례는 한국 정치사에 없을 것이고 한국 언론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것이다.

박경철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터뜨린 익산지방자치 이래 초유의 사태들과 그의 무수한 린치 행위들과 대립과 갈등 조장들과 그가 지닌 야수적 모든 자질들이 불러일으킨 분란들을 외면하고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전적 의미로도 '침묵'은 '언론'과 등진다. 무엇보다 언론이 침묵하는 것은 개점휴업 상태를 말한다.

휴업 상태가 길어지면 문을 닫아야 한다. 최소한의 효용가치까지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는 박경철 발 이슈 앞에 침묵하면서도 건재한 언론들이 상당수 있다.

박경철이 잘 돌봐주고 있는데다 앞으로의 생계유지를 기약하는 그의 통큰 손맛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불편부당은 침묵하지 않을 때 성립한다.

침묵하면서 시비에 휘말려들지 않는 것은 개인의 처세술이다.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언론이 시비를 피하기 위해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면, 스스로 공공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순간 언론은 사익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단순히 밥벌이 수단으로 언론을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후안무치가 아닐까.

민심을 경시하고 언론을 하대하며, 내일을 고사하고 오늘 당장을 걱정하는 보도들을 놓고 "죽이려고 벌떼처럼 몇 개의 언론사가 무차별 공격"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박경철의 후안무치의 저변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이른바 선의적 보도를 하거나 침묵하며 굴종하는 언론들이 그런 망발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까.

침묵하거나 권력의 편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이 진실을 말하는 언론보다 더 많기 때문에, 야수가 인간세를 야수화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인면수심이 명백한 것은, 그가 '권력과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은 언행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