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사법적 잣대가 아니라 보편적 관점에서 행정기관의 장이 합의를 거부하고 검토의견을 묵살하며 밀어붙이는 것을 권한남용이라고 할 때, 우리는 며칠 전까지 바로 그 권한남용 때문에 경악하고 또 경악했다.

그것은 주지하다시피 갈등과 반목, 분열 같은 반사회적인 경향을 일으키는 기제였다.

무릇 권한 있는 이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질적 현장에선 아직 연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초토화된 익산시에서 권한남용을 새 시대의 방향성인양 제시하는 무리들이 지각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하나는 익산시 언론관련 예산 운용에 관한 조례안(이하 언론조례안)을 만든 일부 시의원들이고, 또 하나는 익산시 조직을 1년 5개월 전으로 돌이키는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고 획책하는 일부 공무원들이다.

포연 속에서 지각을 뚫고 고개를 내미는 제3의 권한남용

사실, 의원발의 언론조례안은 집행부가 초래했다. 시장의 비위에 맞지 않는 언론사에는 기 편성된 홍보비 지원을 무단으로 끊어버리는 것은 물론, 특정 언론사의 몫으로 편성된 홍보비도 멋대로 유용했다. 어떤 기준도 없었다. 있을 수 없는 행위들이다. 인사권자가 시키면 막가파라도 될 영혼 없는 행태다.

비판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임을 져야 할 권한남용이 아닐 수 없다. 의원들이 언론조례안을 발의한 것은 익산시의 무원칙한 홍보예산 편성과 집행을 막아서, 홍보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건강한 지역언론을 육성하며, 익산시장의 전횡과 나팔수 언론의 기생 환경을 없애야 한다는 당위에서 비롯했다.

지난달 28일 발의됐고, 입법예고 중인 언론조례는 그 목적에서 표방하는 바와 같이 지역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조례는 단지 생계수단으로 발행하는 언론사와 카르텔을 형성하여 이윤만을 추구하며 협잡을 일삼는 일단의 유사 언론사들을 도태시킬 것이다.

팩트와 희망을 좇으며 공공재로서 소명을 다하고 치우침과 이익집단화 거부를 금도로 삼으며 야만적 권력에 굴하지 않는 언론사는, 재갈을 물리고 사유화하려는 권력의 시도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공무원들이 명예를 지켜갈 용기와 책무를 저버리고, 언론이라는 외피를 입은 모리배들이 득세를 하는 세태를 명경지수 앞에 세우려는 것이다.

그래서 의회의 결단은 그 정체성과 한계를 생각할 때 뭇매를 각오한 것이니 가히 숭고하다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의회가 법을 만들기 위해 집어든 규준틀이 보편성과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그 정당성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폄훼 당하는 빌미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언론조례안은 제1조에서 5조까지 지원대상 언론사와 사업을 제한하고, 지원주체와 방법 등의 대원칙을 담아 언론 관련 예산 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했다고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제6조는 과욕이 낳은 것으로 논란거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언론중재위원회는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기관이고 쌍방 합의를 원칙으로 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원만한 합의에 따라 피해 보상이 매듭이 지어진 결과를 지원 배제 기준으로 삼는 것은 과잉이다. 언론사의 취재기자가 공갈 등으로 형사처벌 받은 것을 지원 배제 기준으로 삼는 것 역시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현행 법령은 언론사 지원여부를 결정하는데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이나 사법당국의 전과기록을 요청 또는 받을 수도 없게 되어있어 이 조항은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과욕, 대원칙을 세우려는 목적의 정당성마저 의심케 해

자율이 더 소중, 자정기능 수행할 언론결사체 아쉬워

의회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사인간의 문제까지 행정행위의 평가기준으로 끌어들이고, 인권을 침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대의기관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다. 뿐만 아니라 익산시의회는 언론조례안에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입법전횡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제7조부터 13조까지의 언론관련 예산 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 설치와 구성 또는 운영 규정이 그 단적인 예다. 위원회로 하여금 익산시의 언론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고 심의하는 일을 총괄하도록 하는 조항들이다. 제10조 '위원회의 심의사항'에 잘 정리되어 있다.

위원회로 하여금 언론관련 예산 지원대상의 선정 및 지원기준에 관한 사항을 심의토록 하는 것을 비롯해, 지원사업 결과 평가에 관한 사항, 지원사업과 지원내용에 관한 연구, 그 밖에 지원과 관련하여 시장이 회의에 부치는 사항 등을 심의토록 한 것이다.

여기에는 우선 의회의 자기부정이 있다. 예산 심의권은 의회의 3대 고유 기능 중 하나인데, 스스로를 믿지 못해 제3의 예산심의 기구를 구성하는 꼴이다. 언론조례안은 나아가 익산시의 고유기능을 침해한다. 예산 편성과 집행권은 익산시에 있는데, 제3의 기구로 하여금 언론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을 통제하도록 한 것이다.

이 조례안은 10인 이내의 위원회를 구성하되 익산시 공무원이 위원으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단지, 공무원은 위원회의 사무 처리를 위해 간사 및 서기로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홍보담당관실은 위원회가 정해주는 대로 홍보예산을 내주는 기계적인 업무만 수행하라는 취지다.

도대체 행정기관의 전문성을 제한하여 정책과 공지의 효율적인 홍보권한을 박탈하면서, 익산시의회 의원 2명을 포함해 제3의 인물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또 다른 비용을 발생시키는 옥상옥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믿을 수 없으니 익산시와 익산시의회가 해야 할 일을 제3의 기구에 맡기자는 발상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언론관련 예산의 편성 및 집행과 심의권을 모두 거머쥔 위원회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 같은 위원회제일주의가 확대되면 제3의 시민자치기구를 세우고 익산시와 익산시의회는 해체 및 해산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인가.

언론조례는 이와 같이 수단의 적합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침해의 최소성이나 법익의 균형성을 획득하지 못해 목적의 정당성마저 의심받는 지형에 떨어졌다. 대원칙을 세우는 정도면 충분했는데, 이해관계의 산물로 의심받을 조항들을 삽입하면서 언론조례안 전체의 진정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집행부의 권한남용을 막자며 만든 법이 권한남용을 범하고 있다면, 그 법이 어떻게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언론조례가 오늘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언제든지 폐지될 여지가 많은 법이라면 굳이 만들어서 혼란을 야기할 이유가 없다.

특히, 규제는 창의성이나 능동성을 감소시키고, 불통을 만연케 하며, 비리를 양산한다.

법보다 자율이 더 소중한 이유다. 언론의 자정기능이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부적절한 언론사의 난립을 막고 품위를 지켜나가는 언론 결사체가 없는 것도 오늘과 같은 혼란의 근원일 것이다.

아무튼 언론조례 공포와 관련하여 의회 내부의 보다 치열한 대화와 논쟁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하는 균형을 찾고 집행부의 언론지원 대원칙을 세우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제3의 기구에 자치단체의 기능을 이양하고 해산할 것인가

광풍의 상처 치유제는 순풍, 결 따라 인사를 단행하기를

균형과 안정은 현실의 토대 위에서 찾아야 한다. 부시장 체제의 익산시가 앞둔 인사 역시 지나친 현실부정에서 출발하게 되면 균형을 잃어버릴 공산이 높다.

물론 지난 15개월 동안 익산시 조직은 산산이 부서졌다. 복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점령군마냥 박비어천가를 부르며 시장이 하라면 무엇이든지 했던 영혼 없는 공무원들과 그 반대편에서 시장의 사적 관계나 사감에 얽힌 관계로 유배당한 공무원들이 있다. 또, 말도 안 되는 무슨 '파'로 분류되어 불이익을 본 공무원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구제되어야 할 공무원들은 최소한이어야 한다. 자칫 수많은 제3의 피해자들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익산시 조직에서 파열음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가뜩이나 과도한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마당에 상처에 상처를 더한다면 식물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조직은 선의의 경쟁으로 발전한다. 과잉 조직복원은 필요충분조건의 경쟁 환경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 희망이 없는 조직에는 무소신과 무책임, 복지부동이 만연하게 된다. 익산시 조직은 근래 세 차례 단행된 인사를 통해 이미 그런 깊은 병을 얻었다.

지금은 회복이 필요한 때다. 단, 현실에서 균형을 찾는 중용의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 회복에는 시간이 약이다. 여러 가지 화학적 처방으로 급진적인 회복을 꾀했다가는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5개월 동안 익산시에서 불었던 광풍의 핵은 권한남용이었다.

또 다른 권한남용이 조직 내 일벌레 혐오 바이러스를 번식하게 하지 말기를, 순풍만이 광풍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현실의 처방전을 준수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순풍으로 조직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상하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불통과 억압이라는 닻을 올리고, 결 따라 단행하는 인사를 통해 민선 6기의 공백기가 표류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