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교육지원청이 공립단설유치원 설립을 밀어붙이고 있다. 요식행위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없는 절차를 후닥닥 해치우며 사업비 사용 승인 주체인 전라북도의회를 압박했다. "더 이상의 타협은 없고 임기 중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는 교육장의 의지천명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여론조사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여론조사를 앞 둔 그 짧은 기간 동안 단설유치원 설립의 당위를 주장하는 유인물이 대량 살포됐고, 그 직전에는 몇몇 학교에 같은 취지의 현수막이 나부꼈다. 여론조사 실시를 전후한 기간 중에는 반대쪽 보다 현저하게 많은 찬성 피켓을 든 사람들이 도시 주요사거리의 교통섬을 채웠다.

찬성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 도의회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앞선 지난해 8월, '여론 수렴과 적극적인 민원해결'을 전제로 ‘가칭’솜리유치원 설립계획안을 부결시킨 바 있기에, 같은 이유를 내세워 다수여론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익산교육지원청 류지득 교육장은 실로 득의양양할 만하다. 목표를 설정한 뒤 질풍노도와 같은 추진력으로 선량한 학부모들을 추동하여 반대하는 사립어린이집 원장들의 목소리를 무력화시켰다. 사립어린이집 쪽은 한낱 밥그릇 때문에 단설유치원설립을 반대하되, 소수의견에 불과하다는 실증을 확보했다.

궁극적으로는 지역사회가 갈등과 혼란에 빠져드는 것을 우려하는 도의회의 조정력을 봉쇄했다. 교육장은 이해당사자들은 물론 정치권과의 대화를 배제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이 배수진을 친 격이다. 그가 내세우는 명분을 보면, 단설유치원설립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를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말마따나 유아기는 인적자원 투자대비 회수율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시기다. 양질의 교육환경과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그의 말대로 단설유치원이 최선의 답이라면, 30만 인구의 익산에 단 한 곳의 단설유치원이 설립·운영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인구 규모가 비등한 군산에 3곳, 9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완주군에 2곳의 단설유치원이 설립·운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익산지역 학부모들이 교육기관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게 맞다. 미취학 아동들을 기르고 있는 익산의 학부모들 86%가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14%의 학부모들만 교육비를 전액 또는 전액 가까이 국가로부터 면제받고, 나머지 학부모들은 유아 1인당 평균 20만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교육기관은 도시발전에도 기여한다. 타 지역의 인구를 유인하는 메리트 때문이다.

더구나 배산·장신지구에 대단위 공동주택이 건설되면서 수요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 이 지역에 975명 규모의 초등학교가 개교할 예정이고, 관련 법률에 따라 초등학교 정원의 1/4에 해당하는 유아를 수용할 단설유치원 설립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편향된 정보는 오답만 나올 뿐이고

답을 구하는 것은 여론조작에 불과하다

누가 들어도 희망찬 일이다. 류지득 교육장의 저돌적인 정면돌파는 자신이 그런 일을 추진하는 데 따른 자긍심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표면에 내세운 찬·반 양측의 최대공약수 찾기가 균형추를 상실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지점들에서 우리는 눈을 떼기가 어렵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보거나 듣거나 함께 생각하는 것을 건너뛰었다. 그 시간과 공간들의 간극이 눈에 띄게 크다. 거칠게 단속적으로 이어진 행정행위는 반대의견을 전면 배제함으로써 장애 없이 교육청의 목표에 도달했지만, 그로인해 모든 행위의 자의성과 인위성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살펴보면, 단설유치원 설립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구성한 공공토론위원회가 찬동하는 사람과 교육청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 일색인 것은 잘못끼운 첫 단추다. 반대쪽 사람들이 교육청의 의도가 불순하다며 전면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미 결론을 내놓고 들러리 세우는데 동원되지 않겠다는 게 그 배경이었다.

따라서 공공토론위원회는 그대로 출범해서는 안 되는 기구였다. 반대쪽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는 마당에 '이해관계자의 합의 도출'이라는 당초 취지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토론위원회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서둘러 가동됐다.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설명회에 불과한 시민토론회와 공립단설유치원 설립 계획 설명회를 몇 차례 열고, 교육청 중심의 질의와 답변으로 이루어진 케이블 티브이 토론회를 연 것이 교육청이 말하는 여론 수렴 절차의 전부였다.

이 과정에서 일반 학부모들은 왜곡되거나 허위의 정보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됐다. 단설유치원 설립 비용 80억원은 국가가 전북교육청에 지원한 보통교부금으로 전라북도 안에서만 목적사업에 쓸 수 있는데, 설립 찬성 측은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타 시도로 사업비를 빼앗기게 된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했고 교육청은 이를 방관하면서 단설유치원 설립의 시급성을 강변했다.

공공토론위원회를 내세워서다. 이 위원회는 교육장이 표방한 민간차원의 합의 주체이고, 그런 맥락에서 교육장은 아주 수준 높은 민주적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로 홍보되었는데,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채 출범함으로써 이 위원회는 공식적으로 활동경비를 지원받으면서 교육청의 행정행위를 대행하는 기구로 전락하고, 류지득 교육장은 결과적으로 선량한 학부모들을 기만해오고 있는 꼴이다.

특히, 교육장은 위원회 출범 직후 단설유치원 설립을 반대하는 익산시 영·유아교육평등대책위원회(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결사체, 이하 유교평위)와 한 차례 만나 타협을 시도했으나, 유교평위 측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가 이를 번복하자 곧바로 '의지 관철' 전쟁을 선포했다.

이로써 공공토론위원회는 교육장의 목적달성을 위한 전위대로 전락했고, 교육청의 모든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하게 됐다. 공공토론위원회는 당초 전라북도 교육위원회가 승인한 운영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됐으므로 더 이상 보조금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교육장은 이 위원회를 해체했어야 하지만 교육청의 업무대행기구로 계속 운영한 꼴이다.

이 위원회는 여론수렴과 갈등해소를 위한 중립적 활동지표를 저버리고, 오히려 다양한 방법으로 찬성 여론몰이를 주도하면서 갈등을 조장했다. 익산교육청은 공식홈페이지 공간까지 이 위원회에 할애하면서 편파적인 홍보를 지원했다.

이렇게 목적이 뚜렷하고 단호한 추진과정에서 류지득 교육장은 타협을 위해 반대 측에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공표했다. 이미 대화할 의향이 전혀 없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숨 가쁘게 절차를 밟아나가면서, 들러리를 거부하는 유교평위 쪽을 되레 갈등세력으로 몰아붙이고 한편으로는 자기이미지 관리를 하는 고도의 술책으로 익산시민들을 속인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와 개인의 역할에 대한 무지는 갈등과 분열의 근원

교육장의 부적절한 행태는 공공토론위원회에서 주관한 몇 차례의 토론회가 찬성 일변도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근원이 되었다. 이로 인해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운영자들은, 선생님들이 칼 출·퇴근하는 공립유치원과 달리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사립유치원의 교육시스템을 공론장에서 말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또, 익산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여파로 유아들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으나, 타 시도에 비해 유아대비 유아교육기관시설이 많은 점, 감사원이 단설유치원 설립 투자비용 대비 효용성이 부실하다고 지적한 점, 공교육의 유아수용계획을 축소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중인 점, 2~3년 뒤 유보통합을 앞두고 있는 점, 지난 2011년에는 익산 초등교장들이 단설유치원 설립을 반대했던 점 등도 제대로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유교평위는 교육장이 자신들을 한낱 밥그릇 싸움에 골몰하는 세력으로 폄하하는 태도에 분개한다. 그들은 공립단설유치원이야말로 병설유치원 교사들의 승진 물꼬를 터주면서 세금을 낭비하는데 불과하다고 논박한다. 공권력을 민간 기구로 포장하여 여론몰이를 서슴지 않고, 편향된 정보에 노출된 시민들에게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 앞에서 아연실색한다.

공공토론위원회 발족은 아름다운 출발이었다. 전국에서 최초였고 시대가 요구하는 협치의 전범이 될 수 있었기에 그랬다. 그러나 류지득 교육장은 '협치'가 부단한 소통과 인내를 요구한다는 기본을 몰랐거나 무시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임기 내에 업적을 남기려 하는 일반적인 공무원들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조급증을 유발했을 것이라고 유추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무원이 업적으로 남겨야 할 것은 어떤 결과만이 아니다. 어떨 때는 훌륭한 과정을 남기는 것이 더 값질 때가 있다. 단설유치원 설립 찬성률 83.1%로 류지득 교육장은 그의 입장에서 완승을 거뒀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제3의 관찰자들은 아무도 그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심판이었고, 그라운드에는 심판이자 감독인 그의 소속팀만이 존재하는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 경기였다. 무엇보다 그는 익산 교육계의 지도자다. 도덕교육의 지표 가운데 핵심인 공동체의 가치와 개인의 역할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주체다.

그런데 그는 부도덕하고 비교육적인 행보로 일관하면서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능수능란했다. 지도자의 기본 덕목인 조정력은 제로상태였다. 그로인한 미증유의 후유증은 지역사회에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다. 단적으로 그는 자신이 취학 전 아동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유아교육이 왜 중요한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샀다.

익산 단설유치원 설립 여론조사가 원천무효이며, 류지득 교육장이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야하는 이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