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 14일 거취 결정을 발표하는 정헌율 익산시장 출마 입지자의 기자회견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정 입지자는 이 자리에서 무책임, 독선, 책임전가, 자의적 사고방식 따위의 온갖 부정적인 면모를 노골적으로 과시했다. 그의 육성의 행간에서는 격심한 경보음이 울렸다.

그의 위험성은 스스로 고위공직자 출신이고 지방재정전문가였다는 점을 강조하여 내세우는 데 있다.

그것은 자신의 말에 신빙성을 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경력을 전제로 경력과 관련된 거짓말을 한다면 청자들이 쉽게 속아넘어가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경력을 강조하려는 마음이 앞설수록 신중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왔던 사람이라면 공명정대를 숭상하고, 국민 대하기를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해왔기에 일반인보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할 수 밖에 없다. 지도자로 선택받고자 하는 전 공직자라면 도덕성이 왜 지도자의 지표가 되는지를 잘 알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전 고위 공직자가 '전문'분야를 국민이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노정하고, 전문적 사실을 왜곡하기를 일삼으며 국민의 판단을 오도한다면, 그것은 그가 평생동안 국민을 도외시 하거나 깔보면서도 버젓이 삶을 영위하며 혈세를 축내 온 참답지 못한 공무원이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정헌율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익산시의 부채가 6천여억원으로 파산위기에 처했다고 공표했다. 이는 익산시가 공시해 온 부채 3천여억원과 큰 규모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또 그가 부채를 이해하는 방식도 익산시와 차원이 전혀 달랐다.

그는 향후 10년 동안 발생하는 3천억원에 가까운 민투 공공시설의 운영비까지 부채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공공시설의 운영비를 부채로 봐야 한다면 같은 기간동안 익산시의 부채가 1조원을 훨씬 상회하는데 이를 부채로 봐야 한다는 것이냐"는 논박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지자체는 파산해야 맞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현행 민투사업 회계처리지침에도 민투시설의 임대료만 부채로 계상하고 운영비는 비용으로 처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자신이 30 여년 동안 지방재정분야에서 근무한 재정전문가라는 점을 내세우며 익산시 재정파산방지대책본부를 발족하기까지 했다.

이런 전제사실은 그의 주장과 행위에 설득력을 높이는 기제로 충분히 작용했다.

성공적인 대시민 기만이었다.

지금도 익산시민들 상당수는 익산시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침몰 직전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익산시가 여러차례 그의 당치않은 주장을 반박했는데도 그렇다.

그 패해는 실로 크다.

익산시 민선6기가 출범한 이래 1년여 동안 제3일반산업단지에 관심을 보였던 기업들이 숨을 죽였고, 입주했던 기업도 상당 수 떠나갔다.

같은 기간동안 익산시 담당 공무원들이 입주하기로 사전 양해각서를 체결했던 기업들을 찾아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었다. 파산한다는 도시에 어떤 기업이 투자하겠는가.

익산시의 부채 대부분이 이 산단 조성으로 발생됐고, 유일한 부채상환 방법이 산단분양인데 정헌율은 부채부풀리기로 이 길을 막은 것이다.

익산시의 긴축재정으로 지역경기는 크게 위축됐고 상당수 시민들은 익산을 버렸다.

억지를 부려서 잘못을 가릴 수는 없다

산단을 분양해서 부채를 상환하는 만큼의 재원을 도시에 풀어서 얻게 될 익산시의 이익(발전)을 계상한다면, 그가 익산시와 시민들에게 끼친 손해는 막대하다.

정현율은 '당선'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익산시의 부채를 악용했지만, 팍팍한 생계를 꾸려가는 시민들에게는 치명적이었고, 익산시는 공익을 생산할 동력을 잃어버렸다.

특히 그의 사기행각은 새정연 예비후보로서 자신의 경선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직접적으로 기여했고, 그 결과로 무소속 시장이 입성한 민선6기 익산시는 지방자치 이래 최악의 분열과 반목,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당선무효형으로 폭주하던 시장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으나 미증유의 상처와 그 후유증은 치유되기 어렵다.

정헌율이 져야 할 책임은 이와 같이 엄중하다.

그러나 그는 공식적으로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재선거를 치르는 익산시장에 출마한다면 그 자체로 '부적격'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거취 표명 자리에서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익산시의 부채 규모는 자신이 발표한 게 맞다고 강변했다.

지난해에 행정자치부도 익산시의 부채를 3천여억원으로 공시했는데도, 정헌율은 "지방재정은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우겼다.

심지어 행자부 공시나 익산시의 공시를 근거로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전혀 근거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기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는 또한 "왜 시중에서 부채를 가지고 떠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덧붙여 "명확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정말로 순수한 뜻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정말 가만있지 않고 모든 법적책임을 묻는 등 단호하게 조치해 분명히 일침을 가할 것"이라고 했다.

익산시의 부채규모 부풀리기(허위사실 공표)가 지역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언동이다.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자신의 네거티브 정치를 순수하다고 말하고, 부당한 것을 비판하는 이들을 불순한 목적을 가진 세력으로 매도했다.

참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인식세계다. 공직생활을 오래하면, 객관적인 지표가 아닌 주관적인 지표로 세상을 재단하는 전문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 공과(功過)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30만 시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시민을 졸로 보거나 을로 보는 인식의 발로다.

전문성이란 사람들을 속이는 스킬이라는 자신만의 명제를 세운 듯, 자신의 거짓말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도 막무가내식으로 부정하며, 오히려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을 물어뜯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과연 전 지방 고위공직자였을까.

그런 사람에게는 애당초 필요한 수준의 책임의식과 도덕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정치 역정 중에서도 당적을 옮겨 철새정치인 꼬리표를 달았지만,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얼떨결에 그렇게 됐다"며 무소신을 드러내면서도, 그게 뭐 잘못된 일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다.

새정연에 당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천정배 신당 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데 대해 "불법이 아니다"고 일축하는 그의 태도는, 그런 정치적 행보가 '배신 행위'라는 점을 모르거나 배신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인격을 드러낸다.

공개사과만이 기대 모으는 모멘텀 될 것

보아하니 그의 모든 행위가 가리키는 자신의 정체는 '미숙'이다. 그의 언동은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발로이고, 그로 인한 주변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으며 그에 따른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니, 그의 의식 수준은 범 사회적 경험이 미약한 정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할 것이다.

재정관리에 관한 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행정자치부 보다 자신이 지자체 재정 부기를 더 잘안다고 단언하는 그의 교만은, 세상 넓은 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행태와 다르지 않거니와, 전문인들과의 교류가 일천한데다 자신의 직능을 연찬하지 않은 게으르며 무능한 상태를 드러낸다 할 것이다.

자의적인 해석은 공무원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공무원이란 행정의 3대원칙(공평·형평·비례)과 준법을 생명으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 씨는 33여년 동안 공직에 몸담아 왔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성장하지 못한 채 미숙한 상태로 머물러있는 점이 어찌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자신의 미숙조차 인식하지 못하면서 한 도시의 대표가 된다면 그 도시는 전국적인 조롱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제라도 그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공개사과 함으로써, 잘못을 인식하는 정도가 되는 전 공무원, 그래서 개과천선의 가능성이 있는 전 공무원으로 인식을 일신하기를 바란다. 출마는 그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 익지 않은 채 쭉정이만 있는 곡식을 누가 거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