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겨야 산다.' '이겨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 정글의 상식이다. 또한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다. 선거가 축제이지 못하고 전쟁터에 머무는 까닭이다. 익산은 시작도 하기 전에 온갖 권모술수와 비인간적 잔혹사로 얼룩질 4월을 예고한다.

무엇보다 어제까지 한 식구였던 사람들의 변심이 태풍의 눈이다. 오직 당락의 셈법으로 적대의 무리 속에 끼어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세간의 화두다. 특히, 집나간 자식이 부모 앞에 칼을 빼들고 사생결단하자며 덤비는 패륜은, 비정한 현실정치를 마실 때 단골 안주가 되었다.

기본이 무너진 세상을 복원해야 할 정치인들이, 기실 기본을 무너뜨리는 선봉이더라는 자괴감은 설 명절 이해관계 없는 만남의 술 잔 속에서도 소태처럼 썼다. 포연과 피비린내가 가득한 일전 속에서라도 희망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절망을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암담하기 그지없다.

다시 보게 될 데자뷰, 지난 6.4 지방선거의 새정치민주연합 전라북도 공천심사위원회를 돌아본다.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민주계를 비롯한 안철수계와 디와이계가 연일 보여준 이전투구는 그 불행의 시작이었다. 각 계파는 오직 이익 분점에 경도되어 있을 뿐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분탕질에 혼신을 다했다.

구도는 기득권 세력과 판덕을 잃은 세력, 진보세력으로 갈린 패들 간의 한바탕 접전으로 그럴듯하게 짜여져 보였지만, 실상은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서로 물어뜯는 이리들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먹이를 지키거나 빼앗기 위해 상대를 찢어발기며 으르렁거리고 울부짖는 파열음은 공멸을 예고했다.

그들만 몰랐다. 시민들을 지표로 정당이 추천할 인물을 고르고 합의하지 않은 대가가 무엇인지를. 그들의 오만, 혹은 정치를 한낱 정치인들의 밥으로 여기는 무지로 인하여, 결투장 한 가운데서 대놓고 벌인 이전투구 속에서 괴물이 잉태될 것이라는 걸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그런 무책임한 위선자들에게 공천심사를 맡긴 정당이 싫었고, 그런 정당이 추천한 인물도 싫었다. 진절머리가 났다. '누구만 아니면 된다', ' 설마 그 누구보다 못 하겠나'는 극단적인 혐오감을 지우기 위해서라면 독약이라도 마실 심정이었다.

급기야 시민들은 검증도 안 된 무소속을 익산시장으로 선택했다. 괴물 아니고는 보여줄 수 없는 몰상식과 비정상의 폭주를 허락한 것이다. 익산시민들은 무려 1년 4개월 동안 도탄에 빠져 허우적여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익산을 등졌다.

시민들은 발등을 찍었다. 그 후유증은 쉬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최악의 선택지를 들이밀었던 책임자들은 모두 오는 4.13선거 주자로 이름을 올렸다. 혹자는 중진의 힘을 강조하고, 혹자는 세상을 바꿀 진보를 말한다. 또 혹자는 권토중래를 도모하지만 누구에게서도 책임지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더구나 한 지붕 아래서 자중지란을 일삼았던 그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더민주당, 국민의당, 혹은 국민의당 내부의 천정배 파와 안철수 파 등 계파로 나뉘어 각자 승기를 잡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한창이다. 그들의 본색이다. 그들이 당할 환란은 그들이 행한 악행에서 비롯하리라. 환란의 행태 또한 그와 같으리라.

당명은 자꾸 생겨나지만 사람은 그대로다. 끊임없이 이합집산 하지만 왜 그랬는지 답을 주지 못한 채 도로 그 당이 될 오늘의 분당을 바라보며 유권자들은 망연자실이다. 좌절과 절망감을 가중시키는 정치는 고개 돌린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창당이라는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지만, 여전히 그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칼,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칼

또한 이 지역의 정치는 날개가 허약하다. 그보다 먼저 몸집이 지나치게 크다. 방탕하고 나태한 결과다. 날아오를 수가 없다. 어쩌다 큰 바람을 탄다 해도 활강을 해볼 겨를도 없이 바람에 패대기 당하는 걸 피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6.4지방선거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당의 추천을 받고도 낙선한 인물은 스스로 현실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당초 출사표가 '흑색비방에 훼손된 명예회복'과 '벌여놓은 일 마무리'였건만, 느닷없이 익산시장 재선거가 아닌 총선으로 선회했다.

더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들어갔다. 익산시장 재선거 후보 추천 논의과정에서 자신을 배제하며 경거망동한 익산 갑의 현역 국회의원이자 6.4지방선거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을 탓하며,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자신도 알겠지만, 재선 정도 하면 8년 동안 약점도 생기고 적도 많이 생긴다. 더민주당 총선 후보들이 벌일 이판사판 경선 끝의 어부지리를 노리는지, 막판에 게임을 뒤엎을 히든카드를 서리서리 감추고 있는지, 그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배신' 혹은 그보다 더한 '배은망덕'이라는 꼬리표를 마다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더 나은 사람살이의 기술이 정치라 하건만, 그 도구인 정치인들은 인두겁을 쓰고 사람의 길 위를 활보한다. 꿀꿀 왈왈 쌔액쌔액, 그 소리만 들어도 정체를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익산 사람들은 진짜 '정치하는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다. 교묘하게 섞여서 냄새가 별반 다르지 않고, 그 소리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정치인들의 현란한 스텝과 쌀라쌀라에 취한 사람들조차도 꿀꿀 왈왈 쌔액쌔액 행진에 동참하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다. 비인간적 정치의 단면을 보건데, 그 어떤 막장 소설보다도 재미있다. 쌀라쌀라에 홀려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또 뭘 더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