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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공인배
김한길과 안철수가 '장렬한 전사'를 각오한 결기를 뿜어내고 있다. 여당에 개헌저지선 이상의 국회 의석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김한길의 야권통합론과 안철수의 거대 양당 구조 혁파론이 충돌했고, 양쪽은 배수진을 쳤다.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광야 끝에서 바다를 등지고 성전(聖戰)을 부르짖는 사내들의 포효가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코앞에 닥친 총선 정국이다. 김종인의 통합 제의를 덥석 물어버린 김한길은 미적거릴 틈이 없는 입장이었다. 반면, 김종인의 통합논의 제의를 당론에 붙이기도 전에 '비겁한 정치공작'으로 매도해 버렸던 안철수의 입장에선 김한길의 주장은 단번에 진화해야 할 불길. 안철수의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과 인재영입의 한계, 교섭단체에 한참 미달되는 정당 구조 등 그 어느 때보다 인화지수가 높은 실정이었다. 무엇보다 안철수는 당내 토론에서 타협 불가의 독선으로 일관 할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기묘한 지형에 처했다. 그 자신이 불과 넉 달 전에 주창했던 '통합적 국민저항체제'에 지금의 '독자 승부론'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패러독스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야권통합이 이미 익숙한 실패의 길일지라도, 폭주하고 있는 퇴행적 새누리당이 헌법을 고칠 수 있는 의석을 차지할 경우 식물야권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훨씬 커 보이는 시점이다. 이 나라 정치의 양당 구조를 깨려다가 안철수 자신을 포함한 야권 전체가 부존재 선고를 받는 4.13을 맞이할 공산이 높은 끔찍한 상황이다. 특히 안철수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자신이 더불어민주당을 박차고 나온 명분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친노그룹이 일선에서 물러났고, 문재인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안철수의 요구가 전폭적으로 관철된 것이다. 더민주당을 정상화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비상체제의 수장이 통합을 제의했다. 게다가 김종인 역시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다. 이렇듯 분열을 주도하는 행보보다 돌아가야 할 명분이 전방위적으로 크다. 적으로 둘러싸인 광야에서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안철수의 카미카제 선언에 담긴 명제는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그의 선언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 헤게모니를 포기하지 못하고 오직 대통령 후보를 지향하는 개인적 욕망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뜻을 함께하는 정치적 본류이지, 적의 소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귀환은 힘을 합쳐 탈선 여당의 독주를 저지하는 당위를 따르는 길이다. 그렇다고 안철수가 보이는 지금의 태도를 실리에 치우친 정치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하고, 그 힘은 정권에서 나온다. 정치란 마땅히 집권을 지향한다. 명분과 실리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명분'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이기에, 추구하거나 고수하는 측면에서는 하나의 '실리'다. 또한 '실리'도 '명분'이 없다면 사회적으로 설 자리 없다. 추구하는 쪽의 그 실리 자체가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듯 명분과 실리는 상호 보완적인 공존의 가치다. 그런 맥락에서 안철수의 실리추구는 명분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 지나치게 실리 쪽으로 치우치면 명분을 잃게 된다. 그 정치인의 기회주의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이 국민들의 눈앞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해체수순 밟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의 패인은 '명분 상실' 정치행위란 명분과 실리를 조화롭게 선택하는 발로이고, 정치란 한사코 명분을 앞세워 실리를 부산물로 취할 때 존재의 가치를 발한다. 그렇기에 정치인은 한사코 명분을 추구해야 국민들의 온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은 기로에 섰을 때 사사로운 이익을 놓치거나 잃더라도 공의로운 것을 선택한다. 최대한의 실리를 얻으려고 하더라도 명분을 유지해야 하며, 그 접점을 찾아내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긴장은 저절로 생명을 유지하는 자율신경계의 작동과 같은 정치인의 조건이다. 안철수의 패착은 정치인이 명분을 추구하지 않으면 실리도 놓치게 된다는 것을 간과한 지점이다. 그가 광야에서 죽었을 때 우리 정치사에 남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죽음을 걱정하는 사람이나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사람은 극히 제한적인 실정이다. 그의 말마따나 '거대 양당'이 인적쇄신에 사활을 걸 때, 양당이 퇴출시킨 인물이나 양당에서 추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들을 영입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것은 너무나 뻔뻔하다. 국민의당을 등지는 국민들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허탈해 보이는 까닭이다. 안철수 그 자신의 지지율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국민의당 내부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갈 명분이 극대화되는 변곡점을 목전에 두고 아우성이 일었다. 탈당의 죄를 사함 받고, 자기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다. 그들은 적어도 명분을 앞세워 실리를 챙기려는 정치인들이다. 돌이켜 보면, 안철수는 두 차례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그 과정에서 명분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실리만을 좇는 의도가 두드러졌던 탓이다. 그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기업인이었지만, 정치인이 된 뒤로 정체성을 잃었고, 혁신 내용이 빈곤했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도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다. 아무튼 안철수에게는 다행한 일인지 모르지만, 양당의 통합은 시간적 제약과 이해의 충돌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김종인의 통합제의와 김한길 등의 맞장구는 국민의당에 치명상을 입혔다. 국민들은 앞서 수차례의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귀결됐던 '도로 민주당'의 데칼코마니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미 국민들에게 다시 당명을 버리고 통합할 정당으로 인식된 마당에 무슨 경쟁력이 있겠는가. 안철수가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뜻과는 무관하게 양당의 통합이 기정사실화 됐다는 점이다. 안철수의 최선은 자업자득의 상황을 수용하고, 전면적인 야권연대를 통해 새누리당의 폭주를 저지한 뒤 재기의 발판을 노리는 길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명분을 얻어야 실리도 얻을 수 있다. 그런 기반 위에서만이 민주당이 구축해 온 역사적 내구력에 맞설 동력을 얻을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