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인간이 신이 되고 인간의 역사는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인가.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불러 온 모든 담론들의 끝에서 십중팔구 만나게 될 질문이다. 이는, 세기의 대결을 준비한 구글이 단순히 컴퓨터와 인간의 연산능력 비교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직관의 겨루기를 의도한 데서 비롯한다.

바둑판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는 무려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보다 많은데, 알파고는 유사 이래 바둑기사들이 만들어낸 명국의 기보를 죄다 학습하고 경우의 수를 줄여 최선의 수를 선택하는 인공지능이다.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알파고의 정책망과 신경망은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이루어져 있고, 1,000개의 서버를 활용한다. CPU 한 대 당 1초에 1,000회 이상 시뮬레이션을 하며, 한 수의 착점 값을 찾는데 1,000개의 서버가 동원된다.

알파고가 천년의 기보를 외운 배경이며, 특정 상황에서 프로기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머신러닝을 통해 패턴을 학습 할 수 있었던 기술의 실체다. 이세돌은 수적으로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1,202명의 프로기사를 합친 인공지능이고, 슈퍼컴퓨터와 맞먹는 연산능력을 지녔다.

보유한 정보의 양과 판단의 속도만을 본다면 처음부터 이세돌의 승리가 불가능한 대국이었다. 다만, 세기의 대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세돌의 상상력에 기대를 걸었다. 천년의 바둑사에도 없던 이세돌의 신수를 과연 알파고가 맞받아칠 수 있을까. 거기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이세돌은 실력 면에서도 세계 최강이지만 자기만의 독창적인 기풍을 지녔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를 흔들어 전투를 유발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에서 살아 나온 확률이 높은 기사였기에. 구글 측도 그런 이세돌류를 높이 사서 대전을 기획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에서 인공지능의 결함을 발견할 평가전 대상으로 이세돌이 최적의 기사였던 것이다. 이세돌이 총 5국 가운데 제4국을 승리하자 그런 기획의도와 사람들의 기대는 충족됐다. 인공지능은 확실히 자신이 모르는 수를 만나자 착오를 일으켰고 연거푸 떡수를 두다가 자멸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었다. 사실 대국이 결정되고 이세돌이 3국 연속 패하는 것을 보면서도 놀랍지 않았다. 사람들은 막연하지만 사람이 계산기를 이길 수 없듯이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6년 3월 13일 이세돌은 알파고를 꺾은 것이다. 그의 승전보는 바둑계는 물론 인류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이세돌이 바둑판을 벗어나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는 한 축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제5국에서 다시 기적을 보고 싶어졌다. 이세돌도 7집반의 덤을 안고 둬야 하는 흑으로 대국하고 싶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세돌은 5국에서 졌다. 가장 이세돌스러운 대국을 주도했지만, 승률을 극대화하는 수를 고르는 알파고의 논리는 제4국에서처럼 헝클어지지 않았다. 5국이 끝나고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알파고의 또 다른 강점인 차가움이었다.

이세돌은 기력을 떠나 자기를 과열시키는 감정을 제어해야 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또 한 번의 패배를 안게 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렇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아직 프로토타입(시제품)에 불과한 알파고는 기계적인 보강과 학습을 통해 직관력을 높일 것이다.

알파고의 성장 속도는 어떤 기사보다 빠르고, 이내 천변만화의 바둑판 위에서 또는 인간의 사고 범주 안에서 전지전능한 신이 될 것이다. 다만,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고독하고 담대한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승을 거두며 '아직은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 이세돌은 아름답다.

인공지능의 침공, 그러나 인류는 평화롭다

그러나 치열했던 승부 저편에서 차가운 눈이 이세돌의 도움으로 내일의 문턱을 넘는 인류를 응시하고 있다.

알파고가 이겼지만, 이세돌도 이겼다. 인류는 오늘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알파고는 더 편리한 세상을 이끌고, 인류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갈 것이다.

알파고는 몇 달 안에 스마트폰에 들어갈 것이다. 머지않아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로 인간과 소통하는 인공지능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는 의료와 금융 등 사회 전 영역에 침투할 것이다.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보를 소화하고 제공하며 인간과 공존할 것이다.

곁살이를 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은행원이 되고 의사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현실화 됐다. 아이비엠의 인공지능 왓슨은 지난해 미국 암 전문병원에 암진단 수련의로 투입됐다.

사회 곳곳에서 먹고 살아갈 노동을 빼앗긴 인간들이 도태되는 가운데, 장기나 신체 일부를 인공으로 교체하던 인간들의 사이보그화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인간이 뇌를 인공지능으로 바꾸는 그날, 생물과 무생물이 결합된 자기조절 유기체 시대도 막을 내리고 종국에 알파고는 새 인류가 될 것이다. 생로병사의 나약한 윤회의 틀에서 벗어날 것이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낭만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는 현생 인류는 가차 없이 제거될 것이다.

새 인류에게 영원불멸의 상태를 부정하는 현생인류는 그 무엇보다 위협적인 존재일 것이므로.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는 완전히 지워질 것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억지력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제어불능 상태가 되었을 때 대처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나의 이런 위기의식은 과연 기우의 발로일까. 인공지능의 치밀하게 계산된 평화적인 침공에 우리는 무방비 상태는 아닌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