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범죄학박사

살다 보니 가까운 사이일수록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더군요. 가까운 사람의 농담 섞인 말, 격식 없는 행동으로 상처를 입을 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곤 합니다. “당신과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가?”

한겨울 숲속에서 추위에 떨던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꼭 안아 온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몸에 난 가시 때문에 안으면 안을수록 상대를 아프게 했고 서로 떨어지면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두 마리의 고슴도치는 안았다 떨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서로 온기를 유지하면서도 아프지 않은 거리를 찾았고 그제야 편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고슴도치 효과’라고 합니다.

서로 온기를 나누는 두 마리의 고슴도치처럼 가족, 연인, 부부, 친구, 그 어떤 사이든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심리적 거리’입니다.

심리적 거리는 첫째, 여유를 의미합니다. 역설적으로 한 단계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세탁기에 빨랫감이 꽉 차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적당한 여유와 빈틈이 있어야 물이 들어갈 공간이 생기고 비로소 빨래를 할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친밀함과 보살핌을 느끼면서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의 자율성을 누릴 수 있는 적당한 거리, 이 거리를 찾는 것이 관계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추구하되, 다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거리. 이 거리를 유지할 때 나와 타인은 모두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심리적 거리’는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특효약입니다. ‘불가근불가원’은 보통 나쁜 사람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의미에서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는 고사성어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진짜 의미는 거리감을 잘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오래가려면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호불호가 극명한 사람은 이런 감각이 필수적입니다. 모두와 같은 친분일 순 없습니다. 이걸 눈치채지 못하고 가까워지길 원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너무 들이대면 부담을 느껴 관계가 깨질 수 있습니다.

반면 친해지길 원하는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거리를 두면 소원함을 느껴 남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운전할 때 차간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끼어드는 차가 많아지고 너무 가까우면 사고 나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친구도 가족처럼 친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몇 년을 만나도 몇 시간 전에 만난 사람과 비슷한 친분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서로 괜찮은 적정거리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셋째, 가까운 가족이야말로 더 의식적으로 심리적 거리두기를 통하여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부모는 대개 ‘아이의 인생은 곧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의 과제까지도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떠안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늘 아이만 생각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인생에서 ‘나’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이는 독립적인 개인으로 부모가 바라는 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과 타인의 과제를 떠안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여러분이 만약 살아가는 데에 고민과 괴로움이 있으시다면 먼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경계선을 정하고, 타인의 과제를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짐을 덜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화창한 날 잔디밭에 누워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봅시다. 지금 이 자리가 내 인생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와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둡시다. 현악기의 줄들이 한 곡조를 울리면서도 그 줄이 따로이듯이, 그런 떨어짐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라는 칼릴 지브란의 시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