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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블랙홀

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사단법인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진리는 하나다. 그 하나인 진리를 둘로 쪼개 본 것이 음과 양이다. 둘로 쪼갠 이유가 있다. 우리가 보이는 이 우주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음과 양은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인 셈이다. 그걸 우주의 진리라 한다. 하지만 우주에 대해 더 깊숙이 들어가면 막막하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주는 미지의 세계라 했다. 그러나 인간은 영리하게도 이 미지의 세계를 과학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우주에 기본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을 설명하는 것으로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를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두 개의 가장 근본적인 이론이다. 즉, 우주에는 상대적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 우주에 검은 구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현상이 발견했다. 이 검은 구멍이 바로 ‘블랙홀(black hole)’이다. 2019년 4월 11일 인류가 최초로 화상 촬영도 했다. 블랙홀(Black hole)은 표면적이 0인 점으로 무한히 수축하는 천체를 말한다. 특이점을 중심으로 사건의 지평선을 형성하다 보니 암흑의 구체로 보여서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랙홀은 한마디로 표면 중력(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이 엄청나게 큰 천체다. 그래서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 등 그 어떤 것도 여기서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천체를 바라보면 어둡게 보이는 것이다. 원자만큼 작은 원시 블랙홀, 항성이 연료를 다 태우고 압축해 만들어지는 항성 블랙홀, 태양 질량의 최소 수십만 배 이상인 초대질량 블랙홀로 나뉜다. 은하계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인류는 이 블랙홀의 별명을 ‘우주의 괴물’이라 했다. 왜 그랬을까.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강해 빛은 물론 시간과 공간까지 후루룩 마셔버리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블랙홀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블랙홀은 시간과 공간까지 뒤엉켜버리는 곳이라 “자연의 법칙이 피해야 할 저주”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구가 속한 은하계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가 안드로메다이다. 그 중심에서 블랙홀이 확인됐을 때 과학자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나중에는 지구가 속한 은하의 중심에도 블랙홀이 있다는 게 밝혀지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구가 ‘우주의 괴물’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셈이니 얼마나 놀랐을까. 블랙홀은 정말 괴물일까.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빨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뿜기도 한다고 했다. 빛마저 마셔버리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이 동시에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는 거다.

2014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인터스텔라’가 있었다. 점점 황폐해져 가는 지구를 대체할 인류의 터전을 찾기 위해 새롭게 발견된 웜홀을 통해 항성 간(Interstellar) 우주여행을 떠나는 탐험가들의 모험이 연대기 순으로 그려진 영화다. 영화에서 블랙홀은 우주의 미스터리, 중력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등장한다. 있음과 없음, 존재와 비존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변되는 현대 과학의 막다른 골목을 뚫고 나가는 키워드로 말이다. 아직도 우리 인류는 블랙홀에 대해 잘 모른다.

동양에선 옛날부터 거대 천체(天體)를 대우주, 사람을 소우주라고 불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둘의 속성이 통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럼 우주에도 블랙홀이 있으니 사람에게도 블랙홀이 있지 않을까? 필자는 그게 ‘숨구멍’이라고 본다. 숨구멍은 인간을 존재케 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구멍이다. 빨아들이는 들숨도 진리고 내뱉는 날숨도 진리다. 빨아들이기만 하면 숨이 막혀 죽는다. 그래서 반드시 내뱉어야 한다. 생명을 살리려면 어떡해야 할까. 들숨과 날숨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그게 이어질 때 우리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블랙홀은 집착이라 할 수 있다. 집착은 고집이다. 한군데 집착하다 보면 병폐가 생긴다. 그래서 그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음과 양이 있는 것이다. 한쪽에 머무를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지속 반복하면서 우주는 물론 인간의 생명도 유지되는 것이다.

공기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블랙홀을 통과한다. 가령 오후가 되자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툭 솟는다. 블랙홀에서 생각이 튀어나온 거다. 이게 창조이다. 라면을 하나 끓여 먹는다. 배가 빵빵해진다. ‘아이, 배고파’ 하던 생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어디로 갔을까? 블랙홀 속으로 ‘쑤욱’ 들어가 버린 거다. 이게 파괴이다. 그게 블랙홀의 날숨과 들숨이다.

인간의 감정도 하나씩의 별이다. 블랙홀에서 나와 나름의 궤도를 돌고, 다시 블랙홀로 들어간다. 이 세상에 블랙홀로 돌아가지 않는 감정이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감정의 파괴를 거부한다. “어떻게 이 아픔과 이 고통을 잊을 수 있어?” 블랙홀로 들어가는 별을 가로막고 붙들고 있는 것이다. ‘나의 고집’이란 강력한 중력을 만들어서 블랙홀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픔과 슬픔의 별이 10년이든 20년이든 궤도를 그리며 내 안을 떠돌게 한다. 결국, 소우주는 슬픔의 우주가 되고 만다.

알면 알수록 블랙홀은 ‘우주의 괴물’이 아니다. 오히려 블랙홀이 있어서 우주의 숨통이 트인다. 현대 과학은 아직 블랙홀의 기능을 잘 모른다. 그래도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그리 검기만 한 건 아니다(Black holes ain’t so black)”고 했다. 무작정 집어삼키는 암흑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파괴의 통로가 창조의 통로이다. 들숨의 통로가 날숨의 통로이다. 잘 창조하려면 잘 파괴해야 한다. 파괴가 이미 창조의 한 과정이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희로애락(喜怒哀樂)의 별이 생겨나고, 희로애락의 별이 사라지고. 그래야 우주가 숨을 쉬는 게 아닐까. 블랙홀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