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훈(왕궁면장)

  삼남대로의 남쪽으로 향하는 왕궁길은 천호산 줄기 쑥고개에서 시작된다. 천호산의 한 줄기가 구릉을 타고 삼례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쑥고개 ? 왕궁저수지 ? 금광(능지울) ? 송선 ? 통샘 ? 살포재 ? 삼례 경계까지 총 12km 구간이다. 이 길은 쑥고개에서 금광마을의 보석박물관까지 호반로로 이어지고, 금광에서 통샘까지는 송선로이며 통샘에서 삼례까지는 우주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춘향전』 중 노정기(路程記)에 왕궁을 지나는 전라도 사투리 대사가 나온다.“…쑥고개 어른 건너 능지울 통삼리며 삼이 가리내 전주감영 들어가서 사또게 연명하고….”통삼은 통샘을 삼이는 삼례(參禮)를 가리킨다. 왕궁의 삼남대로는 옛 지명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주민들에게 어려서 불렸던 오랜 지명이 지금도 친숙해 보인다. 여산과 왕궁의 경계인 쑥고개에서 연정마을 옆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왕궁저수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원래 옛길은 저수지 계곡을 가로질러 금광마을로 연결되어 있었다. 1931년에 저수지가 신축되면서 옛길이 끊어졌다. 익산의 저수지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저수지 서쪽 시대산 기슭 수변을 따라 왕궁 중앙도로가 신설되었다. 시대변화에 따라 길이 변형된 셈이다.
  왕궁저수지 제방 위 언덕에는 저수지 축조를 기념하여 지은 함벽정(涵碧亭)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 평면의 정자 건물로써 1937년에 완공하였다. 현판은 남송 대학자 주희의 시구 중 '일수방함벽 천림이변홍(一水方涵碧 千林已變紅) 즉 ‘한 줄기 강물 막 푸르러지려니, 많은 수풀 이미 붉게 바뀌었구나.’를 인용해 당호를 지었다. 주변 천호산과 시대산, 저수지의 푸른 물결, 왕궁 뜰과 왕궁천의 경관이 수려한 조화로운 정자이다. 함벽정에 오르니 시보다 갈증 해소를 위한 막걸리 한잔이 절로 그립다.
  금광마을은 고려 때부터 금광원(金光院)이라는 국영 여관이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백제 때 학현산성이 인근에 있어서 군사적 요충지였고, 전북 내륙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 행정 개편 때 왕궁면이 탄생하면서 행정과 치안 중심지 역할을 했다. 최초 왕궁면사무소와 헌병파출소가 마을 사거리 부근에 있었다.
  금광은 능줄 또는 산수남이라고 부른다. 능줄은 능지울이라는 지명으로 『춘향전』에서 언급되어 있다. 능지울이라는 지명에서 능은 큰 무덤 또는 언덕을 의미한다. 또 다른 지명인 산수남이 산소 너머의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금광에서 삼례 쪽으로는 천호산과 학현산의 산줄기가 낮은 지대를 타고 내려간다. 그 첫 마을 송선. 옛 이름은 ‘문두두르미’였다고 한다. 문을 두드린다는 뜻이다. 경로당 맞은편에 사당이 있었다. 고을 수령이 사당 창문을 두드리고 가면 한양에 가서 임금한테 좋은 상을 받고 온다고 해서 갈 때마다 문을 두드리고 갔다 하여 ‘문두두르미’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 주민들은 ‘문드레미’라고 부른다. 사당 옆에는 지금도 수백 년 된 감나무가 있다. 마을에서는 이도령하고 성춘향이가 그 나무에서 쉬고 갔다고 전해져 온다.
  역기와 통정. 두 개 마을은 호남고속도로 경계에 있다. 역기는 완주군이며 통정은 왕궁면에 있다. 역기(驛基)는 고려 우주현 때 역관이 있어서 유래되었다. 역터라고도 부른다. 관청의 관아들이 역마를 갈아타던 곳으로써 사람과 말의 중계를 맡아 주는 일을 했던 곳이다. 삼남대로의 큰 고을이었던 여산과 삼례의 중간 기착지이다. 또한 동쪽 봉동으로 전북 산간지방과 경상도로 가는 길목이라서 자연스럽게 역이 자리 잡은 듯하다. 사람들이 송선마을에 옹기그릇을 사러 오면 역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은 완주 제2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송두리째 없어졌다.
  통정(桶井)은 우물 위를 통으로 짠 샘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통샘이라고도 부르고, 『춘향전』에서는 통삼으로 나온다. 마을에 우물터가 남아있다. 이곳에 주막집이 성행하였고 한양에 오가던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역기와 지척의 거리에 있다. 잠은 역기에서 술은 통정에서 마시며 쌍두마차를 이루었다. 현재 여섯 가구밖에 없고, 신기마을에 편입되어 있다. 통정 산모퉁이 길옆 바위에 선정비로 추정되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정부터 삼례나들목까지는 옛길이 잘 드러나 있다. 아마 호남고속도로가 삼남대로 좌우를 관통하면서 그 주변 지역이 개발에 한 발 짝 비켜서며 살아남은 것 같다. 이 길은 우주로로 명명되었다. 우주(紆州)라는 지명은 고려 때 왕궁과 봉동?삼례지역이 우주현이라서 사용되고 있다. 우주황씨들은 고려 초에 사족의 후손으로 시조 황보민부터 조선 중시조 황거중이 낙향하여 장암(현 장중)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무렵까지 후손들이 약 5백 년 동안 세거하였다.
  우주로를 경계로 익산과 완주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진다. 호남고속도로와 익산장수고속도로 JC 부근에 이르면 살포재마을이 있다. 화살이 떨어지는 언덕이란 뜻이다. 살은 화살이라는 뜻이고 보통 과녁은 높은 언덕에 세운다. 과녁 있는 곳을 살포재라 했다면 화살이 떨어지는 언덕을 가리킨다. 주민들은 삼남대로를 지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넘을 때 힘들어서 살포시 넘어가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1980년대 지도에도 살포제라는 소류지가 표기되어 있어서 옛 지명이 이어져 내려왔다.
  살포재에는 두 가구가 살고 있으며 사덕마을에 편입되었다. 이 마을에는 사덕유적이 있다. 익산장수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2003-2005년에 걸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주구지, 수형 유구와 삼국시대 고분, 토기, 가마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살포재에는 우주로가 뚫리면서 옛 고개가 없어졌다. 남쪽 고속도로 위 다리를 건너면 한센인 정착농장에 들어선다. 이 농장의 유래는 소춘원(蘇春園)의 한센인들이 1949년에 구덕리 오봉산에 터를 잡으며 시작되었다. 이 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와 샘, 다섯 명의 정승이 날 명당 터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소나무와 숲이 우거져 있는 황무지였고 낮에도 도둑이 출몰했다는 강대굴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 산자락의 익산농장과 신촌농장을 지나면 완주 삼례읍의 삼례나들목 부근에 이른다. 왕궁의 삼남대로 구간은 여기서 안녕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