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 약사

오늘은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자기가 써 온 작품을 읽으면 여러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어 준다.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문제점을 지적하고 격려도 해주는 모임이다. 내가 이 단체에 가입한 지는 2년 남짓이다.

처음 글을 써 갔을 때다. 수필가 선생들 앞에서 내 글을 읽고 비평을 받아본다는데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본지도 오래려니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란! 아마 목소리가 떨렸을 것이다.

떨림, 얼마만인가. 십 오육년 전이다.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여약사회장이 모임 때 나의 시낭송회를 계획했으니 준비해 오라고 했다. 뜻밖의 일이어서 사양했다가 새 회장이 뭔가 특별하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이런 발전적 시도는 그 회장이 처음이었다.

시를 써 보겠다고 OO대학 사회교육원 문예창작반에 다니고 있었지만, 약사들 앞에 내놓을 만한 시는 없었다. 입학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써내면 선생님이 손을 봐줬다. 동료들의 작품을 같이 읽고, 또 쓰고 이렇게 해서 시가 하나씩 모아질 때 큰 행복을 느끼고 부자가 되어 갔다.

꽤 시 부자가 된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읽어보니 수준 미달이었다. 최고로 폼을 잡고 찍은 사진이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촌스럽듯이. 명화나 명시는 세월이 흐를수록 감동이 더하는데, 언제쯤 나도 그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며 써놓은 시들을 훑어보았다.

40~50분 씩 걸어 다녔던 초등학교시절 아침마다 부뚜막에 신발을 녹여주던 아버지의 따스함을 생각하며 쓴 ‘겨울단상’이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어린 약사들이 공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기준으로 세 편을 골랐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호흡을 조절하며 읽어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 낭송회 같은데도 가보고 그랬을 텐데. 근무 중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시 한 번 들어볼래?”

밑도 끝도 없는 내 행동에 동생이 마구 웃었다. 영 맛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편 앞에서까지 열심히 연습했다. 남편이 하모니카로 배경 음악으로 깔아 주었다.

그날 모임은 참여율이 높았다. 내 차례가 되었고 최대로 멋을 부려 자작시를 낭송했다. 박수가 터지고 아쉽다며 하나 더 해달라고 야단이었다. 내 자리로 돌아오니 후배가 “언니 멋지다. 책 내어도 되겠어.”하며 띄워주었다. 그 때 많이 떨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립서비스가 흔전만전이다. 나부터도 그렇다. 내 식구가 아니면 들어서 좋을 말만 한다. 그만큼 진실하고 가까운 사람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지만 혼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많은 지적을 받았다. 띄어쓰기부터 철자법, 단어 선택, 중복되는 표현 등, 빨간 줄이 죽죽 그어지고 심지어는 반절 이상은 없어도 될 글이라는 얘기까지.

창피하고 불쾌한 감정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화가 나고 기분도 상하고 글 쓰는 재주가 없다는 생각에 많이 의기소침 했다. 삶에 활력을 얻고 아름답게 살려고 시작한 글쓰기인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많았다.

며칠 뒤 여러 선생님들이 지적한 부분을 정리해 다시 써 보았다. 원래 글보다 조금 나아졌다. 기뻤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려주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매번 글을 써가고 동료들의 지적을 받으며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떨지 않는다.

칭찬만 받다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실수나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2년여 동안 예방주사를 맞아서 이제는 맷집도 제법 생겼다.

잘 쓰려고만 하니 글쓰기가 쉽지 않았다. 내 삶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니 조금 수월하다. 잘 살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작가가 독자보다 많은 요즘이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글을 읽으면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좋겠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직은 살만함을 내 글에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글을 써 가지고 모임에 나간다. 단단히 맞을 준비를 하고서. 진심어린 지적인데도 많이 받고나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아직도 멀었다는 뜻이다. 언제쯤이나  즐기면서 매를 맞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