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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와 익산

황만길 지역진흥원장

어릴적 강렬하게 뇌리에 인식된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오류나 거짓이라해도 수많은 대중에게 각인된 기억은 무의식 중에 진실이라고 믿어 튀어나올 때가 많다. 그 중 선명한 기억은 고대 그리스의 대표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관한 기억이다.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아테네는 민주국가고 스파르타는 독재국가라는 인식, 아테네는 선이고 스파르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이렇게 된데는 체육시간과 역사시간에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어린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국가체제나 제도 및 운영시스템이 전혀 달랐던 두 도시국가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두 국가의 형성과정, 역사적 배경보다는 체제와 제도 자체만 놓고 교육한 결과 그런 이분법적인 인식이 심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일상생활이나 교육속에서 악의 대명사 또는 부정적 요소의 대명사로 스파르타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이 두 도시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국가형성과정, 지도자들의 정신적 통치이념과 주변환경, 지리적 여건 등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을 무시하면 두 국가에 관해 제대로된 인식을 가질 수 없다. 스파르타는 흔히 스파르타식으로 인식되는 독재국가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다. 스파르타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파르타의 국부로서 정치체제와 국가지도 이념을 설파하고 제도화한 리쿠르고스를 이해해야 한다.

리쿠르고스는 국가의 유지발전을 위해 지도자의 도덕적 책무를 강조하는 한편 백성들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철저히 복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고 국가경영이념을 만들었다.

독재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지도자의 도덕적 책무를 무엇보다 강조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이상국가로 여길만 했다. 리쿠르고스에 의해 모든 체제가 구축된 스파르타는 그리스국가 중 유일하게 로마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1,000년여의 세월을 유지했다.

고대국가가 1,000년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고 그 유래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리쿠르고스는 스스로 권한을 제한하고 왕권을 축소시켰다.

이에 의거 테오폼푸스왕은 행정담당장관 제도를 도입해 5인의 장관과 함께 정치를 했다. 왕권약화가 걱정된 왕비가 “왕권약화가 걱정된다”고 말했을 때 그는 “걱정하지 마시오. 그 덕분에 스파르타는 더욱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오”라고 답했다. 이 말은 적중해 1,000년여를 지속하게 된다. 스파르타는 두 명의 왕이 상당기간 다스렸는데 중요 결정은 두 왕의 합의와 함께 상원의 결정이 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결정은 두 왕의 권력과 동등한 권한을 지녔던 28명으로 구성된 상원의 합의나 표결이 있어야 했다. 이런 권력분산 노력 외에 귀족한테 집중된 토지의 균등재분배, 금은 사용의 자제를 통한 사치배격, 공동식사를 통한 금욕과 공동체 정신함양, 말보다 실천을 중시했던 실용정신을 강조했다.

또한 특정국가와 여러차례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해 국력낭비와 전쟁폐해 및 전략전술 노출을 막았다. 심지어 리쿠르고스는 자신이 만든 법률과 제도, 국가지도이념의 유지를 위해 델포이신전에 가서 기도한다며 ‘자신이 돌아오기전까지 법과 제도, 이념을 고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도자들에게 받아낸다. 그런 후 그가 선택한 길은 곡기를 끊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영원히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유언은 5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스파르타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시점은 공교롭게도 리쿠르고스의 유언이 지켜지지 않고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이 만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스파르타의 지도자들은 부를 축적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토지를 자신들의 소유로 삼으면서 리쿠르고스의 유언을 망각했다. 그 결과 명맥을 유지하다 멸망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리쿠르고스의 법과 제도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국가의 안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처럼 부패하지 않음으로서 도덕적 책무를 500년이상 유지했다.

대한민국도 그렇지만 익산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와 도덕적 타락현상, 그리고 이권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패거리 정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지분나누기가 팽배했다는 말들이 많다.

죽음으로써 국가의 발전과 백성의 안위를 지켰던 지도자 리쿠르고스를 다시 생각하며 초야에 묻인 채 나약한 지식인이 될 나를 탓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