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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복

윤복순/윤약국 약사

날씨가 좀 풀린듯하다. 여자들 윗옷의 길이가 짧아지는가 싶더니 색깔도 밝아져 가볍게 보인다. 봄이 오고 있다. 점심나절 한가하게 바깥 풍경을 즐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받으니 작은 언니다.

“지금, 아웃도어 매장에 가는데 니 것도 하나 사려고.”

“언니, 나 옷 많아. 내 것은 사지마.”

“니 형부가 니 것도 사자고 한다.”

“그럼 겨울 걸로 사줘. 지금 세일 많이 할 거야.”

내 옷은 모두 구식이다 . 뚱뚱해지면서부터 옷 입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옷을 입어도 폼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편한 옷이 좋았고 비싼 옷을 입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입어도 예쁘지 않은데 옷 사는데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화장도 안한다. 화장을 해도 안했을 때나 똑같은데 뭣 때문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차라리 안 하고 안 예쁜 게 낫지. 자연스럽고 수더분하고 편안함이 가장 나답다는 것을 오래 전에 터득했다.

이런 내 성격 때문인지 사람들이 옷을 준다. 유행이 지났다고, 자기에게 크다고, 원단이 좋다고, 버리기 아깝다고 등등. 오리털파카도 3개나 되고 점퍼나 조끼도 많다. 모두 얻은 것이다. 이러다 보니 내 옷은 조금 크고, 색상이 좀 안 어울리고, 디자인도 구식이고 그렇다.

어차피 산에 다닐 때 입는 옷이니 따뜻하고 편하면 된다. 요즘은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어찌나 멋지게 하고 다니는지 모른다. 등산복이 평상복보다 훨씬 비싸다. 비싼 옷을 입으면 산행이 불편할 것 같다. 흙이라도 묻을까 조심스럽고 잠깐 앉아 쉬기도 신경 쓰일 테니까.

나는 바지도 요즘 유행하는 딱 붙는 것은 못 입겠다. 그래서 몸빼 같은 바지를 입고 산에 간다. 그것도 얻은 것이다. 유명 메이커 것인데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포도밭에 갈 때 입으라고 공주성<兄>이 준 것이다. 따뜻하고 편안해 즐겨 입는다.

며칠 전 친정식구들이랑 야미도의 큰산에 올랐다. 내 모습을 보고 동생이 한마디 했다.

“약국 누나는 보살스타일이네.”

내 바지 같이 통 넓은 것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

언니가 또 전화를 했다.

“야, 105는 없다.”

“언니, 잘됐네. 그게 사지 말라는 뜻이야.”

나는 비싼 등산복을 입고 싶은 생각이 없다. 수성펜 좋다고 수능시험 잘 보는 것이 아니듯 옷 좋다고 등산을 즐기면서 하는 것 아니다. 나는 구식옷, 남들이 입다 준 옷을 입고도 누구보다 재미있게 그리고 감사하며 산행을 즐긴다.

먹는 것도 유난을 떨지 않는다. 유기농이니, 무농약이니, 뭐가 몸에 좋다느니 해서 그런 것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먹든 맛있게 기분 좋게 먹자는 주의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사람도 죽이는 세상이기에, 나는 항상 마음 잘 먹자는 생각을 먼저 먹는다.

언니가 또 전화를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녀 105를 찾았는데 녹두색이고 모자가 없어.”

“언니, 나 녹두색 안 좋아하거든. 다리 아픈데 그만 돌아다니고 없었던 걸 로 해. 마음만 받을게. 고마워.”

“봄옷으로 사면 안 될까?”

이미 봄옷들이 많이 나와 겨울옷은 들어간 모양이다.

우리나라 등산복이 너무 비싸다. 광고비와 비싼 임대료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비싸야 잘 팔리는 상술까지. 이런 거품에 나까지 일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길 바라고 있는데 또 언니 전화다.

“백화점에서 하나 찾았다. 겨자색인데 괜찮겠지? OOO야.”

“그 회사 옷 되게 비싼데. 세일도 잘 안하고.”

나는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이 편한데 형부는 안 좋아 보였는가 보다. 처제에게 요즘 옷 하나 사주고 싶은 형부의 마음을 받기로 했다. 언니의 전화로 한나절이 부산하고 행복했다.

나는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기에 충분히 넉넉하고 부자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남들이 다 입는 고급 등산복을 꼭 입고 싶었다면 살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분수를 지키며 진정한 내 그릇으로 살고 싶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아야 참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봄이 바로 옆에 온 듯하다. 모두 언니 형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