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경공(景公) 때 안자(安子)는 재상으로 이름이 놓았다. 안자가 왕의 명을 받고 형나라에 갔을 때, 형나라 임금은 안자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어떻게든 안자를 골려 주려고 신하들과 논의했다.

“좋은 수가 있습니다. 임금께서 안자와 같이 계실 때 제가 죄인 하나를 끌고 들어오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계교가 다 짜여졌다. 안자가 형나라 임금과 같이 앉아 있을 때 한 죄인이 포승을 한 채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게 누구냐” 형나라 임금이 물었다. “제나라 사람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느냐” “도둑질을 했습니다” 형나라 임금은 짐짓 놀라는 체하면서 죄인과 안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제나라 사람도 도둑질을 하는가?” 이에 안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강남에 귤나무가 있는데 제나라 임금이 그것을 강북에다 심게 했더니, 강북에서는 귤나무가 탱자나무로 변해 버렸습니다.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땐 도둑질을 하지 않는데 형나라에 오면 도둑질을 하게 되는 모양이니, 형나라 풍토가 그렇게 만드는가 봅니다.” 형나라 임금이 안자를 골려 주려 했다가 오히려 무안만 당했다.

그 다음에 안자는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초나라에서도 안자를 골려 주려고 큰 문 옆에 조그만 문을 만들어 놓고 안자에게 그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이 때 안자가 말했다. “개의 나라에 가면 개구멍으로 드나드는 것이 예의일 것이나, 나는 개의 나라에 온 것이 아니고 버젓한 사람의 나라 초국에 온 것이니 어찌 개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초나라 사람은 허둥지둥 큰 문을 열고 그리로 안자를 안내했다. 그리하여 초나라 임금을 만났다. “제나라에는 인물이 없는 모양이군” “제나라의 서울은 사방이 3백여 정보나 되며, 사람이 많아 옷 소매를 벌리면 채알을 친 것 같고, 땀을 뿌리면 비가 오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그러한 곳에 인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찌하여 그대와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단 말인가.” “제나라에서는 외국에 사신을 보낼 때 슬기로운 임금이 있는 나라에는 슬기로운 사람을 보내고, 못난 임금이 있는 나라에는 못난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옵니다. 저는 아주 못난 축이어서 초나라에 오게 된 것입니다.” 초나라 임금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