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사람 빙가빈(憑可賓)은 옛사람들이 차를 마시던 습관을 연구하며, 차를 마시기에 가장 좋은 상황을 열세가지로 정리했다.

그 첫째가 일이 없을 때이다. 세상일에 매이지 않고 유유자적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

둘째는 좋은 손님이 있을 때이다. 고상하고 뜻이 맞는 차 벗이 있을 때를 일컫는다.

셋째는 조용히 앉아 있을 때이다. 마음이 평안하고, 주위가 조용할 때를 이른다.

넷째는 시(詩)를 읊을 때이다. 시는 차 흥을 돋우고, 차는 시상을 준다.

다섯째는 붓을 쓸 때이다. 붓에 먹을 적셔 글을 쓸 때 맑은 차가 흥을 더한다.

여섯째, 한가로이 거닐 때이다. 고요하고 한적한 뜰을 유유히 건널 때.

일곱째, 잠을 청할 때와 일어날 때이다. 숙면하여 일찍 일어나고 오랜 꿈에서 깨어날 때를 말한다.

여덟째, 숙취에서 깰 때, 숙취는 해소하기 어려운데 차가 도움이 된다.

아홉째, 식욕을 돋우고자 할 때이다. 신선하고 입에 맞는 다과는 식욕을 돋워준다.

열째, 조용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을 때. 차실은 고아한 품격과 운치가 있어야 한다.

열한째, 깨달음을 가질 수 있을 때이다. 마음에 감응이 있고 차 삼매경에 빠질 줄 알아야한다.

열두째, 감상할 수 있을 때이다. 다도에 능하여 차의 색, 향, 맛, 모양을 느긋하고 세심하게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열셋째, 차 시중드는 아이가 있을 때이다. 차분하고 영리한 아이가 곁에서 차 시중을 들어주는 경우이다.

‘차’가 이러한 정신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지금의 명차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렀고, 갈증을 해소하는 수단에서 세심하게 음미하는 대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차를 음미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마음으로 맛을 느끼는 정신적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