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농업연구원장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해 전국 곳곳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볼라벤의 위력에 비해 피해가 덜 한편이라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을 소소한 피해까지 합하면 그 피해는 말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이번 태풍은 국민들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해하고 그 위력 앞에 충격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그 어떤 태풍보다 한반도를 스산하게 만들었다.

초특급 태풍으로 전망하면서 근심걱정도 많았고 실제 그 위력도 대단해 정전사태 빈발, 과수농가와 하우스 재배농가의 막대한 피해, 강풍에 의한 시설물 파손 등 전국 곳곳에 삭막하기 그지없는 상처를 주었다.

이 지경인데 뒤이어 올라온 태풍 덴빈은 많은 비를 동반하고 와 엎친데 덮친격이 되었다. 강풍에 이어 폭우까지 덮쳐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형국이 된 것이다.

태풍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농가의 복구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할 상황이다. 볼라벤의 피해를 수습하기 전에 덴빈이 곧이어 올라와 연이어 피해를 입히는 바람에 설상가상, 설상가설, 병상첨병, 화불단행의 형국이 되고 말았다.

눈이 오고 서리까지 온다는 설상가상, 눈이 온 뒤로 또 눈이 온다는 설상가설, 병들어 누워있는데 또 다른 병까지 찾아왔다는 병상첨병, 화가 홀로오지 않고 한꺼번에 온다는 화불단행의 표현으로도 부족한 형국이 된 것이다.

비슷한 사자성어로 전호후랑이 있다. 직역하면 앞문에 있는 호랑이를 막았더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말이다. 나쁜 일이 연이어 닥쳐옴을 비유하는 고사라 하겠다.

전호후랑의 원전은 전문거호(前門据虎) 후문진랑(後門進狼)인데 줄여서 전호후랑이라 한다. 명나라 문인인 조설항이 지은 역사서인 「조설항평사」에 등장하는 말이다.

중국 후한시대 4대 황제인 화제는 불과 열 살에 제위에 올랐다. 화제가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화제를 대신해 두황후가 두태후가 되어 정사를 주도하게 되었다. 외척인 두씨 일가가 전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외척의 시대가 된 것이다.

두태후는 권력의 힘을 알고 있었다. 이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옥사했기 때문에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 여기고 있었던 터에 어린 황제가 등극하자 자신이 직접 정사를 관장했다.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위해 두태후는 오빠인 두헌을 조정기밀을 관장하는 시중에 임명했다. 두헌의 동생인 두독은 호분중랑장, 그 동생인 두경은 중상시가 되어 궁정에서 숙식하며 황제의 보좌역할을 했다. 이러니 황제인 화제는 사실상 옴짝달싹할 수 없는 허수아비 황제에 불과했다.

외척인 두씨 일파는 집권하게 되자 복수극을 펼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죄악상을 고발한 한우의 아들을 죽여 아버지의 묘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두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두태후의 신임을 받던 유창을 질투심 때문에 자객을 보내 살해하고 유창의 동생이 죽였다는 조작극까지 벌였다.

중앙권력 뿐 아니라 지방권력까지 친인척으로 채우고 뇌물 공세와 정략결혼으로 중앙과 지방의 권력은 완전하게 두씨 일파와 그 일당에 의해 장악되었다. 두헌의 동생인 두경은 남의 재산을 약탈하는가 하면 유부녀를 강탈했다. 자신의 병력을 강화하기 위해 백성들을 제 멋대로 징발하기도 해 원성을 사곤 했다.

황제인 화제는 터놓고 속내를 나눌 신하가 없었다. 화제 곁에는 시중을 드는 환관 외에는 믿을만한 신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화제는 자신의 곁에서 시중들던 환관 정중과 상의해 두씨 일파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두씨 일파가 제거되자 환관인 정중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때부터 환관의 화가 시작된다. 환관들이 정치권력의 내밀한 곳에서 정사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외척을 몰아냈더니 환관들의 횡포가 심해지고 그 뒤로 후한시대 내내 외척과 환관들의 권력쟁탈전이 지속되다 후한은 그 운명을 다하게 된다. 이 역사를 다루며 조설항은 전호후랑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태풍 볼라벤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덴빈이 몰아닥쳐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전호후랑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특히 농가피해가 속출했기 때문에 시급한 복구와 대책이 요구된다. 피해가 심한 지역부터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만전의 대책과 적절한 예산지원 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시련이 닥쳤지만 늘상 이겨냈듯 이번 상처도 서로 힘을 모아 극복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 믿어보자.

용기를 갖고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매번 설상가상이나 전호후랑의 불행만 이어지겠는가. 금상첨화도 있고 고진감래도 올 것이니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내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