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사건사고가 많은 시대와 공간에서 살고 있다. 호주에서 들은 말인데 사건사고가 적어 신문사 기자들이 뉴스거리에 목말라 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한국사회는 메가톤급 뉴스거리도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 만큼 초대형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잊지 않으면 미칠 지경이 되었고 심지어 잊어서는 안 될 일까지 망각하게 된다. 사건의 경중이나 옳고 그름은 객관적, 과학적 근거도 없이 한바탕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간다.

심지어 객관적 사실조차도 부정과 모르쇠로 일관하고 그 때만 지나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다분히 감정적이다. 그러다보니 진실, 정의, 양심, 법률 등 보편적 가치들이 사건과 사안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이 옳았어도 국민들은 그를 지키지 못했고 욕을 당하다 스스로 절명하게 만들었다.

남북분단 현실에서 대결보다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임에도 전쟁불사론은 선이고 평화와 통일은 종북, 빨갱이라는 어이없는 네오메카시즘이 준동하고 있다.

방송, 언론의 자유가 법과 상식적으로 인정되는 민주사회에서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도 이토록 잠잠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대통령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야당이 진실을 말해도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4대강 사업, 군수물자 도입, 현 정권 실세 등의 파렴치한 부패와 범죄, 힘 있는 자들만을 위한 정치와 경제 정책이 난무해도 국민들은 잠잠하거나 오히려 부패집단을 지지하거나 옹호하고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에서 수없이 많은 양심적 지식인과 민주화 운동가들이 목숨을 잃거나 긴급조치로 탄압을 받았어도 박근혜 지지율이 선두인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연좌제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 한번 한 일이 없는 사람이 어떤 돈으로, 그 토록 호의호식하고 정치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수즉다욕이 생각난다. 수즉다욕은 오래 살게 되면 욕된 꼴, 험한 꼴을 많이 보게 된다는 뜻이다.

장자 천지 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요 임금이 전국을 순회하던 중 어느 국경에 이르게 되었다. 요 임금을 맞으러 나온 하급 관원이 요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자 이에 대해 수즉다욕  즉 오래 살다보면 욕된 일을 많이 보게 된다고 말하면서 ‘나는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라고 답했다. 이에 하급관원은 그렇다면 ‘임금님의 생활이 윤택하도록 커다란 부를 누리시길 바랍니다’라고 축원 했다. 요 임금이 부자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으니 그것은 빼앗길까 오히려 걱정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관원이 물러서지 않고, 그렇다면 후손이라도 번창하길 원한다고 축원하자 이 역시 요 임금은 자식이 많으면 걱정거리가 늘어난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박정희 독재에 희생당한 유족들은 박근혜 지지율에 수즉다욕을 떠올릴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의 정치를 긍정했던 사람들 역시 수즉다욕이 생각날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의 퇴행적 정치에 내가 너무 오래 살아 못 볼 것을 보는 것 아닌가 하며 수즉다욕을 곱씹을 것이다.

민주화운동, 시민운동의 영역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필자도 수즉다욕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감옥을 가고 닭장차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어야했던가, 거짓과 술수와 배신이 난무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덜 정직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을 욕하고, 덜 양심적인 사람이 양심가를 욕하고, 처세만 늘어난 엉터리 시민운동가들이 용기 있는 시민운동가를 욕하는 세태가 걱정스럽다.

시민운동가랍시고 자기 패거리에 속하지 않으면 부정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참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한 모순된 현실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수즉다욕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말은 진보이면서 삶은 진보가 아닌 자들이 처절하게 반성하며 참된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내가 너무 오래 살아 욕을 보는구나 라는 시민들의 한숨소리는 늘어날 것이다.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해도 소용없으니 놔두더라도, 진보와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진보적이지 않고 시민운동가답지 않으니 필자도 이 바닥에 너무 오래 살았나보다.

오늘도 수즉다욕을 붙잡고 씨름을 하며 참이 무엇인지 넋두리를 한다.